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기본조차 지키지 못한 배터리협회 유감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협회(協會)란 무엇인가? 같은 목적을 지닌 이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세워지는 단체다. 특히 산업계에 속하는 협회는 같은 시장을 공유하는 기업들의 소식을 정확히 전달하고, 때론 불리한 규제에 맞서 업계의 의견을 대변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협회장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대표)도 마찬가지다. 2011년 세워진 이래 2013년부터 국내 최대 배터리 산업전시회인 ‘인터배터리’를 기획하고 회원사들의 활동상을 널리 알리고 업계의 목소리를 전해왔다. 전기차용 중대형 배터리 시장이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폭풍성장하는 가운데 글로벌 톱 수준인 한국 배터리 업계를 대변하는 협회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실제로 올해는 인터배터리 행사를 유럽, 독일 뮌헨으로 확대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사소하지만 중요한 ‘기본’를 놓친 배터리협회와 그들의 대응에 유감을 표한다. 배터리협회는 15일 공식배포한 자료를 통해 인터배터리 유럽 2023에 참가 중인 한국기업 ‘금양’이 ‘최근 공격적으로 배터리 사업을 확장 중인 친환경 화학기업 ‘금양’에서는 전시회를 통해 4680, 21700 고용량 원통형 이차전지와 2억셀 제조공정을 소개하여 유럽 현지 사업 확장을 공식화함’이라고 명시했다.
4680 배터리는 전기차용 원통형 배터리 중 유력한 차세대 제품으로 뽑히는 규격이다. 테슬라와 같은 글로벌 전기차 제조사, 그리고 유수의 배터리 제조사들도 4680 배터리 개발과 양산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 이를 실제로 금양이 해냈다면 큰 주목을 받을만한 일이 분명하다. 배터리협회와 유럽 인터배터리 행사를 무대로 이 같은 ‘쾌거’가 최초로 전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실제 사실과는 달랐다. 16일 오전 금양 측에 직접 확인한 결과 이번 전시회에는 아직 개발 단계인 4680 시제품 정도가 소개됐을 뿐이다. 21700 배터리는 금양이 이미 지난해 6월 개발을 완료하고 최근 생산공정을 공개한 제품이다. 배터리협회는 마치 4680와 21700 배터리가 함께 전시된 것처럼 자료를 배포한 셈이다. 시제품과 완제품의 가치 차이는 크다.
실기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사이 잘못된 정보를 접하고 큰 혼란을 겪은 독자들과 금양 주주들이다. 물론 잘못된 정보를 바로 보지 못한 기자 역시도 반성한다.
그러나 배터리 협회는 사실과 다름을 인지한 직후에도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공신력 있는 기관이 잘못된 내용의 자료를 배포하고 이를 인지했을 땐 그 즉시 정정 자료 및 해명 내용과 재발방지조치를 발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배터리협회는 16일 이른 오전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9시간 이상 지난 지금도 아무 대응도 없다. 시차가 다른 독일 현지와 소통이 어려운 상태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현재 독일은 모두가 깨어 있을 오전이다. 간단한 문자 메시지만으로도 국경 없는 실시간 소통이 이뤄지는 시대에 시차와 거리를 운운하며 대응을 미루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다. 심지어 입장 발표는 차치하고, 배터리협회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된 오보 자료를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최소한의 조치조차 하지 않고 있다. 협회의 조직체계와 문제대응 수준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사소하지만 신뢰는 작은 것으로부터 차곡차곡 쌓인다. 업계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협회가 오히려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혼란을 가중하면서도 문제 의식을 갖지 못하는 점이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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