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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 주문 못하는 사람 없도록…‘디지털 권리장전’ 초읽기

백지영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디지털 시대, 국민의 기본 권리를 보장해주는 ‘디지털 권리장전’ 수립이 본격화된다. 이를 통해 디지털 디바이드(격차)나 잊힐 권리,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의 디지털 권리를 보장받고 궁극적으로 시민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이다.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제2차관은 30일 서울 중앙우체국에서 제13차 디지털 국정과제 연속 현장 간담회를 개최하고 ‘디지털 권리장전’ 마련 방안 논의를 펼쳤다.

디지털 권리장전은 지난 9월 발표된 ‘뉴욕 구상’, ‘대한민국 디지털 전략’의 후속조치로 디지털 시대 온·오프라인 모든 영역에서 국민의 기본권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원래 권리장전(Bill of Rights)은 명예혁명 이후 영국 의회가 왕으로부터 받아낸 권리 선언문을 의미한다. 시민의 권리목록을 담고 있다는 법률이라는 의미에 ‘디지털’이 붙으면서 디지털 세계에서 개인의 권리에 대한 규정한 문서로 해석된다.

이날 발제를 맡은 홍선기 독일정치경제연구소 박사는 “디지털 권리장전은 강제적 구속력은 없지만, 향후 디지털 시대 권리 보호를 위한 입법 방향을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으로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국민의 디지털 권리에 대한 의식을 함양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이는 입법 가이드라인을 기본 토대가 된다는 설명이다.

이미 해외에선 디지털 권리장전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유럽은 디지털 디바이드에 대비하기 위한 디지털 기본권 헌장 초안을 마련했으며, 미국 역시 현재 디지털 권리장전을 작업 중이다.

홍 박사는 “더 이상 디지털 권리장전을 미룰 수 없는 상태”라며 “디지털 권리장전이 늦으면 늦을수록 디지털 관련 권리의 보장과 향유가 늦어진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에서 논의되는 디지털 권리의 주요 내용으로는 ▲인터넷 접근·이용권 ▲익명표현의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잊혀질 권리 ▲디지털 정보에 관한 형사절차적 권리 ▲디지털콘텐츠에 대한 지식재산권자의 권리 등이다.

김명주 서울여대 교수는 “디지털 대전환은 국민의 기본권을 이전보다 효과적으로 구현하도록 지원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약화되거나 심지어 무시할 위험도 내재하고 있다”며 “이에 디지털 신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이에 한정해 관련 사용자의 권리보장을 윤리, 규제, 법의 형태로 반영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이는 특정한 디지털 기술, 제한된 이해당사자를 중심으로 이뤄져 전체 국민의 다양한 권리를 균형 있게 고려하기 어렵다”며 “결국 디지털 사회를 살아가는 국민 전체의 권리를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게 보장하기는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마련이 필요하다”며 디지털 권리장전의 수립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현재 디지털 권리장전 수립에 참여하고 있는 김 교수는 “이달 중 실무TF에서 초안을 마련하고, 내년 1분기 약 20명의 자문단이 초안을 검토한 후에 2분기 80명의 전문가그룹이 수정안을 검토할 계획”이라며 “이후 일반 국민 대상의 의견을 수렴해 7~8월경엔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후 진행된 토론에서는 필요한 시점에 적절한 논의가 시작됐다는 평가와 함께 디지털권리는 물론이고 디지털 의무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 제시됐다. 특히 노약층과 장애인 등 디지털 소외계층 등의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 교수는 “보통 디지털 격차라고 하면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을 하지 못하는 노인세대 모습이 떠오른다”며 “이같은 디지털 격차 문제는 디지털 소외계층이라는 문제보다는 설계원칙 표준화 등의 문제로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디지털 권리장전에도 소외 계층의 디지털 권리를 보장하는 설계로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은 “권리장전의 의미가 군주의 억압에 자유권 확보하려는 사람들이 최초로 문서를 만들고 이것이 시민혁명으로 이어져 각국 헌법이 여기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그런데 지금 디지털 권리를 억압하는 군주는 누구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이어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디지털 디바이드 격차 해소가 실질적 논의가 돼야 한다”며 “스마트폰이 비싸서, 통신료 부담으로 디지털을 활용하지 못한다면 이건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에 정부만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디지털포용본부장은 “권리장전 그 자체가 법은 아니지만 중세봉건사회를 가시적으로 종결시킨 시대적 의미가 있다”며 “뿐만 아니라 근대시민 개념까지 나타난 것을 고려하면, 이는 정치, 사회적 함의 뿐 아니라 경제적 함의까지 가져간다는 점에서 시대사적 전환의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측면에서 디지털 권리장전은 구속력은 없지만 기존에 차별적이고 소외되고 불공정한 측면 있었던 온라인, 인터넷 시대의 가시적 종결을 의미한다”며 “이를 종결시키면서 새로운 지능정보사회의 새로운 질서, 경제, 디지털 신경제 촉발되는 것을 국민과 함께 만들어보자는 시대적 의미”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윤규 차관은 “(디지털 권리장전 수립은) 미래 대한민국을 디자인하는데 큰 방향성을 갖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있지만 시민이 중심이 되어 국민 중심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지영
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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