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IT

[주간 블록체인] “한국에선 한국 법을”…바이낸스KR 폐업으로 본 국내 ‘규제 칼바람’

박현영


[디지털데일리 박현영기자] 한 주간 블록체인‧가상자산 업계 소식을 소개하는 ‘주간 블록체인’입니다.

이번주 비트코인(BTC) 가격은 한 때 하락했지만 이내 회복됐습니다. 이후 더욱 상승해 2700만원 선을 돌파했습니다.

반면 이번주 시가총액 3위 가상자산인 리플(XRP)은 지난주에 비해 47% 떨어지며 폭락했습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XRP를 ‘미등록 증권’으로 보고 발행사인 리플사(社)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XRP가 증권으로 규정된다면 증권 거래 라이선스가 없는 대부분의 미국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XRP를 상장 폐지할 가능성이 큽니다. 소송 결과가 나오는 데까진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SEC가 소송을 제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투자자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죠. 때문에 XRP 가격도 계속 하락 중입니다.

해외에서 리플이 이슈로 떠오르는 동안, 국내 가상자산 업계에서도 주목 받은 소식이 있었습니다. 거래소 바이낸스KR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인데요, 바이낸스KR은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의 한국지사입니다.

바이낸스KR의 폐업에 관해선 2021년 3월부터 시행되는 개정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이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이른바 ‘규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인데요, 폐업에 영향을 준 특금법 상 조항은 무엇인지, 그리고 다른 거래소들은 어떻게 될 것인지 이번주 [주간 블록체인]에서 다뤄보겠습니다.

◆폐업 사유는 “BKRW페어 거래량 낮아서”

바이낸스KR은 지난 24일 서비스 종료를 알렸습니다. 거래소가 공식적으로 밝힌 폐업 사유는 ‘BKRW 페어의 낮은 거래량’입니다. “BKRW 페어의 낮은 거래량으로 사용자들에게 원만한 거래 유동성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BKRW는 바이낸스KR이 발행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입니다. 즉 원화에 가격이 1:1로 고정된 코인인데요, 그동안 바이낸스KR은 이 BKRW를 통해 원화 기반 거래를 지원해왔습니다. 고객이 거래소가 관리하는 계좌로 원화를 입금하면, 고객 계정에 입금액과 같은 가치의 BKRW를 충전해주는 방식입니다. BKRW 페어의 거래량이 낮다는 건 BKRW로 거래되는 규모가 작다는 것이죠.

왜 이런 방식으로 원화 기반 거래를 지원했을까요? 그 배경에는 바이낸스가 한국 시장에 진출한 이유와 바이낸스의 사업전략이 있었습니다.

우선 바이낸스가 한국 지사를 만든 가장 큰 목적은 ‘원화 기반 거래’입니다. 해외 거래소인 바이낸스를 쓰는 한국 사용자들이 워낙 많았는데, 이 사용자들이 거래소 간 시세 차이로 인해 손해를 보는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바이낸스에 원화를 입금할 순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바이낸스와 오더북(거래장부)을 공유하는 바이낸스KR에서 원화 기반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이낸스 본사의 목표였습니다.

한국 진출을 준비하던 당시 바이낸스는 ‘비너스 프로젝트’라는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각국 법정화폐와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프로젝트로, 시작은 미국 달러와 연동되는 ‘BUSD’ 발행이었죠.
출처=바이낸스KR
출처=바이낸스KR
원화와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 ‘BKRW’는 두 가지 상황에 잘 맞아떨어지는 전략이었습니다. BKRW를 통해 사실상 원화 기반 거래도 지원할 수 있고, 비너스 프로젝트도 확장할 수 있던 것입니다. 바이낸스가 한국 지사 설립을 위한 파트너로 ‘BxB(비엑스비)’라는 스타트업을 선택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비엑스비는 이미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 바 있는 스타트업이었습니다.

창펑쟈오(Changpeng Zhao) 바이낸스 대표도 BKRW가 ‘비너스 프로젝트의 일환’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 “한국 사용자들은 BKRW를 통해 손쉽게 바이낸스의 유동성을 공급받을 수 있으며 김치 프리미엄도 해결할 수 있다”며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진출 직전 통과된 특금법, BKRW 방식도 결국 ‘벌집계좌’

그렇게 바이낸스KR이 설립을 코 앞에 뒀던 올해 초, 특금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가상자산 거래소가 원화입출금을 지원하려면 은행으로부터 실명확인 입출금계좌를 받게끔 하는 법이 생겼습니다. 빗썸, 업비트, 코인원, 코빗을 제외한 나머지 거래소들은 모두 ‘벌집계좌(법인계좌 아래 여러 거래자의 개인계좌를 두는 방식)’로 거래소를 운영해왔는데, 벌집계좌도 내년부터는 불법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이낸스KR도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발급받지는 못한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원화 거래를 지원하려면 벌집계좌를 택할 수밖에 없었죠.

