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소재·부품·장비, 日 의존 축소 가능?…업계, “할 수 있다. 정부·대기업, 꾸준한 지원

윤상호
- 보호무역 대응, 국산화 및 공급망 국가 다변화 중요성↑…韓, 제2 도약 기회 삼아야


[디지털데일리 윤상호기자] 일본이 한국 수출규제를 강화했다. 반도체 소재 등 3종 허가 강화에 이어 오는 28일부터 한국을 수출우대국가에서 제외한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한국 주력 사업 불확실성이 커졌다. 당장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업계와 학계가 머리를 맞댔다. 정부의 방향성 있는 지원 지속, 수요와 공급의 연결, 한국형 테스트베드 구축 등을 주문했다,

7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한국공학한림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에 대한 과학기술계 대응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발제는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이 맡았다. ‘일본 정부 수출규제 및 화이트리스트 제외에 따른 국가적 대응: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글로벌수준 육성 중장기 전략’을 주제로 잡았다.

토론은 장석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좌장을 맡았다. 토론자는 ▲박영수 솔브레인 부사장 ▲이종수 메카로 사장 ▲주현상 금호석유화학 팀장 ▲김호식 엘오티베큠 사장 ▲서진천 프리시스 대표 ▲이현덕 원익IPS 대표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김태성 성균관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황철성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 ▲최지선 로앤사이언스 법률사무소 변호사가 참여했다. 소재·부품·장비·학계·법조계를 망라했다.

박재근 학회장은 “세계 무역 환경이 자유무역에서 보호무역으로 변하고 있는 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공급망 관리차원에서 업체별 다변화는 했지만 국가별 다변화를 하지 못한 것이 이번 위기의 원인”이라며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에 그치지 않고 세계 일류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한다. 국가별 다변화도 서둘러야한다”라고 지적했다.

또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이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기술 개발과 양산이 되면 대기업이 반드시 구매할 수 있도록 정부가 책임을 져야한다. 한국형 테스트베드를 만들어 투자와 개발 비용을 덜어줘야 한다. 인력 양성도 지원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특히 반도체 디스플레이 분야 국가 소재·부품·장비 핵심 기술 필요성을 제기했다. 박 학회장은 “한국 업체를 국가별 다변화 업체 중 하나로 선정해 글로벌 최고 수준이 될 수 있도록 장기적으로 지원해야한다”라고 촉구했다.

업계 토론자는 대기업 역할을 강조했다. 소재·부품·장비는 기업(B2B) 거래다. 대기업이 수요처 중소기업이 공급처다. 수요가 불확실하면 나서가 힘들다. 주 52시간 근무제 완화도 한 목소리를 냈다.

박영수 솔브레인 부사장은 “일본 수출규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은 대기업이다. 지금까지 해외 선택은 불가피한 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대기업이 주도하는 국산화 과제를 선정해야 한다”라며 “정부가 국산화를 주도해도 대기업을 만족시킬 수 있는 최고의 품질을 제공하지 못하면 반도체·디스플레이 경쟁력도 잃어버릴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종수 메카로 사장은 “정부가 일관성 있고 꾸준히 중소기업 애로사항 해소를 위해 대중소 상생드라이브를 했어야 한다. 중국은 소재·부품·장비산업을 전략적으로 대대적으로 키운다”라며 “어떤 모험도 하지 않으려 한다. 정부도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위험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라고 비판했다.

주현상 금호석유화학 팀장은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감광액)은 일본 수준이 되려면 2~3년은 필요하다. 유연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일본의 규제가 공급중단이 나닌만큼 완화 방안을 찾아 시간을 벌어야 한다. 반도체 업체와 소재업체가 윈윈할 수 있는 공동개발과 의지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김호식 엘오티베큠 사장은 “국내 중소기업 대부분은 기술 개발 후 매출이 본격화하기 전에 버틸만한 여력이 안 된다. 이 기간을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수요기업과 연결도 중요하다”라고 전했다.

서진천 프리시스 대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전부 국산화를 할 수는 없다. 정부의 집중 지원이 요구된다”라며 “국산 제품이라고 가격을 깎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프리미엄을 주고 사줘야 한다”라고 분석했다.

이현덕 원익IPS 대표는 “주 52시간 근무로 인한 어려움은 모두 마찬가지다. 국내 장비업체 규모는 글로벌 회사 대비 10분의 1도 안 된다. 사람이 없고 투자가 적으니 미래보다 당장 사업이 되는 개발에 머물러 있었다. 대기업도 국산화 파트너라기보다 설비 이원화 파트너로 여겼다”라며 “소제·부품·장비 같이 수준을 올려야 전체 공급망이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우리가 국산화해서 우리 것만 쓰면 독이 될 수도 있다. 일본이 가만히 있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해야 한다”라며 “혁신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정부 대기업 중소기업 공정한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 혁신에 가점을 주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전쟁이다. 기왕 하는 것 이겨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학계와 법조계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을 모색했다. 김태성 성대 교슈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인력이 부족한 것은 연구 성과 평가나 대기업 중심 취업구조에 있다. 동반자적 인식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황철성 서울대 교수는 “미국과 일본은 잃을 것이 없다. 우리나라 업체가 점유율이 빠지면 미국 마이크론 점유율이 올라간다. 일본은 여기에 판매를 하면 된다”라고 바라봤다. 최지선 변호사는 “과학기술기본법을 개정해야 한다. R&D 특별예산이나 예비비를 책정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긴급한 상황에 추가경졍예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라고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 5일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R&D 세부계획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이달 내 공개할 예정이다.

김성수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지난 5일 대책은 집으로 보면 지붕이다. 기둥이 필요하다. R&D는 대들보다. 초안을 만들고 있다. 오늘 나온 내용을 담을 수 있도록 하겠다”라며 “훗날 이 위기가 대한민국이 한 번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소회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정리했다.

<윤상호 기자>crow@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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