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과연 이게 최선일까… '상생금융'에 불똥 튄 보험사들
[디지털데일리 권유승 기자] "저희끼리는 삥을 뜯긴다고 표현을 해요."(A보험사 관계자)
듣기 민망한 직설적인 표현이다.
이처럼 '상생금융'은 그 순수한 취지와는 무관하게, 금융권 내부에서 압박으로 느끼는 상황도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은행권에 이어 점차 보험업권도 상생금융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전이되고 있는 분위기다.
상생금융은 사회적 책임을 갖고 있는 금융사들이 금융소비자의 고통을 분담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즉, 금융사의 초과 이익을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금융 취약계층에게 혜택으로 돌려주자는 것이다.
은행권은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대출로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지난해부터 상생금융에 나서왔다.
이어 일부 제2금융권도 올해 상반기부터 하나 둘 상생금융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런 상생금융이 또 다시 본격적인 수면위로 올라온 것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막대한 이자로 수익을 얻고 있는 은행권에 대해 강도높은 비판 발언을 하면서다.
이에 금융당국도 발 맞춰 은행권에 상생금융을 주문했고, 곧바로 주요 금융지주사들은 부랴부랴 추가적인 상생금융 마련에 돌입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상생금융의 취지 자체는 좋다.
특히 장기간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그에 따른 대출 이자로 수익을 얻어 역대급 실적을 경신하고 있는 은행권이 위기를 겪고 있는 취약계층 차주들에게 금리 인하 등의 방안을 내놓는 것은 사회적 금융기업으로서 어쩌면 마땅한 처사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제2금융권, 특히 보험사들에게까지 이런 잣대를 들이 대는 것은 다소 무리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예상을 깨고 보험사들도 최근 역대급 실적을 경신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올해부터 적용된 새회계기준(IFRS17)에 따른 단편적인 회계상의 실적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예를들어 보험계약으로 인한 미래의 수익을 매년 나눠서 인식하는 부분을 낙관적으로 가정할수록 당장의 실적은 높아보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외에도 IFRS17 체제로 변경되면서 적용되는 여럿 계리적 가정 등이 있지만, 결론은 이 같은 보험사들의 실적이 단순히 고금리 시장에 힘입어 막대한 보험료를 취해 이익을 얻었다고 보기엔 어렵다는 지적이다.
그나마 금리와 연관된 보험상품을 꼽으라면 은행의 예·적금 성격과 비슷한 저축성보험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저축성보험은 보험사들에겐 IFRS17 체제하에서 부채로 인식 되기 때문에 사실상 크게 드라이브를 걸어 수익을 취하는 주요 상품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이마저도 대부분 저축성보험을 취급하는 생명보험사에 해당 되는 부분이며, 전체 보험에서 저축성보험이 차지하는 비율 또한 크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생보사들은 대부분 상생금융 방안으로 저축성보험에 우대 금리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상품을 개발하는 실정이며, 저축성보험과 크게 연관이 없는 손해보험사들의 경우엔 상생금융 마련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후문이다.
더구나 보험사들은 초장기 상품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취약계층의 혜택을 위한다는 취지로 자칫 상품을 잘못 건드렸다간 추후에 역마진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어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
물론 보험사들도 은행처럼 대출 관련 상품을 취급하기는 하지만 그 비중이 미미하다.
이런 가운데 상생금융에 대한 압박 아닌 압박이 이어지자 보험사들은 결국 실질적으로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고 상생금융에 동참한다는 제스쳐가 커 보일 수 있는 몇몇 보험 상품을 중심으로 인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보험료 인하 체감 지수가 높은 자동차보험과 실손의료보험, 이른바 '국민보험'에 손을 댈 것이란 전망이 높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보면, 자동차보험과 실손보험은 국내 보험사들에겐 만년 적자상품으로 거론되는 애물단지로 꼽힌다.
최근엔 코로나19 및 제도적 효과 등으로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내려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불과 몇년전만 하더라도 이들 상품은 의도적으로 디마케팅을 하는 보험사들이 있을 정도로 보험사 입장에서는 소위 국민들에게 '팔기 싫은' 상품으로 거론 돼 왔다.
이에 더해 보험사들은 추가적인 상생금융 방안으로 사회공헌기금 등을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러한 부분들을 종합해보면, 보험사 관계자들의 '삥을 뜯긴다'라는 푸념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내달 6일 보험사 CEO들과 간담회를 갖고 상생금융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생금융의 본질적인 취지를 돌아보면, 보험사들에겐 상생금융이 야당이 내세우고 있는 '횡재세'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은행권의 횡재세에 대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행위'라고 표현한 금융당국이 도리어 보험사에겐 실질적으로 횡재세를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다.
보험업권이 상생금융에 동참하되 그 방법 자체는 은행권과는 다른 창의적인 무엇이 제시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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