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정책

[韓보안진단]① ‘돈줄’이 흘러야, 한국 보안산업이 산다

최민지 기자

왜 한국에서는 팔로알토네트웍스와 같은 글로벌 보안기업이 없을까? 대기업은커녕 기업가치 1조원을 넘는 사이버보안 유니콘기업조차 전무한 실정이다. 전세계적으로 기술 발전과 함께 보안산업은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한국에선 제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하고 만년 유망주에 머무르는 국내 보안산업,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 <디지털데일리>는 특별기획을 통해 국내 보안산업 현주소를 진단한다. <편집자주>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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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최민지기자] 한국 보안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

<디지털데일리>는 지난 1월10일부터 2월20일까지 국내 보안기업과 기관‧기업 정보보안 부서 임원‧담당자 등 국내 보안산업에 종사하는 60여명을 대상으로 국내 보안산업 진단을 주제로 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국내 보안산업 종사자들은 한국 보안산업 발전 걸림돌로 ‘소극적 보안 투자’를 꼽았다.

기업‧기관이 적극적인 보안투자를 진행하면 사업대가를 현실화하게 되고, 이는 저가 위주의 국내 보안기업 입찰 구조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된다. 기술력 위주 경쟁입찰이 이뤄지게 되면, 연구개발(R&D)이 활성화되면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는 장밋빛 그림이다.

하지만, 현 상황에선 보안투자 중요성에 대한 경영진 인식이 높지 않고, 이는 낮은 투자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 보안을 아직도 ‘비용’으로만 생각하는 탓이다.

조사 결과 국내 보안기업에 종사하는 응답자 76%는 고객사 공략에 가장 큰 어려움으로 ‘소극적 보안 투자’를, 응답자 62%는 보안시장 정상화를 위해 ‘사업대가 현실화’를 꾀해야 한다고 밝혔다. 수요기업‧기관 보안담당자 55%는 국내 보안산업 발전을 위해 ‘경영진 인식’과 ‘낮은 투자’를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안업계 관계자는 “규정으로 포함된 필수 솔루션이 아니면,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예산 확보가 어렵다”며 “예산 부족으로 신규 솔루션 도입보다는 노후화 교체 예산에 먼저 배정한다”고 말했다. 보안부서 담당자가 보안솔루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음에도, 경영진의 소극적 투자로 인해 실질적 도입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국내 보안기업들이 주로 공략하는 공공사업 경우, 저가 입찰 문제는 여전히 숙제처럼 남아있는 고질병이다. 국내 보안기업 응답자 86%는 공공분야 보안사업 입찰 때 고객사가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인으로 ‘낮은 가격’을 선택했다.

금융‧엔터프라이즈 경우 ‘높은 기술력’이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기업금융과 엔터프라이즈는 외국계 보안기업과 경쟁하게 되는 분야다. 국내 보안기업 응답자 48%는 해외 보안기업과 경쟁해 이긴 이유로 높은 기술력과 함께 ‘낮은 가격’을 꼽았다.

보안업계 관계자는 “최저가 입찰이 상당수 발생하면서 최저금액을 맞추다 보니 마진이 줄어들고, 우선사업자 선정 후 과도한 커스터마이징까지 요구한다”며 “과도한 가격경쟁으로 국내 보안기업 생존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해외 보안기업은 높은 기술력과 글로벌 레퍼런스를 확보한 상황에서 국내 보안기업과 경쟁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 보안기업은 상대적 후발주자인 경우가 많아, 레퍼런스 확보 측면에서 어려움 있다”며 “저가 수주를 하면 할수록, 외산 제품과 비교해 경쟁력은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보안시장 정상화를 위해 보안기업 응답자들은 사업대가 현실화, 과도한 커스터마이징 금지, 유지보수 요율 현실화 등을 개선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결국, 국내 보안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려면 적극적인 투자 환경과 시장 전반의 보안인식 변화가 필수적이라는 제언이다. 그래야만 단순 저가 수주 전략에서 벗어나, 기술력 확보와 장기 투자 전략을 병행할 수 있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국내 보안기업 응답자들은 올해 업황을 부정적(48%)으로 전망했다. 국내 정치‧경제 상황이 불안정한 가운데, 전 산업 투자가 축소되면서 보안산업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수요기업‧기관 보안담당자들은 긍정적(51%)으로 내다봤다. 보안담당자 45%는 전년대비 올해 보안예산이 소폭 증가했고, 41%는 전년과 동일하다고 답했다. 한 보안담당자는 “생성형AI와 같은 신기술이 확산되면서, 기존 보안체계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새로운 보안위협이 등장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cmj@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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