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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밸류業 금융②] ‘홍콩 ELS 사태’로 드러난 대형 금융사들의 민낯… 무너진 ‘신뢰’

최천욱 기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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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금융지주사를 중심으로 올해 금융권은 ‘밸류업(Value Up)’ 프로그램을 크게 강화하고있다. ‘주주 환원율’을 높이고 저평가된 시장 가치를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숫자(주가)를 높이는 것만으로 밸류업이 완성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후진적 지배구조 뿐만 아니라 ‘홍콩 ELS사태’ 수습과정에서 보여지고 있는 난맥상, 계속되는 배임·횡령 등 내부통제 문제 등 적지않은 과제를 해결해야 진정한 밸류업이 가능하다.

<디지털데일리>는 ‘2024년 밸류業 금융’ 기획 시리즈를 통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는 각종 문제들을 짚어보고 전문가들의 다양한 해법을 제시한다. <편집자>

[디지털데일리 최천욱 기자] 평화롭고 살기좋은 ‘치세(治世)’에는 누가 더 훌륭한지 제대로 분별할 수 없다.

그러나 난세(亂世)때는 다르다. 비로소 숨겨졌던 본질 경쟁력이 ‘위기관리 능력’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점에서 현재 진행형인 ‘홍콩H ELS 사태’는 국내 주요 은행들과 컨트롤타워인 금융지주사들의 부실한 위기관리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당장 3년전 ‘홍콩ELS’ 판매 과정에서 ‘불완전판매’로 피해를 입은 고객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은행이 ‘불완전판매’에 책임이 있으면 100% 배상하면 되는데, 무슨 근거로 기본배상율을 20~30%로 설정했느냐”는 피해 고객들의 분노에 누구도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합의 못하면 소송 하시든지”… 과연 피해 고객들에 할 소린가

금융 당국이 제시한 배상가이드라인과 함께 지난 5월 14일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가 발표한 5개 은행 대표 ‘자율배상’ 사례를 기반으로, 지난달 하순부터 KB국민은행을 비롯해 농협·신한·하나·SC은행 등 5개 은행과 피해 고객들과의 배상협상이 시작됐다.

금융 당국의 공식 발표는 없지만, 5개 은행이 이달 초까지 약 6000건의 자율 배상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합의가 이뤄진 경우는 비교적 배상율이 높게 책정된 경우고, 배상율이 낮게 책정된 경우에는 여전히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고객과 은행간의 자율배상협상이 타결되면 법적으로 ‘합의’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홍콩ELS 피해를 둘러싼 갈등이 종결된다. 만약 양측의 견해차가 크다면 법정으로 가는 수 밖에 없다.

사실 “합의 못하겠다면 소송으로 하시라”는 은행 직원의 말에 객관적 오류는 없다. 합의가 안되면 소송밖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도 이를 마치 “배째라”라는 식으로 고객이 인식되도록 방치한다면 이는 은행의 공감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상품 가입을 유도하면서 90도 폴더 인사를 할 때는 언제고 논란이 되니 ‘법으로 합시다’ 라며 은행이 안색을 바꾸는 것은, 위기가 닥쳤을때 고객을 전략적으로 응대할 매뉴얼이 부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ELS와 같은 고위험 상품을 판매할 경우, 그에 따른 리스크는 항상 염두에 둬야한다”며 “어떻게보면 고객과 오랜기간 축적해왔던 신뢰가 한꺼번에 붕괴되는 것은 은행의 입장에선 훨씬 더 큰 손실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금융당국 조사결과 드러난 ‘금융 불완전판매’ 사례들…순식간에 무너진 ‘신뢰’

일반인들은 대부분 은행 예·적금이나 보험 등 금융상품에 가입할 때, 수많은 약관을 꼼꼼히 읽어보지 않고 여기 저기 몇번씩 서명란에 체크한다. 글씨도 깨알같이 작을뿐만 아니라 그 많은 내용을 탐독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여전히 현실에선 은행 직원들의 ‘권유’가 상품가입이나 투자 의사 결정에 사실상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홍콩 ELS 사태’ 관련 기사에 “홍콩 증시가 설마 망하겠느냐, 안전하다고 하길래...”, “최소한 원금이 보장되는줄 알고 가입했다” 등의 댓글이 무수하게 달리는 이유다.

