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전업체 관계자는 이렇게 푸념했다. 실제 소비자들에게 양사 영향력은 막대하다. 가령 급증하는 건조기 시장을 보면 삼성·LG는 2018년부터 14·16킬로그램(kg) 대용량 제품을 주력으로 경쟁 중이다. 9kg 모델이 있긴 하지만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중소·중견업체들은 대용량을 피해 10kg 이하 중소형 제품을 앞세워 판매한다. 그럼에도 인기 많은 제품은 삼성·LG모델이다.
중견·중소업체들은 대기업이 진출하지 않았거나 주력으로 삼고 있지 않는 부분을 노린다. 이른바 틈새시장이다. 주로 1인 가구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 등 특정 소비자를 겨냥한다. 대표적인 제품들은 창문형 에어컨, 반려동물용품, 휴대용 공기청정기 등이다. 기존 제품들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해 가격을 낮추거나 활용도를 특성화시킨다. 소비자는 제품 선택권이 넓어진다.
일부 틈새가전은 적절한 수요층에 인기를 끌며 화두가 된다. 창문형 에어컨은 중소·중견업체들 사이 가장 치열한 전쟁터다. 지난해 창문형 에어컨 자체가 일반 에어컨 대체재로 인기를 끌었다면, 올해는 그 안에서도 성능·가격별로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소비자들이 고를 수 있게 됐다. 캐리어·파세코·귀뚜라미 등 누가 최단기간 1만 대를 판매하는지 기록 경쟁도 한 축이다. 제품 판매와 함께 소비자들에게 기업 존재감을 키우는데 효과적이었다.
시장이 커지고 경쟁업체가 증가하는 건 이들에게 개발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수익성이 되겠다고 판단, 대기업이 눈독을 들인다면 상황이 다르다. 틈새시장에서 경쟁하던 기존 업체들은 소비자는 물론 관련 인력마저 지켜야하는 과제가 생긴다. 대기업을 피해 만든 시장에 대기업이 따라 들어오는 건 가장 피하고 싶은 흐름이다.
물론 정체된 가전시장 돌파구로 대기업에게도 새로운 제품 출시는 필요하다. 이들이 신시장에 진출해 규모를 키우기도 한다. 식기세척기나 의류건조기가 그러하다. 삼성·LG가 ‘CES2020’에서 공개한 가정용 식물재배기 등 아예 새로운 분야의 도전은 시장개척 포문이 될 수 있다.
‘최초’라는 이름을 붙인 선도자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면, 이를 벤치마크해 1위 기업보다 더 나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2등 전략’이 있기 마련이다. 대기업이 만든 신가전과 중소기업이 찾은 틈새가전은 모두 시장을 개척한단 점에서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중소·중견기업들이 주도권을 갖고 있는 시장이라면 대기업이 후발주자로 뛰어들어 ‘2등 전략’을 취할 필요는 없다. 이는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넓히고 기업 간 상생을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