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인텔의 장밋빛 전망을 믿으시나요?
[IT 전문 블로그 미디어=딜라이트닷넷]
미니컴퓨터의 대명사로 꼽혔던 디지털이퀴프먼트코퍼레이션(DEC)의 창업자 켄 올센은 1977년 “모든 이들의 집집마다 컴퓨터를 놔둘 이유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가 컴퓨터 시장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편협한 생각으로 운영되던 회사가 잘 될리 만무했다. 한동안 잘 나갔던 DEC는 컴팩에 인수당했다. 컴팩은 또 다시 휴렛팩커드(HP)에 잡아먹히고 말았다.
이후에도 비슷한 발언이 많았던 모양이다. IBM의 최고경영자(CEO)였던 루 거스너(1999년)와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리치 템플턴 CEO(2005년)는 “PC 시대는 끝이 났다”는 발언을 했다. 르네 제임스 인텔 사장은 3일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린 컴퓨텍스 기조연설에서 이들의 발언을 인용, “봐라. 저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아직도 PC는 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1999년 PC 출하량은 1억5000만대를 밑돌았지만 2006년에는 이 수치가 2억3200만대, 2010년에는 3억5400만대로 늘었다며 시장조사업체의 자료를 증거(?)로 내밀었다. 제임스 사장은 자신있게 ‘그들이 틀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지 않은 한 가지 사실이 있다. IBM과 TI가 아직도 잘 나간다는 것이다. 두 업체가 아직 PC 생태계에 있었다면 DEC처럼 망했거나, 적자에 허우적거리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컴팩을 집어삼킨 HP는 PC 사업의 적자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루 거스너가 누군가? ‘몰락할뻔 했던 공룡’ IBM을 살린 영웅이다. 그가 사업조정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IBM은 없었을 것이다. 당시 많은 비판을 받았던 그지만 지금에서야 ‘거스너가 옳았다’는 평가가 속속 나오고 있다. TI도 내셔널세미컨덕터를 인수하며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아우르는 종합반도체 회사로 세계 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리치 템플턴은 아직도 TI의 CEO로 일하고 있다.
제임스 인텔 사장은 “PC는 형태를 달리해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통적 PC 출하량은 연간 3억대 언저리에 머물러 있지만, 태블릿 출하량을 여기 합치면 5억대가 넘는다는 계산법을 들이밀며 ‘우리 생태계에 들어오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전통적 형태의 PC 출하 성장률이 정체 상태인 이유는 태블릿의 출현 때문이다. 그리고, 이 생태계는 ARM이 주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인텔이 모바일 사업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JP모건의 크리스토퍼 데이너리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인텔이 수익성을 개선하려면 모바일 사업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너리는 “인텔 x86 아키텍처는 ARM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상황(전력소모량, 생태계 등)에 놓여있는데다 스마트폰용 프로세서 시장의 전반적 이익률도 하락하고 있는 추세”라며 “적자의 늪에 빠진 모바일 사업을 계속 유지한다면 회사의 주당 이익은 계속적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텔은 IBM과 TI가 틀렸다고 말했지만 그들의 구조조정 모델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인텔은 2년 연속 마이너스 매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모바일 사업을 담당하는 모바일&커뮤니케이션 부문의 지난해 적자는 우리돈 3조원 이상이었다. 인텔은 올해 4000만대의 태블릿 칩 프로세서를 출하할 것이라고 공언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자 보조금을 풀어 제품을 밀어내고 있다. 실적 하락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마침 브로드컴도 모바일 기기에 탑재되는 모뎀칩 사업을 포기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 발표 이후 브로드컴의 주가는 폭등했다. 인텔도 그럴 지 모른다. 설립 이후 지금까지 50여개의 회사를 인수합병한 이력을 갖고 있는 브로드컴은 될 사업, 안 될 사업을 잘 아는 기업이다. 세계 2위 모바일 프로세서 업체인 대만 미디어텍의 밍 카이 CEO는 컴퓨텍스 전시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향후 이 시장(모바일)에서 생존할 수 있는 업체는 2~3곳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퀄컴, 미디어텍 다음은 누구일까. 삼성전자? 인텔이 과연 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인텔은 IBM과 TI를 향해 ‘그들은 틀렸다’고 말했지만, 과연 누가 틀린 것일까? 작년 인텔은 컴퓨텍스 현장에서 ‘2-in-1’의 보급으로 터치 패널 출하량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라고 장밋빛 전망을 밝혔다. 그러나, 실제 수요는 부진했다. 터치패널 업계는 공급과잉으로 몸살이다. 지금 인텔의 생태계가 이 모양이다. 마치 늪 같다. 잘못 빠지면 죽는다.
[한주엽기자 블로그=Consumer&Prosu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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