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GPU 등장에 HBM4 경쟁 본격화…삼성·SK·마이크론 3파전 [소부장반차장]
[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엔비디아, AMD를 비롯한 글로벌 팹리스의 차세대 인공지능(AI) 반도체 로드맵이 공개되면서 이를 지원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도 불이 붙고 있다. SK하이닉스가 HBM3E까지 리더십을 이끌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마이크론이 추격에 시동을 걸면서 3사간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일(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에 위치한 국립 타이베이 대학교 스포츠센터에서 '엔비디아 컴퓨텍스 2024' 기조연설에 나와 미래 AI 가속기 로드맵을 공개했다. 젠슨 황 CEO는 이 자리에서 차기 GPU 아키텍처 코드명 '루빈' 플랫폼을 처음 공개했다.
루빈은 엔비디아가 공개한 AI GPU '블랙웰' 이후 불과 3개월 만에 내놓은 차세대 제품이다. 엔비디아는 내년 출시할 블랙웰 업그레이드 모델 '블랙웰 울트라'를 내놓고 오는 2026년 루빈·2027년 루빈 울트라를 순차적으로 출시할 계획을 세웠다. AI 반도체 시장의 독보적 입지를 확보한 만큼 경쟁자 추격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젠슨 황 CEO는 AI 반도체 출시와 함께 이에 탑재할 HBM 적용 제품도 언급했다. 2분기 출시할 호퍼 'H200'에는 HBM3E(5세대) 8단 6개가 탑재되며 하반기에 공개될 블랙웰 'B100'에는 HBM3E 8단 12개가 적용된다. 내년에는 HBM3E 12단 8개가 탑재될 블랙웰 울트라가 출시된다. 이날 공개된 루빈에는 6세대 제품인 HBM4가 8개 탑재되며, 2027년 출시될 루빈 울트라에는 HBM4 12개가 탑재될 예정이다.
이에 질세라 AMD도 AI GPU 출시 계획을 공개했다. 같은 날 리사 수 AMD CEO는 올해 4분기에 출시되는 'MI325X' 가속기 개발 계획을 밝혔으며, 2025년 3나노미터(㎚) 공정을 채택한 MI350·2026년 MI400을 순차적으로 내놓겠다는 목표를 드러냈다. MI325X에는 HBM3E 12단 6개, MI350에는 HBM3E 12단 8개, MI400에는 HBM4 8개가 각각 탑재될 예정이다.
AI 반도체 기업의 GPU 출시 계획이 공개되면서 HBM을 제조하는 메모리 기업의 경쟁 구도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특히 AI 반도체 시장이 점차 규모를 늘려가고 있어, 시장 점유율 90%를 차지한 엔비디아를 향한 공급 쟁탈전이 더욱 심화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엔비디아 H100에 HBM3를 독점 공급하며 시장 내 선두 입지를 구축했다. 올해 출시될 H200에도 HBM3E 8단을 공급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3분기를 목표로 HBM3E 12단 양산도 준비하고 있다. 당초 2026년 양산키로 했던 HBM4 12단 생산 계획도 1년 앞당기며 경쟁 우위 다지기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로 향하는 HBM3E 공급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AMD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시장 영향력 확대를 노린다. 삼성전자는 AMD의 MI300X에 HBM3를 공급한 바 있으며, MI325X 등에서도 HBM3E 12단 공급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론은 HBM3E 8단 제품을 엔비디아로 공급키로 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다만 SK하이닉스·삼성전자 대비 연간 HBM 생산능력 규모가 적은 만큼, 생산능력 확대를 통해 시장 점유율 확대를 노릴 전망이다.
반도체 업계는 SK하이닉스가 선점했던 기존 HBM 시장 구도가 HBM4부터 바뀔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D램 적층 단수가 높아지면서 칩 두께와 접착 간격까지 줄여야 하는 등 기존 대비 기술난도가 높아지는 데다, 후발주자인 삼성전자·마이크론의 인프라 구축에 따라 HBM 수급처가 크게 늘어날 예정이어서다.
기존 메모리 업체가 제조했던 로직 다이(Logic Die, Base Die)가 파운드리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도 주요 변수 중 하나다. HBM을 제어하는 로직 다이가 전력 효율성을 높이고 데이터 병목 현상을 줄이는 역할을 맡고 있어 초미세 공정을 채택해야 해서다. SK하이닉스는 TSMC를 통해 HBM4 로직 다이를 받기로 했고, 삼성전자는 자체적으로 보유한 파운드리를 통해 제조할 예정이다.
차세대 HBM 공정 기술인 하이브리드 본딩을 어떤 기업이 먼저 상용화하느냐도 지켜볼 대목이다. HBM은 D램 단층이 높아질수록 칩 두께가 얇아지는 탓에 고열에 따른 휨 현상, 불량 발생이 늘어나게 된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가 활용하는 어드밴스드 매스리플로우몰디드언더필(MR-MUF), 삼성전자·마이크론의 열압착 비전도성 접착필름(TC-NCF) 방식 유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이브리드 본딩 방식은 기존에 사용했던 솔더볼(범프)를 쓰지 않고 칩 유전체와 구리를 직접 접합하는 기술이다. 칩을 직접 연결하는 덕에 접합 부분을 고정하기 위해 사용하던 MR-MUF, TC-NCF를 사용할 필요가 없고, 전기적 연결성과 열 방출 면에서 뛰어나다. 업계는 하이브리드 본딩 방식이 적용될 시점으로 HBM4 16단 이후, HBM4E 등을 가리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HBM용 하이브리드 본딩은 MR-MUF, TC-NCF 등 인프라가 필요 없어 기존 경쟁 구도가 크게 바뀔 수 있다"며 "이 기술이 생산성·난이도 면에서 매우 높은 만큼, 고단 적층에서의 도입을 우선 안착시키는 기업이 향후 모멘텀을 가져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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