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창사 이후 첫 공동대표 체제 택한 엔씨…체질 개선 위한 승부수
[디지털데일리 문대찬 기자] 실적 악화에 빠진 엔씨소프트(엔씨)가 창립 27년 만에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하며 올 하반기부터 본격화한 체질 개선에 고삐를 죈다. 주력인 게임 사업을 이어가면서 적극적인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신사업 확장에도 동력이 실릴 전망이다.
엔씨는 11일 박병무 VIG파트너스 대표를 공동대표 이사 후보자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내년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공식 선임되면 김택진 대표와 함께 엔씨를 이끌게 된다. 엔씨는 1997년 이후 창업자인 김 대표의 단독 대표이사 체제로 줄곧 운영돼왔다.
◆26년 만의 투톱 체제, 위기감 반영됐나=이같은 파격 행보는 올 하반기부터 시작된 대대적 체질 개선의 연장선이다. 엔씨는 올해 주력 게임인 ‘리니지’ 시리즈 경쟁력이 약화하면서 성장세가 뒷걸음질했다. 연결기준 올 3분기까지 엔씨 누적 매출은 1조342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약 34% 줄었다. 3분기 영업이익은 16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9% 감소했다.
엔씨는 지난 10월 변화경영위원회를 발족하며 체질 개선 의지를 드러냈다. 구현범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중심이 된 변화경영위원회는 조직‧의사결정 체계 정비, 비용 절감, 신성장 역량 및 경쟁력 강화를 꾀하기 위해 마련됐다.
플랫폼과 장르를 다변화한 신작도 속속 선보였다. 지난 9월 캐주얼 퍼즐게임 ‘퍼즈업:아미토이’를 공개했고, 지난 7일에는 PC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쓰론앤리버티(이하 TL)’를 출시했다. 11년 만에 자체 지식재산(IP)으로 개발된 이 게임은 기존 엔씨 작품과 달리 자동사냥과 확률형 아이템을 전면 배제하는 ‘환골탈태급’ 변신으로 눈길을 모았다.
소통 행보도 강화했다. 게임 전시회 ‘지스타(G-STAR)’에 8년 만에 복귀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가 직접 나서 부스를 돌보는 등 강한 변화 의지를 확인했다.
◆법조계 출신 경영 전문가, 엔씨 시선 향한 곳은=공동 대표이사 후보자로 예정된 박 후보자는 김 대표와 고등학교(서울 대일고)와 대학(서울대) 동문이다. 엔씨와는 사외이사와 사내이사 등을 거치며 2007년부터 인연을 이어왔다. 2013년부터는 엔씨 경영자문을 맡아왔다.
그는 1985년 사법연수원을 15기로 수료하고, 김&장 법률 사무소 변호사를 거친 법조계 출신이다. 하지만 2000년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구 로커스홀딩스) 대표를 맡으면서 경영자로서 첫 발을 뗐다. 이후 TPG 아시아(뉴브리지캐피탈) 한국 대표 및 파트너, 하나로텔레콤 대표, VIG파트너스 대표 등을 역임하며 기업 경영과 투자 전문가로 거듭났다.
엔씨는 중장기적 컴퍼니 빌딩 전략을 가속하고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박 후보자를 영입했다고 밝혔다. 컴퍼니 빌딩 전략이란 사업 아이템 선정부터 사업 방향, 투자, 마케팅 등에 의사결정권자가 적극 개입해 유망 사업을 육성하는 사업 전략이다.
이에 따르면 박 후보자는 투자와 신사업 등 분야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의 지휘 아래 적극적인 M&A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엔씨는 앞서 게임과 비게임을 가리지 않고 잠재력이 있는 기업과 M&A를 추진할 계획이라면서도 신중한 입장을 유지해왔다. 엔씨가 M&A를 추진한 것은 2012년 개발사 엔트리브소프트를 1085억원에 인수한 게 마지막이다.
홍원준 엔씨 최고재무책임자(CFO)는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M&A가 필요한 시점이다. 실적이나 주가 부스트를 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면서도 “많은 국내외 회사들이 M&A를 시도했다가 인수할 때의 가치가 오히려 증가되기보다는 인수한 회사의 여러 가지 재정이나 인수금융이 인수한 주체인 본사에 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경계한 바 있다.
‘바르코 LLM’ 등 생성형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한 엔씨 신사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엔씨는 내년 3월 1000억개에 달하는 AI 언어모델을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 게임 개발에서 나아가 교육, 로봇,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익화를 꾀하겠다는 전략이다.
엔씨는 현재도 AI를 앞세운 BTB 사업에서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다. 박 후보자가 기업 전략에도 많은 경험과 식견을 갖춘 인물인 만큼, 이러한 행보에 더욱 힘이 실릴 것으로 기대된다.
◆김택진은 게임에 집중… 영향력 여전할 듯=공동대표 체제 속에서도 김 대표의 엔씨 내 영향력은 유지될 전망이다. 박 후보자가 신사업을 돌본다면, 김 대표는 게임 분야 지휘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김 대표는 평소에도 게임 사내 테스트에 적극 임하거나, 직접 게임 제작에 참여하는 등 사측 게임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다. 지스타를 통해 공개된 신작 3인칭 슈팅게임 ‘LLL’ 개발 과정에서도 적극적인 의견을 타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김 대표는 지스타에서 취재진과 만나 “엔씨가 게임 분야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장르를 찾아내려고 노력 중”이라며 “새로운 세대가 자라나면서 고객분들 세대도 새롭다. 서브컬처가 메인 장르로 바뀌는 것도 보고 있다. 이용자가 하고 싶어하는 게임 형태가 바뀌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를 선도하려 노력하고 있다”며 엔씨 게임의 달라진 방향성을 제시한 바 있다.
그는 지스타는 시작일 뿐이라면서 “내년이나 내후년이 훨씬 기다려진다. 보여드리고 싶은 작품이 몇 개 더 있다. 한걸음, 한걸음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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