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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표가 99년생이래..." 스타트업 투자계의 '통념 브레이커' 지디벤처스

이건한 기자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통념을 바꾸겠다"는 말은 대체로 멋있게 들린다. 사회적으로 성공할 경우 '혁신가' 칭호를, 사업적으로 성공하면 '막대한 부'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말 그대로 '나를 이해 못하는 통념적 사회'와 싸워 이겨야 하는 까닭이다. 여기엔 그럴만한 능력은 물론이고, 통념보다 단단한 신념도 요구된다. 마치 지디벤처스(ZDVC)처럼 말이다.

지디벤처스 공동창업자 4인, (왼쪽부터) 백인성, 정규식, 김하경, 김도원 (ⓒ ZDVC)
지디벤처스 공동창업자 4인, (왼쪽부터) 백인성, 정규식, 김하경, 김도원 (ⓒ ZDVC)

2023년 11월 설립된 ZDVC는 투자사로 보기에 이상한 곳이었다. 우선 만26세(1999년생)에 불과한 대표이사의 나이가 눈에 띄었다. 다른 공동창업자 3인도 96년생(2명), 97년생(1명)이라고 한다. 모두 사회 경험이 채 무르익기 어려웠을 나이에 벌써 '스타트업 투자'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명색이 투자사인데, ZDVC가 투자하려는 스타트업보다 특별히 많은 자금을 보유한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보면 일반적인 투자사에 대한 통념 위배다. 투자업은 보통 성공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가려내는 안목과 이를 뒷받침하는 연륜, 충분한 투자금도 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젊고 당돌한 투자사는 나름대로 주목할 만한 투자 포트폴리오 및 자본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지난 1일 강남의 모 공유오피스에서 김하경 ZDVC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우리 나이가 적지, 인지도가 없나!

"우리가 집중하는 '극초기 스타트업 투자'는 전통 금융투자업과 아예 다르다. 평가할 만한 수치적 지표가 없으니까, 진짜 사람과 팀의 잠재력만 보고 투자해야 한다."

김 대표는 ZDVC가 투자 업계 선배들로 구성된 LP(투자자본제공자), 투자 대상 기업들의 신뢰를 확보한 비결로 '인간적 소통과 공감대 형성'을 꼽았다. 물론 큰돈이 오가는 일에 몇 마디 그럴듯한 말로 모든 설득이 이뤄질 수 없는 노릇이다. 사실 ZDVC의 차별화된 무기는 '창업 생태계 현장' 그 자체에 있다.

<디지털데일리>와 인터뷰 중인 김하경 대표
<디지털데일리>와 인터뷰 중인 김하경 대표

김 대표는 "ZDVC 공동창립자들은 모두 20대 초에 창업을 경험한 이들"이라며 "특히 나와 정규식 파트너는 대학 시절에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카이스트, 포스텍 등 국내 주요 대학 출신 창업자들의 커뮤니티인 '파운더스'를 운영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이들은 ZDVC 결성 전부터 또래 창업자 커뮤니티와 생태계의 구심점을 만드는 일에 집중해 왔다는 뜻이다. 김 대표는 "덕분에 '김하경, 정규식, 백인성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들이 주변 동료 창업자들을 어떻게 도왔는지'와 같은 스토리가 초기 창업자 생태계 사이에선 한 다리만 건너도 이미 다 알았던 정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 깊은 관계의 문을 열었던 열쇠 '공감·절실함'

이 가운데 ZDVC가 얻은 무형적 자산이 바로 젊은 창업자들에 대한 깊은 이해다. 김 대표의 앞선 말처럼, 극초기 창업자들은 반짝이는 원석처럼 보여도 그들의 실제 성장 가능성이나 잠재력을 단기에 정확히 평가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대화를 통해 그가 어떤 인물인지, 어떤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는지, 사업적 철학은 무엇인지 등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이 또한 상투적인 면담으로는 온전히 알기 어려운 일이다.

