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김도현기자]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내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한다. 농민단체의 반발이 거세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농업 분야에서 개도국 특혜를 인정받아왔기 때문이다.
25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외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향후 협상 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홍 부총리는 “쌀 등 우리 농업의 민감 품목은 최대한 보호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갖고 협상에 임할 것”이라며 “이 부분을 전제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들어 WTO 내 선진국은 물론 개도국들도 우리의 개도국 특혜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면서 “우리와 경제규모가 비슷하거나 낮은 싱가포르, 브라질, 대만 등도 향후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말했다. 결정이 늦어질수록 대외 명분과 협상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는 당장은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미래 새로운 협상이 타결되기 전까지 이미 확보한 개도국 특혜는 변동 없이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같은 날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33개 단체는 “개도국 지위 포기는 통상주권과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결정으로 감축대상보조금(AMS)을 현행보다 50% 삭감되면, 미국이 농산물 추가 개방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정부의 결정은 농업 외 다른 산업 분야에는 큰 타격을 주지 않을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1995년 WTO 가입 시 개도국임을 주장했다. 하지만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계기로 농업과 기후변화 분야 외에는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들 분야 외에는 특별한 혜택을 받지 못한 것이다.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IT 등 산업 분야에서는 개도국 특혜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며 “우리에게는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관계, 미중 무역분쟁, 일본 수출규제 등이 타격을 줄 수 있는 이슈”라고 언급했다.
개도국 지위 포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트럼프 대통령은 SNS를 통해 “WTO는 망가졌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들이 개도국을 자청해 특별 대우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발전을 이룬 국가들이 WTO에서 개도국 혜택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멕시코, 터키 등을 불공평한 이익을 얻는 국가로 꼽았다. 이들은 OECD 및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