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SW 사업, 행정 전산망 마비 계기 삼아 개선될까
[디지털데일리 이종현기자] “시스템이 구축된 이후에는 통합 유지보수 기업을 선정해 맡긴다. 이때는 시스템에 활용된 수십개 소프트웨어(SW)에 대한 유지보수 및 라이선스 비용이 포함된다. 그런데 현실은 SW 라이선스 비용을 다 더한 수준의 예산을 책정한다. 사실상 통합 유지보수하는 비용은 없는 상태로, 시스템통합(SI) 기업이 그 비용을 안고 수주하는 것이 현실이다.”(조준희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회장)
11월17일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행정 전산망이 장시간 마비된 사태 이후 보완책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문제가 발생했던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차세대 사업의 필요성이 부각된 데 더해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을 위한 공공 SW 사업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중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홍석준 의원(이하 국민의힘)이 12월14일 주최한 ‘공공SW사업 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도 그 일환이다. 행정안전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등을 비롯해 산업계 인사들이 참여해 갖가지 의견을 나눴다.
조준희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 회장은 개회사에서 “오프라인으로 제공하던 공공서비스 업무를 국민들이 편리하게 이용 가능한 정보화 시스템 기반으로 전환하면서 관련 사업과 예산이 증가하고 있지만 국가 정보화 시스템에서 품질 이슈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예산이 함께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장애가 반복될 것”이라며 현 세태를 꼬집었다.
또 “현재 각 부처별로 역할이 나눠져 있다 보니 누구의 잘못이냐 따지는 일이 반복하는데, 디지털 플랫폼 정부가 오너십을 가지고 각 부처의 모든 것을 해결하는 자세로 임한다면 훨씬 더 나은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신도 밝혔다.
조 회장이 주장한 내용은 SW 산업계가 10여년 이상 요구해온 ‘SW 제값 받기’의 일환이다. 기술력보다는 가격 경쟁력에만 치중하다 보니 산업계가 발전하지 못하고 결과물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이번 행정 전산망 장애가 그 사례가 됐다.
KOSA 산하 정책제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용성 와이즈넛 대표는 “공공은 한국 기업들에게 기술을 검증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제공해 국내 SW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중요한 시장이다. 하지만 협회 회원사들 중 공공 사업 비중이 높은 곳들은 영업이익률이 0.4%에 불과하다. 기업이 수익을 거두고 재투자를 통해 기술적인 혁신을 이뤄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높은 공공 SW 사업의 유찰률을 조명했다. 강 대표에 따르면 11개 이상의 80억원 이상 입찰 사업에서 7개의 유출이 발생했다. 경쟁을 통해 좋은 시스템이 개발돼야 하는데, 수익성이 낮은 사업 탓에 입찰 참여율이 저조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10여년간 정부는 SW에 대한 예산을 계속 늘려왔다. 2013년 4조원에서 2022년 11조5000억원으로, 10년새 2배 이상 늘렸다. 그러나 예산의 증가 이상으로 구축되는 시스템의 양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사업당 예산은 그만큼 상승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유호석 SPRi 산업정책연구실장은 SW의 특성을 반영한 유연한 계약제도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전통적인 사업의 상당수가 하드웨어(HW)를 중점으로, 사전에 목적물을 정해두는 도급 계약을 전제하고 있어서 사업 진행 과정에서 비용이 늘어나거나 하는 부분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고 피력했다.
토론에 참여한 김회수 행정안전부 디지털정부정책국장은 “산업계에서 요구하는 개발 가격 인상이나 과업 변경에 따른 대가 지급은 너무 타당한 이야기다. 행정안전부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모두 공감한다. 거의 모두가 그래야 한다고 하지만 한 군데서 발목을 잡고 있다. 기획재정부”라며 산업계에서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국회에서도 도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행정 전산망 마비를 계기로 공공 SW 사업에 대한 대기업 참여 제한 제도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김현철 시장환경개선팀장은 “이번 일이 대기업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그에 따르면 대기업이 사업을 독차지하던 10여년 전에도 시스템 장애, 부실 구축에 대한 논란은 존재했다. 단순히 대기업 참여 제한을 완화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조준희 회장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방법론이 있겠지만, 결국 예산을 더 투입할 수밖에 없다. 예산은 늘지 않고 서비스 개수만 늘어서는 해결이 안 된다”며 “이런 자리에 기획재정부가 참여해 함께 논의했으면 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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