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우위 시대 준비하는 한국…연세대, IBM 양자컴퓨터 도입
[디지털데일리 이안나기자] “양자역학은 인류가 쌓아온 지성체계 최고봉이며, 이를 물리적으로 구현한 양자컴퓨터는 인류의 난제를 해결할 열쇠가 될 것입니다. 연세대는 국내 ‘양자문해력’ 향상을 선도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겠습니다.”
정재호 연세대학교 양자사업단장은 20일 연세대 송도 국제 캠퍼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은 포부를 밝혔다. 이날 연세대는 IBM과 함께 127큐비트 ‘IBM 퀀텀 시스템 원’을 공개했다. IBM이 연세대에 양자컴퓨팅 인프라를 공급하고 연세대가 사용료를 지불하는 방식이다.
연세대는 물론, 연세대와 협력하는 국내 학술 기관과 기업들이 양자컴퓨팅 기술을 연구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도입됐다. 이 시스템으로 한국은 미국‧캐나다‧독일‧일본에 이어 IBM 퀀텀 시스템 원이 설치된 전세계 5번째 국가가 됐다.
◆ 100큐빗 이상 양자컴퓨터 국내 첫 도입...“양자우위 시대 대비”=양자컴퓨터는 0과 1을 따로 인식하는 일반 컴퓨터와 달리, 0과 1이 중첩된 ‘큐비트(qubit)’에 기반해 작동한다. IBM 퀀텀 이글 프로세서 사양인 127큐비트는 2의 127승 연산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성능을 갖췄다는 의미다.
국내서 올해 1월 20큐비트 수준 양자컴퓨터를 시연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훨씬 높은 성능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기존 슈퍼컴퓨터로도 수백년이 걸릴 복잡한 계산을 단시간에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신약 개발이나 정확한 기후 변화 예측 등 인류가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번에 도입된 시스템은 절대온도 영하 273도 극저온 환경에서 작동한다. 이는 초전도체 기반 양자 현상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IBM은 이를 위해 헬륨 동위원소인 헬륨-3과 헬륨-4를 혼합해 극저온 환경을 구현했다.
100큐빗 이상 양자컴퓨터 도입이 유의미한 이유는 ‘양자 유용성’이라는 중요한 이정표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양자 유용성이란 양자컴퓨터가 기존 클래식 컴퓨터 능력을 넘어서는 신뢰할 수 있는 계산을 수행할 수 있는 단계를 의미한다. 연세대는 2026년 127큐빗 이상 수준으로 또 한 번 업그레이드 계획을 갖고 있다.
IBM 표창희 상무는 “양자 우위 시대가 도래하면 양자컴퓨터는 특정 연산 분야에서 최적의 솔루션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비용효율적 신약개발 가능해질까...연세대, 바이오 산업 집중=연세대는 특히 바이오 분야에서 양자컴퓨터 활용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2028년까지 ‘양자 바이오 클러스터’ 활성화를 목표로 삼았다.
실제 엔비디아 등 글로벌 기업들도 양자컴퓨팅을 활용한 신약 개발에 주목하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질병 관련 단백질 구조 분석과 약물 상호작용 시뮬레이션을 기존 컴퓨터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정재호 단장은 “현재 신약 개발 비용이 천문학적 수준인데, 최근 FDA 승인을 받은 유전자 치료제는 한 바이알 경우 한 바이알(주사 용기)당 46억원에 달한다”며 “양자컴퓨팅을 활용한 분자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러한 개발 비용을 절반 이하로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진정한 양자컴퓨팅 시대가 도래하기까진 과제도 있다. 바로 오류율 문제다. IBM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단계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2023년 양자 오류 완화 기술을 발표한 데 이어, 올해는 2029년을 목표로 한 오류 수정 기술 로드맵을 공개했다. 2029년경 오류 수정이 가능한 양자컴퓨터 개발을 완료해 산업 전반에 활용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 양자컴퓨팅 전문인력 부족...연세대, ‘양자생태계 구축’ 시작=현재 양자컴퓨팅 글로벌 기술 수준 순위에서 한국은 12위에 속한다. 1위인 미국 점수를 100으로 봤을 때, 중국 35(2위), 일본 28.5(4위)점인 반면 한국은 2.3 수준에 그친다. 그만큼 국내 전문인력도 부족한 게 사실이다.
연세대가 양자컴퓨터 도입을 계기로 ‘양자 생태계 구축’에 나선 이유다. 우선 ‘양자문해력’ 향상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전면 확대하고, 학부와 대학원에 양자 관련 정규 학위과정을 개설할 예정이다. 산업 현장 실무자를 위한 기업 연수 프로그램과 일반인 대상 양자 교육 과정도 준비 중이다.
인프라 측면에서는 양자사업단 신설에 이어 양자컴퓨팅센터와 양자연구동으로 구성된 ‘연세 퀀텀 콤플렉스’를 구축한다. 이 시설은 국내외 기업, 연구소, 병원과의 협력 연구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연세대는 2025년 3월 유네스코 ‘국제 양자과학기술의 해’를 맞아 송도 국제 캠퍼스에서 ‘양자컴퓨팅콤플렉스’ 개소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정 단장은 “산업 수요를 발굴하고 양자컴퓨팅 전반으로 기술 경쟁력 향상시킬 수 있다”며 “각 산업계마다 문제 유형에 따른 양자컴퓨팅 플랫폼 기반으로 솔루션을 제공하는 게 이 사업 궁극적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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