결과가 이렇게 되고보니, 그것이 고위험 상품을 팔아 성과 내기에 급급했던 은행 직원들의 무책임한 소리였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참고로, 금감원이 지난 14일 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공개한 주요 은행들의 ‘불완전판매’ 사례를 보면, 이같은 현실이 만연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금융권 내부통제 혁신에 대한 보다 강력하고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먼저 KB국민은행 사례의 경우, 40대 고객은 지난 2021년2월15일 투자목적, 재산상황, 투자경험 등 정보를 형식적으로 파악한 채 암 보험 진단금 4000만원을 정기예금에 예치하러 은행 지점을 방문했다가 직원으로부터 ELT를 권유받고 가입했다. 암치료비로 급하게 쓰일수도 있는 돈의 성격을 감안했다면, 굳이 원금 손실이 날 수도 있는 위험상품을 권유했다는 것이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또 NH농협은행의 경우엔 ‘70대 고령자’ 고객의 투자성향을 공격투자자로 분류하고, 손실 위험 등을 왜곡해 설명했으며, 통장 겉면에 확정금리로 오인할 수 있는 내용 기재 및 고령자 보호기준 등을 미준수했다며 은행측의 과실이 인정됐다.

신한은행 역시 ‘70대 고령자’에 대한 투자성향분석시 직원이 알려주는대로 답변하도록 유도했으며, 손실 위험을 왜곡해 설명했고, 통장 겉면에 확정금리로 오인할 수 있는 내용을 기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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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ELS 사태 사과없이 주가 부양위한 밸류업만 강조금융지주, 진정한 밸류업은 무엇인가

작년 12월부터 ‘홍콩H지수 ELS’에 대한 우려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3년 만기가 곧 도래하는데 홍콩H지수는 급락세였고, 엄청난 손실은 불보듯 뻔했다.

정확히 표현하면, 은행이 손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상품에 투자한 고객들이 손실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올 1분기에 손실이 속속 확정됐다. 이 기간 평균손실율은 50%가 넘었다. 투자 원금의 절반이 허무하게 날아간 것이다.

그러나 이 기간동안 은행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주요 금융지주사의 최고경영자(CEO)들중 ‘홍콩 ELS사태’ 피해 고객들에게 어떠한 사과도 없었다.

기업에게 불가항력의 ‘위기’는 언제든 닥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위기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 그런점에서 지금까지 나타난 국내 금융지주사들의 위기관리 능력에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그리고 솔직히 홍콩H 지수의 급락은 ‘불가항력’도 아니었다. 충분히 예방이 가능했다.

앞서 금감원은 1차 점검 결과를 발표하면서 “지난 2021년 1월11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따라 중국군과 연계된 중국 기업 투자금지가 발효되는 등 불확실성이 크게 고조됐었고, 동시에 ELS 편입 주가지수의 변동성 증가(위험 증가)에 따라 판매 한도를 감축해야하는데 국내 금융사들이 이를 등한시했다”고 지적했다.

즉, 은행권이 지난 2021년초 홍콩 증시 위기상황때 고위험 ELS 판매를 억제해야 했음에도 수수료 수익 증대를 위해 오히려 판매 한도를 증액해 판매했다는 것이다.

올들어 홍콩ELS 사태가 본격화된 이후, 5대 금융지주사들이 위기 극복 카드로 꺼낸 것은 엉뚱하게도 주가를 부양하기위한 ‘밸류업’이었다.

금융지주사들은 올 1분기 실적에서 적지않은 규모의 충당금을 쌓으면서 ‘홍콩 ELS 악재를 털어냈다’고 주주들을 안심시키는데 집중했다. KB금융지주가 8620억원을 충당부채로 반영하는 등 가장 많았고, 5대 금융지주 전체적으로는 1조6000억원 이상 충당금을 적립했다. 이어 최근 KB금융지주는 올 4분기중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밝히겠다는 예고 공시를 금융지주사중 가장 먼저 올려 주목을 끌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홍콩H 지수’가 최근 반등함에 따라 금융지주사들의 올 2분기 실적에선 보다 개선된 내용을 제시할 것이란 점이다.

올 하반기까지 홍콩H지수가 지금의 수준을 유지할 경우, 당초 예상보다 해당 기간에 만기가 도래하는 홍콩H ELS 상품들의 손실은 크게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의 입장에선, 최악의 상황을 피하면서 올 1분기에 확정됐던 홍콩 ELS 손실 배상협상을 다소나마 여유롭게 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된 것이다. 이는 피해 고객들의 입장에서도 긍정적인 것이다.

현재로선 피해 고객들로부터 100% 공감을 이끌어내는 협상은 불가능하다. 다만 홍콩ELS 사태를 원만하게 수습해 나가는 실력이 금융지주사들에겐 진정한 ‘밸류업’이란 각성이 어느때보다 요구되고 있다.

최천욱 기자
ltisna7@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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