물론 BKRW 충전 방식이 기존 벌집계좌 방식과 조금 다르긴 했습니다. 다른 거래소들은 고객이 거래소 법인계좌로 돈을 입금하면 거래소가 장부 처리를 한 뒤, 고객 계정에 원화를 반영해주는 방식을 쓰고 있습니다. 반면 BKRW는 단순히 원화를 반영해주는 게 아니라, 거래소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판매’하는 방식이라 조금 달랐죠. 그러나 이 방법 역시 사실상 벌집계좌이기는 했습니다.

따라서 바이낸스KR 역시 다른 거래소들처럼 내년 9월(유예기간 반영 시점)까지 은행 실명계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세계 최대 거래소도 한국지사를 운영하려면 한국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죠. 만약 은행 실명계좌를 발급받을 경우 그 계좌를 통해 원화입출금을 지원하면 됩니다. 이렇게 BKRW의 존재 가치는 점점 흐려지게 됩니다.

◆‘오더북 공유’도 금지…결국 폐업으로 이어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달 발표된 특금법 시행령은 바이낸스KR에 더 악영향을 줬습니다. “다른 가상자산사업자와의 제휴를 통해 고객이 다른 가상자산사업자의 고객과 가상자산을 거래하도록 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문장이 담긴 것입니다. 이는 한마디로 오더북(거래장부) 공유를 금지한다는 뜻입니다.

바이낸스KR의 최대 장점은 바이낸스 본사와 오더북을 공유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이낸스의 풍부한 유동성을 한국 거래소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게 강점이었죠. 그런데 내년부터 이 오더북마저 공유하지 못하게 된다면 바이낸스KR의 강점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이낸스KR이 오더북을 공유하지 않으면서도 살아남으려면 바이낸스KR의 순수 거래량, 즉 BKRW를 통한 거래량이 많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서비스 종료를 알린 지난 24일 기준 가상자산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에선 바이낸스KR의 24시간 거래량이 10조원 수준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중 BKRW로 발생하는 실질적인 거래량은 9억원 수준이었습니다. 즉 9억원을 뺀 나머지는 바이낸스 본사와의 오더북 공유를 통해 발생하는 거래량입니다.

바이낸스가 한국 지사를 세운 목적은 원화 기반 거래를 위해서인데 BKRW 거래량, 즉 원화 거래량이 적다면 더 이상 영업을 지속할 이유가 없겠죠. 결국 바이낸스는 거래소 영업을 종료하고 한국 시장을 위한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로 했습니다. 창펑쟈오 CEO는 “한국 커뮤니티티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모색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남 일 아냐” 해외 거래소 국내 진출, 더 힘들어졌다

문제는 이런 폐업이 바이낸스KR만의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후오비와 오더북을 공유하는 후오비코리아, 비트파이넥스와 오더북을 공유하는 에이프로빗 등 비슷한 거래소들이 있습니다. 오더북 공유 없이도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또 해외 거래소의 국내 진출은 더욱 힘들어질 것입니다. 지금까지 후오비, 오케이엑스 등 해외 유명 거래소가 국내 시장에 진출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규제 영향도 컸습니다. 후오비코리아나 오케이코인코리아 모두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발급받지 못한 상태이고, 오케이코인코리아는 특금법 통과 이후 원화마켓까지 임시중단했습니다.

이에 오더북 공유를 금지하면 국부가 유출될 것이란 지적까지 나온 상태입니다. 투자자들은 유동성이 풍부한 거래소를 찾아 떠나므로, 오더북 공유가 막히면 해외 거래소로 빠져나가는 투자자들이 점점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예를 들어 바이낸스KR에서 거래하던 고객들은 국내 거래소를 택하는 대신 바이낸스로 가는 경우가 많아지겠죠. 이달 초 열린 특금법 시행령 공청회에서도 이 같은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다만 공청회에서 FIU(금융정보분석원)의 입장은 강경했습니다. 특금법의 목적인 자금세탁방지를 달성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공청회에 참석한 전요섭 FIU 기획행정실장은 “교차거래(오더북 공유)를 금지한 건 해외 거래소, 즉 다른(신고하지 않은) 가상자산사업자의 고객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라며 “고객 정보를 모르므로 의심거래보고 등이 힘들고, 자금세탁방지 목적 달성도 힘들다”고 설명했습니다.

특금법 시행령에 대한 의견 수렴은 지난 14일 종료됐습니다. 업계의 의견을 반영해 내용이 수정될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박현영기자> hyun@ddaily.co.kr

박현영
webmaster@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