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메모리 반도체업계를 덮친 모바일 충격파
[디지털데일리 한주엽기자]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예전에는 항공모함 비즈니스, 지금은 쾌속정이다. 잠시 한 눈 팔면 죽는다.”
전동수 삼성전자 DS총괄 메모리 사업부장(사장)은 지난 28일 반도체의 날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같이 말했다. 그는 모바일 기기의 등장으로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핵심 경쟁력이 변했다며 이에 부합할 수 있도록 내부 역량을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PC가 주력 IT 제품일 때 삼성전자 등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은 인텔 눈치를 봐야 했다. 인텔이 정한 표준에 맞추고 인증을 받아야 했던 까닭이다.
인텔 표준은 경쟁사의 진입장벽을 낮췄고, D램은 완제품에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부품’이 아니라 가전제품을 만들 때 쓰는 철판이나 레진처럼 ‘원재료’ 취급을 받았다.
이 때문에 그간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핵심 경쟁력은 품질과 성능이 아닌 ‘낮은 원가’로 통했다. 시장 수요를 앞서는 대규모 설비 투자를 적기에 진행하고 연구개발(R&D)을 통해 남보다 빨리 미세공정으로 전환, 제조 원가를 낮춰야 점유율 확대 및 이익 남기기가 가능했었다.
그런데 표준이 없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등장하면서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비(非) 표준은 일종의 기술 진입 장벽을 만들었고, 삼성전자는 특유의 스피드 경영과 직원들의 독함으로 제각기 설계가 다른 갤럭시에, 아이폰에, 블랙베리에 자사 모바일 D램 등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하고 있다.
애플 등 스마트폰 업체들은 메모리 반도체의 테스트 샘플을 미리 장착해보곤 일정한 요건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이를 채용하지 않는다. 모바일 메모리는 회로 기판에 그대로 부착돼 오류가 발생하면 기기 자체를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제각기 다른 기기에 메모리 반도체의 특성을 맞추려면 스피드한 설계 및 양산 능력이 필요하다. 일부 후발업체들은 이를 맞추지 못해 매출 기회를 상실하기도 한다.
전동수 사장이 ‘쾌속정’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스피드와 내부 역량 향상을 강조한 것은 모바일 시대에 대응하는 삼성 반도체의 새로운 전략을 소개한 것으로 생각된다. 다양한 제품에 맞는 다양한 종류의 메모리 반도체를 설계하고 양산한 것이 엄청난 가격 하락 국면에서도 나홀로 흑자를 기록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실제 삼성전자 DS총괄 메모리 사업의 3분기 실적을 이끈 것은 범용 D램 보다는 가격 프리미엄이 높은 모바일용 D램과 낸드플래시, 또 이들을 하나로 묶은 멀티칩패키지(MCP)의 매출이 급성장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앞선 미세공정전환을 통한 원가경쟁력이 실적의 밑거름이 된 것도 물론이다.
전 사장은 애플과의 부품 공급 관계에 대해 “삼성전자 부품이 아니면 안 되는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고도 말했다. 고성능에 저전력, 경박단소화가 가능한 통합 칩을 삼성전자가 만들면 완제품의 완성도를 고집하는 애플이 이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PC에 탑재되는 범용 D램은 삼성전자의 독점 시대가 됐다. 모바일 메모리도 삼성전자가 앞서나가고 있다. 남은 것은 비 메모리 부문이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을 통해 시스템LSI 설계 노하우를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와 메모리 반도체를 하나로 통합하고 여기에 통신 베이스밴드 칩 기술까지 내재화할 수 있다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은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주엽 기자>powerusr@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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