ZDVC는 이 한계를 창업 생태계 활동 중 자연스레 쌓이는 관계, 긴 시간 서로의 삶과 철학을 공유하는 시간을 통해 극복하고 있다. 또한 ZDVC의 젊음, 스타트업 같은 기질도 바로 이때 빛을 발한다. 이에 대한 김 대표의 다음 설명이 인상 깊다.

"사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신이 유년 시절부터 어떤 경험을 했고, 성장 과정에서 어떤 기질이나 결핍을 갖게 됐고, 지금 사업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스토리를 털어놓기란 쉽지 않다. 특히나 투자자와 창업자의 관계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ZDVC는 그들에게 투자자가 아닌 동료처럼 비춰진다. 첫째로, 우린 성공하고 투자사를 만든 이들이 아니다. 네 사람의 인생을 걸어 ZDVC를 설립했고, 한국에서 스타트업과 가장 닮은 투자사다. 여기에 따르는 어떤 느낌, 즉 '바이브(Vive)'를 비슷한 처지의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다 느낀다. 오죽하면 그들이 우리에게 이런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너희가 우리보다 더 절실하네, VC가 아니라 진짜 스타트업 같다'고 말이다.

덕분에 창업자들이 우리에게 한결 마음을 편하게 열고 내면의 깊은 이야기를 꺼낸다. 동시에 ZDVC 역시 우리 이야기를 숨김없이 털어놓기 때문에 어떤 투자사보다 창업자들과 마음이 오가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것 같다.

현재 ZDVC 사무실은 햇빛이 들지 않는 '지하골방'이다. 그러나 이런 공간마저 선배 LP들에게는 '우리도 그땐 그랬지'라는 회상을, 스타트업에겐 'ZDVC도 진짜 스타트업'이란 공감대 형성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 ZDVC)
현재 ZDVC 사무실은 햇빛이 들지 않는 '지하골방'이다. 그러나 이런 공간마저 선배 LP들에게는 '우리도 그땐 그랬지'라는 회상을, 스타트업에겐 'ZDVC도 진짜 스타트업'이란 공감대 형성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 ZDVC)

ZDVC가 투자할 돈을 대는 LP들도 비슷하다. 김 대표는 "업계 선배인 LP들도 오래전부터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지속 가능하게 성장하려면 젊은 창업자들이 서로 뭉치고 돕는, 실리콘밸리의 '호미(Homie, 절친한 친구, 형제와 같은 의미)' 같은 문화가 국내에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봤다. 이는 ZDVC가 추구하는 비전이기도 한데, 선배들이 여기에 공감하고 생태계 투자 차원으로도 우리에게 출자한 것으로 생각한다. 나아가 10년 후에는 우리가 다시 후배 세대를 도우라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라고 말했다.

■ 글로벌을 향해... 오늘을 잘 살아내는 기업에 투자

그러나 아무리 '신뢰와 공감' 같은 인간적인 키워드가 중요해도, ZDVC의 본질은 투자사다. 투자한 회사가 성공해야 ZDVC도 돈을 벌고, 투자의 규모도 키워갈 수 있다. 현재 운용자산(AUM) 16억원 규모의 초기 투자펀드를 운용 중이다. 주요 시드투자 포트폴리오로는 식음료 브랜드 '마타리', AI 음악생성 스타트업 '웨이브AI', 정신건강 데이터 스타트업 '리소리우스' 등이 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공통의 투자 조건은 의외로 꽤 명확했다.

