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 폐지 방향 두고 통신사-제조사-알뜰폰 ‘동상이몽’(종합)
[디지털데일리 강소현기자] 정부가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단통법)을 폐지하기로 가닥을 잡은 가운데, 폐지 이후 소비자 후생 저하 및 시장 혼선을 막기 위한 법적장치 마련을 위한 논의의 장이 여당 주재로 마련됐다.
1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박충권 의원(국민의힘) 주최로 단통법 폐지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세미나가 열렸다. 여당 차원에서 해당 법안과 관련해 논의의 장이 열린 것은 22대 국회 개원 이후 처음이다.
앞서 여당인 국민의힘은 앞서 박 의원이 대표발의한 ‘단통법 폐지’ 법안을 민생살리기 중점 법안으로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여당의 ‘단통법 폐지안’은 단말 할인을 받지 않은 소비자에게 통신비 절감 혜택을 주는 '선택약정 할인' 제도는 유지하고, 이를 위해 근거 법령을 '단통법'에서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이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날 산학연 관계자는 단통법이 그 수명을 다했다면서도 지난 10년 동안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에 당초 단통법 도입의 취지를 고려한 개선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하지만 개선방향을 두고선 사업자 간 미세한 입장차를 보였다.
◆ 이동통신사 : “단통법 폐지, 통신비 인하 측면에서만 접근 안돼”
먼저, 이동통신업계에선 단통법 폐지가 가계통신비 인하 측면에서만 이야기되고 있는 가운데, 소비자의 입장에서 가계통신비가 비싸다고 체감하는 이유가 과연 ‘통신비’ 때문인지 먼저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에서 정의하는 ‘가계통신비'에는 유·무선 통신비 뿐 아니라 ▲인터넷 요금 ▲휴대폰 단말기 비용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요금 등 콘텐츠·플랫폼 항목까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즉, 통신요금 인하만으로 소비자가 실질적인 가계통신비 절감 효과를 체감할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송철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 실장은 “가계통신비에는 통신비 외에도, 휴대푠 단말기 비용과 OTT 등 콘텐츠 이용료 등을 포함하고 있다”라며 ”단순히 가계통신비가 높다는 포괄적인 이야기보단, 구체적인 부분에 대한 정확한 지적이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동통신 3사의 경우 선택약정 할인을 통해 요금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유무선 결합상품과 결합하는 경우 할인율은 더욱 높다”라며 “이외에도 장기가입자·가족할인 등 다양한 프로모션을 제공하는 등 가계통신비 인하를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제조사 : 가계통신비 상승, 비싼 단말 때문?…“혁신 제품 공급 위한 투자 지속해야”
가계통신비의 한축을 이루는 단말 제조사에선 연구개발(R&D) 비용과 상승한 원자재 가격 등을 고려하면, 단말기 비용이 비싸다고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이동통신사와 마찬가지로, 가계통신비 인하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강조했다.
윤남호 삼성전자 상무는 “삼성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매년 성능이 개선된 혁신 제품을 지속 공급하는 등 (시장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연구개발 비용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라며 “또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의 상승 등이 제품 가격에 영향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뿐 아니라 모든 제조업체가 똑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국민들께 다양한 제품 선택권을 드리고자 20만원~70만원대의 중저가 단말을 공급하고 있다”라며 “지난해에는 80만원대 플래그십 단말인 갤럭시S23 FE를 출시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 알뜰폰 : “경쟁 촉진 통한 단말 지원금 확대? 제조사 위한 정책”
알뜰폰 업계에선 사업자 간 경쟁을 통한 지원금 확대가 실질적인 가계통신비 인하 효과가 있을지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더 많은 지원금을 받으려면, 더 비싼 단말을 구매해야하기 때문이다.
황성욱 알뜰통신사업자협회 부회장은 "가계통신비 절감을 위해 단말기 지원금을 활성화한다는데, 삼성하고 애플을 지원하는 정책이지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은 아니다“라며 ”단말기 가격을 낮춰야 한다면, (통신사가 아닌) 단말기 경쟁을 확대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이 가운데 알뜰폰 업계는 단통법 폐지에 따른 우려 속 ‘단말기 완전자급제’ 도입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단통법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단말기 완전자급제’는 이동통신대리점을 통해 이동통신서비스만 판매하고, 제조사는 단말판매점을 통해 단말기만 판매하는 구조를 말한다.
