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트 도와줘”…인텔, 자율주행車 현실로 바꾼 원동력
[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전통적으로 자동차 반도체 시장은 보수적인 성향이 강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안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동차라는 제품은 한 번 구입하면 오랫동안 사용하고 외부의 다양한 환경(빛, 물, 먼지, 진동 등)을 겪어야 하므로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율주행차 시대로 접어드는 지금도 이런 모습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다만 시장의 변화가 예전과 비교해 워낙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어떤 기술을 얼마나, 목표한 기간에 맞춰서 접목시키느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을 뿐이다. 가령 2020년을 기점으로 자율주행차를 일반 도로에서 운영하겠다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
상황이 급변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으나 본질은 그대로다. 반자율·자율주행차를 개발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안전이다. 그런데 이 안전이라는 요소는 아이러니하게도 보수적인 자동차 반도체 시장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실제로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자동차 전장 오류로 인한 사고 방지를 위해 제정한 국제표준 ‘ISO26262 제2판 파트11’만 하더라도 독일 인피니언, 일본 르네사스와 같이 이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업체의 입김이 그대로 반영됐다.
이런 점에서 인텔의 행보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업계에서는 인텔이 자동차 반도체에 비교적 최근 뛰어든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중앙처리장치(CPU)와 약간의 메모리(롬, 램), 시리얼 등을 통합한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을 1970년대부터 공급했다. 인텔에서는 이 제품을 ‘마이크로-컨트롤 시스템(MCS)’라 부른다. 인텔판 MCU인 셈이다.
MCS는 자동차에 사용해도 무리가 없다. 처음부터 PC를 넘어서서 계산기, 게임기, 모뎀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도록 설계된 덕분이다. 1995년 국내에도 소개된 MCS96의 경우 엔진을 점검하고 조절하는 기능을 지원한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 운전자에게 엔진을 점검하도록 경고하는 재주도 갖췄다.
자동차 반도체는 적용하는 곳에 따라 파워트레인(엔진, 변속기), 바디, 섀시, 보안, 안전, 운전자 정보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인포테인먼트와 같은 운전자 정보에 쓰이는 반도체는 온갖 업체가 난무해있으나 섀시, 바디, 파워트레인으로 올라갈수록 기술이 난이도는 물론 고유의 카르텔로 인해 진입장벽이 무척이나 높다. 인텔이 오래전부터 이 시장에서 업력을 쌓아왔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긍정적인 요소다.
◆자동차 반도체에 잔뼈가 굵은 인텔=자율주행차는 첨단운전보조시스템(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s, ADAS)의 고도화 버전으로 구현하는 방법은 업체마다 천차만별이다. 엔비디아처럼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연산능력을 활용하거나 인피니언과 같이 여러 MCU와의 조합으로 해결하는 방법도 있다. 누가 어떤 자동차 반도체를 사용하는지도 따져봐야 할 요소이지만 거시적인 차원에서 자율주행차 개발과 솔루션 적용, 종합적인 운용 능력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동차 그 자체뿐 아니라 클라우드, 차량간/차량대인프라 통신(V2X), 5세대(5G) 이동통신을 모두 갖추고 있는 업체는 손에 꼽는다.
인텔은 이미 MCS와 함께 인포테인먼트를 위해 2000년대 중후반부터 ‘아톰’ 프로세서를 투입했다. 서버용 프로세서인 ‘제온’은 이 시장에서 90% 이상의 점유율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5G에서는 단말기 차원에서 1Gbps 다운로드 속도를 지원하는 모뎀칩 ‘XMM 7560’, 그리고 ‘인텔 네트워크 빌더 패스트 트랙(Intel Network Builders Fast Track)’이라 부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5G를 이용하는 자율주행차 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자율주행차가 5G를 이용하는 이유는 롱텀에볼루션(LTE)와 비교해 단순히 다운로드/업로드 속도만 빨라진 것이 아니라 응답속도와 같이 지연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어 즉각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서다. 자동차가 주변 환경을 스스로 진단하고 파악하려면 로컬, 자동차 내의 반도체 성능도 중요하지만 5G와 같은 이동통신망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서로 보조하고 협업해야 한다는 의미다.
◆자동차 업계와 공조체제 구축=인텔의 또 다른 장점은 자율주행차 ‘토털 솔루션’을 넘어서서 원천기술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 모빌아이를 올해 3월 153억달러(약 17조5500억원)을 들여 인수합병(M&A)했다. 인텔은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로 유연성을 높였고 인지컴퓨팅 업체 샤프란테크놀로지, 영상 기술 업체 리플레이테코놀로지스, 사물인터넷(IoT) 보안과 자율주행시스템 업체 요기테크를 모두 확보한 상태다. 노키아에서 분사한 지도 업체인 ‘히어’의 지분 15%까지 가지고 있다.
모빌아이는 이른바 인텔의 자율주행차 전략에 화룡정점을 찍을 수 있는 업체다. 자율주행을 위한 컴퓨터 비전, 머신 러닝, 데이터 분석, 지역현지화와 매핑 개발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을 갖추고 있어서다. 특히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에서 있어서 탁월한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쌍용자동차는 모노 카메라 하나에 모빌아이 솔루션만 가지고 수준급 ADAS을 개발했다. 저렴한 가격으로 ADAS를 공급하게 되면서 사용자 만족도는 물론 기술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모빌아이와 함께 티어1(1차 협력사) 전장업체 델파이, 그리고 완성차 업체 BMW와 협력관계라는 점도 떠올려야 한다. 올해 하반기까지 BMW와 함께 40여대의 자율주행차를 미국과 유럽의 실제 도로에서 시범 운용하고 오는 2021년까지 완전자율주행차를 개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인텔의 자율주행차 전략은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전장에서 쌓아올린 경험이 추진동력이다. 인공지능(AI) 구현을 위한 딥러닝이나 머신러닝 등은 이미 x86 아키텍처에서 충분히 구현되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첨단 차량 연구소(Advanced Vehicle Lab)’도 세웠다. 자율주행차는 카메라, 라이다(LIDAR·레이저 반사광을 이용해 물체와의 거리를 측정하는 기술), 레이더 및 다른 센서를 통해 수집된 정보를 기반으로 운행되며 매 90분마다 약 4TB의 데이터를 생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데이터를 처리하고, 관리하며, 저장, 분석 및 이해하는 것은 자율주행 업계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과제다.
한편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오는 2025년까지 자율주행차 시장규모가 연간 60만대 수준에 향후 10년간 연간 43%씩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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