[디지털데일리 김도현기자] 배터리 소송전의 당사자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공식 석상에서 마주했다. 양사는 수차례 여론전을 펼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진 상태다. 배터리 행사장에서도 미묘한 신경전을 펼쳤다.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다. SK이노베이션의 대표 인사가 협업 의지를 드러냈다.
21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지산업협회가 각각 주최·주관하는 ‘인터배터리2020’이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막을 올렸다. 국내 최대 배터리 행사로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198개 업체가 참가했다.
이날 배터리 3사의 부스는 행사 초반부터 많은 인파가 몰렸다. 특히 삼성SDI를 사이에 두고 부스를 마련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소송전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양사는 지난해부터 영업비밀 침해, 특허 소송 등을 진행하고 있다.
오는 26일(현지시각)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린다. 결과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관련 부품의 미국 내 수입금지 등 조처가 내려질 수 있다.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도 가동 중단될 수도 있다.
이번 행사에서 LG화학은 ‘최고의 기술력’, SK이노베이션은 ‘안전한 배터리’를 강조했다. 각각 경쟁사의 기술 탈취로 인한 소송전, 현대차 코나EV의 화재 사고를 암시했다. 서로의 아픈 부분을 찌른 셈이다.
니켈·코발트·망간(NCM)622 배터리에 대한 논쟁도 이어졌다. 해당 제품은 니켈 60%, 코발트 20%, 망간 20% 조합으로 이뤄진 배터리다. 양사는 NCM622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개발 및 양산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LG화학은 ‘2016년 GM 볼트EV’, SK이노베이션은 ‘2014년 기아차 쏘울EV’에 NCM622 배터리를 탑재했다고 말한다. 이날 역시 같은 주장을 이어갔다.
양사의 갈등으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경영진의 행사장 방문 여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날 지동섭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대표(사장)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취재진의 많은 질문을 받았다.
지 사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LG화학과 소송은 두 회사 문제이기도 하지만 국내 배터리 업계에 부정적 영향이 크다”며 “관련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조기에 끝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협상 의사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지 사장은 삼성SDI에 이어 LG화학 부스를 찾으면서 눈길을 끌었다. 소송 결과를 앞둔 시점에서 만들어진 오묘한 장면이었다. 그는 “LG화학과 협업할 부분이 있다”면서도 “동종 업체로서 방문했을 뿐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달라”고 전했다.
LG화학 배터리를 탑재한 현대차 ‘코나EV’의 연이은 화재 사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지 사장은 “남의 일로 여길 것이 아니라 (SK이노베이션) 스스로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화재 요인을 찾아서 안전한 배터리를 만들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당초 지동섭 사장이 LG화학 부스를 방문하지 않을 것으로 알았는데 들러서 놀랐다”며 “소소한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의미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