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지(C/O) 표시’는 말 그대로 수출입 대상이 되는 제품이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졌는지를 표시하는 문구다.
WTO(세계무역기구) 회원국 또는 FTA(자유무역협정)을 맺은 국가들, 또는 기타 다양한 형태로 경제블럭이나 공동체를 맺은 국가들은 예외없이 소비자가 원산지 제품을 확인할 수 있도록 ‘물품의 확인 가능한 위치’에 정확하게 원산지를 표시해야한다.
아울러 수출국에서 발급된 원산지 확인 서류 또는 원산지 인증 번호를 무역서류에 표기해야한다.
원산지표시가 부실하거나 서류가 미비하면 관세 감면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또는 추후 원산지 실증 조사를 통해 혜택받는 관세를 전부 토해내고 관세법상 벌칙까지 부과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원산지 표시'는 두 얼굴을 가졌다.
당초 ‘원산지 표시’는 회원국들간 관세 혜택을 주기위한 증표의 역할을 하지만 때로는 상대국을 견제하기위한 무역 보복 수단으로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원산지 표시의 진위를 문제삼아 통관 절차를 까다롭게 하거나 고의로 지연시킴으로써 무역규제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이다. 통관을 제때하지 못한 기업은 판매시기를 놓쳐 막대한 손실을 입기도 한다.
그런데 아주 특별하게 이같은 ‘원산지표시’가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최근 대만을 방문하자, “‘하나의 중국’원칙을 미국이 훼손하려한다”며 중국이 강력 반발하고, 실제로 대만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등 긴장이 크게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5일(현지시간) 일본 니케이신문, 로이터 등 외신들은 중국 통관 당국이 대만에서 중국으로 선적되는 일부 제품에 대해 세관 규정에 부합한 원산지 표시를 요구했다고 전했다.
특히 니케이는 중국에서 애플 아이폰을 위탁생산하는 페가트론 공장으로 향하는 대만산 부품들에에 대해 ‘대만, 중국’(Taiwan, China) 또는 ‘차이나 타이페이’(Chinese Taipei)로 표기해야 한다는 표시 규정을 애플 등 관련 업체들에게 철저하게 준수하도록 강제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즉, 대만에서 중국 본토로 수출되는 모든 제품의 표식에 ‘중국’(China, Chinese)을 표시하라는 압박이다.
만약 '중국'이란 표시가 생략된채 단순히 제품에 ‘대만(타이완)’ 또는 ‘타이페이’ 등으로 표시될 경우, 중국으로 반입이 안될 수 있다는 의미다.
통상 규제의 측면보다는 대만이 ‘하나의 중국’에 포함됐다는 사실을 미국에 분명히 주지시키겠다는 퍼포먼스다.
대만에서 중국으로 조달되는 '아이폰' 부품중에 이같은 원산지 표시 문제로 통관이 지연됐다거나 통관이 중단됐다는 일부 보도도 나왔지만 아직 공식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다만 애플을 비롯해 중국 비중이 큰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들이 원산지 표시 등 다양한 형태의 '비관세장벽'(NTB) 리스크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우리 나라도 이같은 정치적 이슈로 '원산지 표시' 문제가 세계적인 관심사로 주목받은 적이 있다.
지난 2016년 2월, 폐쇄됐지만 과거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수출할 경우, 이를 한국산으로 볼 것인가가 매우 중요한 이슈였다. 북한 지역에서 생산된 물품으로 간주되면, 즉 원산지가 북한산이면 관세헤택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당시 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FTA 협상국들과 협의과정에서 대한민국 헌법상 주권이 한반도 전역에 미치므로 개성공단 물품도 한국산으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해 관철했다. 지난 2015년 중국도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했다.
물론 여기에는 단순히 관세감면이란 경제적 혜택보다는 '한반도의 주권 국가는 대한민국'이란 의미를 전세계에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훨씬 큰 정치적 의미가 부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