김 대표는 "첫째는 앞서 말했듯 삶의 나눔 가운데 인간적 확신을 주는 사람들이다. 두번째는 시뮬레이션을 잘하는 사람보다 그걸 실행(Operation)하는 역량을 중요하게 본다. 결국은 큰 꿈을 갖고 있더라도, '그럼 당장 오늘은 뭘 해야 하는가'에 대한 디테일을 챙기면서 행동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우리가 투자한 창업자들이 다 그 부분에 집착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세번째는 창업자가 자신보다 뛰어난 동료를 데려올 수 있는 사람인지를 본다"며 "바로 그 점에서 자존감과 자신감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 진짜 회사를 성장시키는 리더십을 가진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업적 측면의 공통점은 '글로벌'이다. 한국에서 시작한 회사라도, 빠르게 미국과 같은 큰 시장으로 진출할 준비가 된 이들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본다. 실제로 리소리우스는 ZDVC의 시드 투자를 받고, 내년 중에 바로 미국 진출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는 회사"라며 "현재 ZDVC는 여기에 필요한 세일즈 지원과 미국 진출에 도움이 될 통로들을 함께 개척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 ZDVC의 목표, 대형화 아닌 '더 많은 상생'

소통과 연대를 강조하는 ZDVC는 투자사로서 얼마나 커질 수 있을까? 뜻밖에도 ZDVC의 목표는 '대형 투자사'가 아니었다. "AUM으로 평가받는 회사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김 대표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AUM이 크다고 다 좋은 투자사가 아니며, 그보단 포트폴리오 회사들이 "ZDVC에게 투자받길 진짜 잘했어"라는 평가를 더 지향한다고 한다.

또한 애초에 '창업자들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함께 크는 투자사'를 목표로 운영 중인 만큼 규모와 투자회사가 늘어날수록 인적 리소스 부족 한계에 봉착하기도 쉬운 것이 사실 ZDVC의 구조적 한계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재 AUM은 30억원에서 최대 50억원, 포트폴리오사도 티켓 사이즈 0.5억원에서 1.5억원 규모로 30개~50개 정도 확보가 목표다.

이와 관련해 김 대표는 "정규식 파트너와 파운더스를 운영할 때도 '우리는 이타심을 통해 이기심을 채우는 사람들'이란 말에 많이 공감했고, 실제로 주변 사람과 함께 성장하는 것에 큰 행복을 느껴왔다"며 "특히 친한 형이기도 한 정규식 파트너도 '너는 언젠가 반드시 홈런을 칠 사람이니 타석을 벗어나지 않게 응원해 주겠다'며 큰 도움을 준 사람이다. 실제로 내가 삽질하고 실패한 경험밖에 없음에도 창업가의 삶을 포기하지 않게 도와주었다. ZDVC는 이런 마음을 직업적으로 풀기에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녹록치 않은 세상 현실에 이들의 이런 이상향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에 기자가 "2년 뒤에 다시 인터뷰해보자"고 농담을 건네니, 김 대표도 "그때는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들이 누구보다 진심으로, 공통의 가치를 향해 함께 즐기는 여정을 걷고 있다는 사실만은 명확히 느껴졌다. 현재 창업자 4명 중 김도원 파트너는 유일하게 미국 국적으로, 현지에서 투자사들의 미국 진출을 돕고 있다. 김 대표와 정규식 파트너, 또한 김 대표가 역시 멋진 멘토로 꼽은 백인성 파트너와는 일과 여가 시간의 경계가 모호할 만큼 늘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중이라고 한다.

한편 김 대표는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도 남겼다. "우리가 이상하게 보이고, 안 될 거라 말하는 사람이 99명이라도 상관없다. 우리가 될 거라 믿고 투자하는 1명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는 일이고, 실제로 그런 LP들 덕분에 ZDVC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어차피 우린 누가 하지 말라고 해도 할 사람들"이라며 "실리콘밸리와 달리 한국에선 20~30대 젊은 창업자들이 실패할 거라 말하는 사회적 통념도 깨는 선례들도 만들어 나가겠다. 궁극적으론 마치 맨바닥에서 정상에 올라 성공한 힙합 래퍼들이 같은 DNA의 후배 래퍼들을 또 성공적으로 키워내고 있듯,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그와 같은 힙합 정신을 더 널리 확산시키고자 한다."

이건한 기자
sugyo@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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