쉽게 말해, 이용자는 단말판매점에서 단말기를 구입해 이동통신대리점에서 요금제에 가입해야한다. 지금도 많은 소비자가 11번가·쿠팡 등과 같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단말기를 따로 구매한 뒤 알뜰폰 요금제와 결합해 사용하고 있다.
알뜰폰 시장의 경우 단통법 도입에 따른 자급제 시장의 활성화를 발판 삼아 성장했다. 실제 알뜰폰에서 자급제 단말기 이용자 비중은 압도적이다. 앞서 윤두현 의원실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에 요청해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알뜰폰에서 자급제단말기 이용 비중은 2022년 10월 기준 89.55%다. 현재는 90%를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알뜰폰 업계는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도입되면 자급제 시장이 더욱 활성화되어 외산 중저가 단말기 역시 다시 유통될 수 있다고 봤다.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MZ세대를 중심으로, 200만원대를 오가는 프리미엄 단말을 대신해 외산 중저가폰과 알뜰폰 요금제 결합을 선호하는 소비자도 더욱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제조사의 입장은 다르다. 소비자 불편이 늘고, 영업비용 증가에 따른 제조사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윤남호 상무는 “완전자급제가 도입되는 경우 소비자 불편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전체 유통망 축소가 불가피해보인다”라며 “제조사 입장에서 보면 유통망이 축소되면서 단말 판매 역시 급감하게 되고 결국 악순환의 출발점이 될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 휴대폰 판매점 : 불투명한 유통망은 그대로…“사전승낙제 폐지·유통망 신고제 필요”
유통채널 일각에선 단통법 폐지에 앞서, 불투명한 유통망에 대한 꾸준한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앞서 유통채널에선 이통사의 리베이트 차등지급이 유통채널 간 차별을 심화시키고, 이는 다시 이용자 차별로 이어졌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이러한 불투명한 유통구조를 개선하고자 이른바 '사전승낙제'를 도입했다.
사전승낙제는 전기통신사업자가 ‘판매점’을 대상으로 적격성 여부 등을 심사한 뒤 판매권한을 승낙하고 법령 준수여부 등을 관리하는 제도를 말한다. 불법 또는 편법 영업, 개인정보 유출 등으로 인한 이용자 피해를 방지한다는 취지다.
이종천 전국이동통신사업자협회 통신정책연구소장은 “현재 판매점에 한정된 사전승낙제를 폐지하고 판매점·대리점·온라인채널·중고폰·알뜰폰 사업자가 참여하는 유통망 신고제로의 전환을 제안한다”라며 “단통법이 폐지되는 경우 가장 큰 위험 요소는 이용자 차별인데, 일부 유통채널에선 이미 이용자를 기만하는 허위 광고들이 무수히 많다. 단통법 폐지 이후 이용자 및 골망상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유통망 신고제를 제안드린다”고 강조했다.
◆ 정부, 단통법 폐지 이후 부작용 적극 대응 약속
정부는 단통법 폐지 이후 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후속조치를 적극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먼저, 심주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장은 "선택약정 할인의 법적 근거는 유지하되 선택약정 할인 제도로 인해 지원금 경쟁이 저해되지 않도록 제도를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또 "알뜰폰 사업자의 경쟁력 강화와 중고폰 거래 활성화 등 다양한 시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주연 방송통신위원회 과장은 "사업자의 영업 자율성을 높여 자유로운 경쟁을 통한 요금 인하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라며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이통사와 유통점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시의성과 실효성 있는 제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도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은 “단통법 제정 당시 후발주자인 LG유플러스의 등장과 함께 지배적 사업자와의 경쟁이 촉진되면서 시장이 과열됐다는 이야기도 있었다”라며 “하지만 현 상황을 봤을 때 (시장에) 역동적인 경쟁이 있냐고 본다면, 한계가 확실한 것 같다. 시장에서 역동성을 높여야 한다는게 정부의 생각이고, 소비자 후생 증진으로 이어지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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