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센터 설립 절차만 3년"…모래주머니 차고 뛰는 K반도체
- 행정절차 하세월…반도체 특별법 답보상태
- 국내보다 한국 기업에 더 적극적인 미국·유럽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반도체 한파에도 주요국 패권 다툼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해외 기업에 막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까지 자국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다.
우리나라 업체들 역시 미국, 유럽 등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는 형국이다. 이를 개선하려는 법안 개정마저도 지지부진하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 그룹의 반도체 장비 계열사인 세메스는 2023년 말 경기 용인 연구개발(R&D) 센터를 착공할 예정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앞선 일정이다.
세메스는 지난 2020년에 해당 내용에 대한 투자의향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이달 용인시는 세메스로부터 R&D 센터 건립을 위한 승인 신청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이후 관련 부서 협의 및 경기도 산업단지계획심의를 거쳐 용인시가 최종 승인하게 된다.
R&D 센터 특성상 반도체 공장만큼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 실제로 세메스는 약 2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그럼에도 착공까지 3년 이상 소요된 셈이다.
용인시에는 반도체 클러스터라는 또 다른 아픈 손가락이 있다. 기반 인프라 1조7000억원, 산업설비 120조원 등 122조원 규모 반도체 생산 및 연구시설이 들어서는 산단이다. 산단 내 4개 공장을 짓는 SK하이닉스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체 등이 대거 입주할 전망이다.
역시나 문제는 지나치게 늘어진 스케줄. 클러스터에 대한 첫 발표는 2019년 2월이다. 3년을 넘어 4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본공사에 돌입하지 못했다. 핵심 입주기업인 SK하이닉스는 2025년경 첫 번째 팹 구축을 개시한다. 클러스터 조성 계획이 나온 지 6년 만의 일이다.
최근 용수 이슈가 해결되면서 내년 상반기 산단 착공 가능성이 커졌으나 지장물 및 문화재 조사가 남아 재차 지연될 우려도 남아있다.
반도체 소재사 램테크놀러지의 신공장 설립도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이 회사는 지난 2020년 2월 300억원을 들여 충남 당진에 불화수소 생산라인을 마련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역주민 반대에 이어 당진시 건축 불허 처분까지 떨어지면서 행정소송에 들어갔다. 여전히 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불행 중 다행으로 새로운 시장 부임 이후 긍정적인 분위기가 형성 중이라는 후문이다.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법안도 계류 중이다. 반도체 특별법 한 축인 ‘국가첨단전략산업법 개정안’이 발의 4개월 만에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었으나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높이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야당 반대에 막혀있다. 연내 통과되지 못하면 내년 반도체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는 사실상 어려워진다.
반면 미국을 비롯해 유럽, 일본, 인도 등은 파격적인 지원 제도를 내세워 반도체 투자 유치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의 노골적인 제재에 시달리는 중국은 자국 기업을 키우기 위한 대대적인 지원책을 실행하거나 준비 중이다. 한국과 대비되는 양상이다.
오히려 세계 각국에서 삼성, SK 등의 현지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물밑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이어 11월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찾았다. 반년 만에 외국 정상 3명이 특정 기업의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것이다. 자기 나라에 반도체 생산라인을 지어달라는 우회적인 표현으로 풀이된다.
양향자 국민의힘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장은 “반도체 투자는 시간 싸움이다. 적절한 시기를 놓치면 경쟁력 저하는 물론 반도체 주도권을 다른 나라에 내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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