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산업계·소비자도 ‘플랫폼법’ NO…공정위 비판 목소리 커져[종합]
[디지털데일리 왕진화 이나연 기자] 31일 오전 10시, 공정거래위원회가 입법을 추진하는 ‘플랫폼 경쟁 촉진법안(가칭, 이하 플랫폼법)’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 3개가 서울 곳곳에서 진행됐다. 이는 플랫폼법이 최근 현안 중 가장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했음을 보여준다. 3개의 토론회가 열린 배경의도와 의견 또한 사실상 일치했다. 공정거래위원회를 제외한 각계각층이 모두 플랫폼법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것.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선 ‘소비자 권익 관점에서 본 플랫폼 경쟁 촉진법안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동시간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서울 강남 모처에서 ‘플랫폼 규제 법안과 디지털 경제의 미래’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고, 한국지역정보화학회 역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온라인 플랫폼 규제 법제의 쟁점 진단’으로 기획세미나를 정해 발표와 토론을 주고받았다.
◆소비자법학회·소비자단체, 플랫폼법 우려 커져
공정위가 지난해 12월 꺼내 든 플랫폼법은 독점적 지위를 가진 플랫폼 업체를 ‘지배적 사업자’(압도적 소수의 플랫폼)로 지정하고, 4대 반칙 행위인 자사 우대·최혜대우 요구·경쟁 플랫폼 이용 제한(멀티호밍)·끼워팔기 등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선 소비자 관점을 중심으로 플랫폼 업계는 물론 학계와 소비자, 국회, 공정거래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의 의견이 팽팽하게 오갔다.
예를 들어, 카카오 경우 카카오페이지 자체 웹툰이나 소설이 축소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카카오가 자사 상품이나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추천하기 어려워져, 카카오페이지가 자체 제작하는 웹툰이나 웹소설 등이 점차적으로 감소돼 소비자 선택권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소비자들은 카카오톡 선물하기나 카카오페이 등 연계서비스도 제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토론회를 주관한 컨슈머워치와 한국소비자법학회는 플랫폼법이 도입될 경우 소비자 후생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대부분 국내 빅테크 기업들이 다양하게 부가연계서비스를 펼치고 있는데, 플랫폼법으로 인해 자칫 ‘끼워팔기’로 의심받을 수 있다는 대목에서 이러한 혜택들을 줄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또한, 국내 기업만이 철퇴를 제대로 맞게 될 것이란 역차별도 제기됐다.
김희곤 의원(국민의힘)은 “한국은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가장 빠른 배송과 훌륭한 검색엔진, 편리한 생활 플랫폼을 보유한 국가”라며 “이러한 시스템이 곧 국가경쟁력인 상황에서, 소비자 후생을 저해할 수 있는 규제에 대해 재고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플랫폼 시장에 대한 시장획정부터 시작해 독과점이 형성됐는지, 그에 따른 소비자 피해 및 후생의 저하는 없는지 정확하고 심도 있는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네카오만 시름하는 ‘플랫폼법’?…스타트업계도 반대하는 이유
플랫폼법의 유력한 사업자 후보로는 미국의 애플, 구글, 아마존, 메타와 한국의 네이버, 카카오 등이 거론된다. 이들 기업에 대한 사전규제가 시장 경쟁을 촉진해 소상공인과 스타트업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란 게 공정위 입장인데, 정작 스타트업계에선 상반된 시각을 보인다.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핵심 플랫폼이 시장 중심에 서 있지만, 이런 서비스 생태계를 구성하고 작동하게 하는 건 주요 플랫폼 기업을 비롯한 크고 작은 업체들이다. 플랫폼 시장이 ‘연합체’적인 성격을 띠는 만큼, 법 영향력을 더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게 산·학계 지적이다.
이날 김원식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플랫폼 규제 법안과 디지털 경제의 미래’를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공정위는 사전규제 행위에 거대 플랫폼의 멀티호밍 제한을 금지하겠다고 했지만, 스타트업 입장은 다를 수 있다”라며 “네이버와 카카오와 전속계약을 하게 되면 대형 플랫폼과 혁신 기업 간 나눠 먹을 수 있는 파이가 커질 가능성도 있다”라고 전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도 “플랫폼법의 사전규제는 일정 기준을 넘어 성장하면 기업하기 힘들다라는 메시지를 시장에 던지는 것과도 같다”라고 비판했다. 즉, 정부가 나서 국내 플랫폼 기업의 규모에 한계를 두는 것이기에 플랫폼 스타트업계에도 악영향이 생긴다는 주장이다.
최성진 대표는 “성장에 제한이 있는 생태계에 누가 적극적으로 투자하겠냐”라며 “스타트업이 엑싯(exit)할 방법은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M&A)이 있는데, 한국에서 스타트업을 가장 적극적으로 인수하는 곳은 시장 독점 지적을 받는 네이버와 카카오”라고 부연했다.
한편, 서종희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지역정보화학회 주최로 열린 ‘온라인 플랫폼 규제 법제의 쟁점 진단’ 토론회에서 “유럽식 규제 입법은 ‘자국기업 보호’ 명목을 공식 천명하면서 미국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손발을 묶기 위해 법안을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성환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등 국회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학계도 유럽 사례를 비슷하게 이야기했다. 서 교수는 “유럽과 유사한 법안을 추진 중이던 미국은 사실상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관련 법안들을 모두 폐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위 측, 국내 사업자에 “플랫폼법 입법 여부 관계없이 경쟁력 유지해달라”
그러나 공정위는 각계각층 의견에 대해 사실상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박설민 공정거래위원회 경쟁정책국 디지털경제정책과장은 이날 국회 정책토론회에 참석, 플랫폼법은 국내 기업 성장을 부인하는 법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을 빌려 표현하면, 이 법은 ‘갑’이 다른 사업자를 배제하거나 ‘을’들을 시장에서 쫓아내려는 의도를 가지고 펼치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외치는 셈이다.
박 과장은 “원스토어는 한국 통신 3사와 네이버가 합작해서 만든 회사인데, 앱 시장에 야심 차게 진입해서 초반 약 20% 정도의 점유율을 차지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8~9% 수준으로, 회복 불능 상태의 사업자”라고 말했다. 이어 “구글 안팎으로 조사해 보니, 원스토어를 견제하라는 취지의 내부 문서들이 나오기도 했었다”며 “플랫폼법은 어떤 상품 자체를 (서비스나 출시 등)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숨어 있는 악의들을 규제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박 과장은 구글의 국내 운영체제(OS) 시장 독점 예시도 들었다. 운영 체제 시행과 관련해, 공정위는 지난 2021년 하반기 2200억원이라는 과징금을 구글에 부과했다. 그는 “2200억원이라는 과징금을 1위 사업자에게 부과할 수 있는 정부 부처는 공정위 말고는 어디에도 없다”며 “‘공정위가 해외 기업의 매출 확보를 못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매출이 확보되니까 과징금이 부과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근거가 있으니 부과할 수 있고, 제재할 수 있고, (위법행위 등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이라며 “실제로 고등법원에서 이번에 승소까지 했다. 해외 기업(을 상대로) 집행하는 능력은 공정위를 의심할 수도 있지만, 의심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촉구했다.
한편, 박 과장은 토론회가 끝난 직후 <디지털데일리>에 디지털경제연합과 조만간 다시 만나기 위해 일정을 협의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설 연휴 이전 플랫폼법 초안이 나오거나 공유될 수 있다는 관련 보도 등에 대해 “본 법안은 관련 부처와 현재 논의 중인 만큼, 정확한 공개 일정은 미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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