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윤상호기자] 우리 정부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 종료를 조건부 유예했다. 일본을 국제무역기구(WTO)에 제소한 것도 절차 진행을 중지키로 했다. 일본은 지난 7월 실시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화요구에 응하기로 했다. 양국은 파국 대신 미봉을 택했다. 일본이 수출규제 철회 의사를 밝힌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이 이 태도를 유지하는 한 불씨는 언제든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22일 청와대는 지소미아 종료 유예와 WTO 제소 중지를 공식발표했다.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은 “우리 정부는 언제든 지소미아 효력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전제하에 지난 8월23일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시키기로 했다”라며 “한일 수출 관리 정책 대화가 정상적으로 진행하는 동안 일본 3개 품목 수출 규제 절차에 대한 WTO 제소 절차도 중지키로 했다”라고 밝혔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일본 수출관리 정책 관련 한일 국장급 대화를 하기로 했다”라며 “다만 품목별 수출관리제도 변화는 없다”라고 응답했다.
23일 0시 지소미아 종료 6시간을 앞두고 나온 발표다. 일본은 지난 7월 반도체 디스플레이 관련 3개 품목 한국 수출심사를 강화했다. 8월 우리나라를 수출우대국에서 제외했다. 우리나라를 ‘신뢰할 수 없는 국가’로 지칭했다. 우리는 이를 경제보복으로 규정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이 수출규제와 한일청구권협정을 연계한 탓이다. 일본 정부는 우리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일본 기업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보상 판결을 한 것에 대해 불만을 토했다. 우리 정부는 이에 맞서 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했다. 지소미아는 한쪽이 종료를 원하면 자동 폐기하는 협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뢰할 수 없는 국가와 군사정보를 교환하는 일은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양국의 이번 협의는 미국을 의식한 반응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미국은 지소미아 종료에 우려를 표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핵심 조력자다. 양국 군사협력 약화는 미국 이익에 배치한다. 미국은 정치권까지 나서 ‘지소미아 폐기 반대 한일 대화 촉구 입장’을 취했다.
한편 양국 관계가 급진전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일본은 여전히 과거사를 부정하고 있다. 이번 일은 일본이 과거사와 수출규제를 분리해야 해결된다. 우리 정부가 과거를 덮고 갈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본은 대화를 하겠다고 했지 기존 방침을 바꾸겠다는 입장이 아니다. 이번 발표에도 개별 심사 번복 의사는 빠졌다. 오히려 “수출 규제와 지소미아 중단 철회는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우리 역시 ‘조건부’라는 점을 강조한 것도 그런 까닭으로 여겨진다. 다만 우리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 보다 WTO 절차 재개를 우선할 전망이다. 미국이 부담이다. 방위비 협상이 난항인 상황에서 미국과 갈등을 확대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