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E·행복동행·플랫폼 그리고 뉴ICT, SK텔레콤의 미래는?
[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IPE, 행복동행, 플랫폼에 이어 뉴ICT까지. 국내 최대 이동통신사 SK텔레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박정호 SK텔레콤 신임 사장이 취임 100일을 앞두고 조직개편을 실시했다. 이번 조직개편의 핵심은 인공지능(AI) 사업단 신설이다. 이 사회의 화두가 돼버린 4차 산업혁명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다.
SK텔레콤은 조직개편에 대해 "4차 산업 혁명과 새(New)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 확산을 주도하기 위해 AI 등 미래 핵심 사업과 기술 연구 조직을 강화하는 방향"이라며 "AI, 사물인터넷(IoT), 미디어 등 미래 핵심 사업 성장에 집중하는 한편 ICT 패러다임의 빠른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강하게 실행할 수 있는 조직 구조를 갖추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번 조직개편으로 박정호 사장은 뉴ICT 전략 실행을 위한 준비과정을 마쳤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이동통신 시장 1위 SK텔레콤이 탈통신을 통한 지속성장 기반 마련이라는 지난 10년간의 해묵은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모아지고 있다.
포화상태의 내수시장, 해외시장 진출의 어려움, 제한된 시장에서의 보조금 경쟁 반복, 정치권 등의 지속적인 요금인하 요구, 그리고 인터넷 사업자들의 위상 확대 등은 지난 수년간 이통사들의 공통된 고민이었다.
음성통화 위주의 시절, SK텔레콤에게 별다른 전략은 필요 없었다. 황금주파수 800MHz는 경쟁사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충성도가 높고 가장 많이 이동전화를 사용하는 가입자들이 있었다. 스마트폰 정액요금이 비싸다는 의견이 많지만 사실 2G 시절 가입자당평균매출(ARPU)가 더 높았다.
ICT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있던 이통사들은 인터넷 사업자들의 공세에 성장은 커녕 퇴보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문자 매출을 사라지게 한 모바일 메신저의 등장부터 음성매출의 하락 가속화, 상대적으로 더딘 데이터 매출 증가는 CEO들에게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을 강요하고 있다.
국내 최대 이통사 SK텔레콤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2000년대 후반 이후 SK텔레콤은 대표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2009년 정만원 사장은 IPE(Industry Productivity Enhancement, 산업생산성 증대)라는 전략을 들고 나왔다. SK텔레콤이 보유한 ICT 기술과 네트워크를 다른 산업과 결합시켜 신산업을 발굴하고 글로벌 비즈니스를 확대하겠다는 것이었다. SK텔레콤은 2020년까지 IPE 관련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IPE를 제시할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변화에 대한 외부의 요구는 있었지만 위기에 떠밀리다시피 내놓은 전략은 아니었다. 매출 20조 달성이라는 1위 이통사의 자신감이 묻어나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CEO가 하성민 사장으로 바뀌며 SK텔레콤의 전략도 바뀌었다. 2013년 하성민 사장은 행복동행이라는 중장기 비전을 제시한다. 융합이라는 측면에서 IPE 전략과 큰 차이는 없었지만 해외사업의 목표치가 대폭 수정됐고 융합사업에 대한 시각, 창업지원 전략도 크게 변했다.
SK텔레콤이 2020년을 목표로 한 중장기 전략을 3년 만에 바꾼 것은 그 기간 이동통신 시장에 큰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IPE를 제시했던 2009년은 국내에 아이폰이 들어오던 해였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이동통신 시장은 과거의 시장이 아니다. IPE 전략은 스마트폰이라는 생소한 디바이스의 파급력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스마트폰 시대와 함께 나름 발 빠른 대응이었지만 SK텔레콤은 2015년 장동현 사장이 부임하면서 또 한 번의 변화를 시도한다. 플랫폼 비즈니스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통신을 기반으로 ▲생활가치 플랫폼 ▲통합미디어 플랫폼 ▲IoT 서비스 플랫폼을 통해 미래성장을 도모하겠다는 전략이었다.
10여년전 ICT 생태계의 최정점은 통신사였고, 통신사가 콘텐츠를 정하던 시절이었지만 개방형 생태계인 스마트폰 시대에서 플랫폼 자리를 꿰찬 것은 인터넷 기업들이었다. SK텔레콤이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을 선언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박정호 사장을 맞이한 SK텔레콤은 뉴ICT 생태계를 전면에 내세웠다.
CEO 교체와 함께 제시됐던 SK텔레콤의 중장기 전략에서 공통적으로 엿보이는 것은 바로 전통적인 네트워크 비즈니스, 마케팅으로는 지속성장이 어렵다는 위기감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CEO들은 고심 끝에 IPE나 플랫폼, 뉴ICT 등과 같은 전략을 제시했다.
IPE에서 느낄 수 있었던 다소간의 여유로움은 행복동행에서 불안감, 플랫폼에서는 인터넷 기업에 대한 위기감, 그리고 현재는 4차 산업혁명을 리드해가는 인터넷 기업들을 빨리 쫓아가야 한다는 다급함이 함께 보이고 있다.
SK텔레콤은 여전히 이동통신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이다. 물론, 그 위상은 과거에 비하면 훨씬 축소됐다. 불문율로 여겨지던 점유율 50%가 무너진 지도 오래다. 하지만 SK텔레콤은 국내 이동통신 시장의 맏형으로 전체 업계가 나아갈 길을 보여줘야 한다.
구호는 달랐지만 지향하는 목표는 같다. 그리고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공통분모가 많다. 박정호 사장의 뉴ICT 전략이 전임 사장들이 뿌린 씨앗을 열매로 키워낼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비즈니스를 대하는 자세부터 달라져야 한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전략이 없다. SK텔레콤은 SNS의 효시인 싸이월드라는 서비스를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트위터와 같은 단문 서비스, IP를 통한 음성서비스 등 사실 아이디어와 기술을 다 갖고 있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카카오톡이 등장했을 때 문자 메시지 매출 하락을 우려해 방어에만 급급했을 뿐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기지 못했다. 결국, 물줄기가 거대한 파도가 되자 포기하는 수순을 밟았을 뿐이다. SK플래닛을 분사해 인터넷 기업처럼 운영도 해봤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본업과 관련되는 혁신 비즈니스는 등장할 수가 없는 구조였다.
내비게이션 시장의 베스트셀러가 된 티맵도 그렇다. 본업과 상관없는 서비스 티맵은 SK텔레콤의 기술력과 가입자 기반의 데이터가 결합되며 공전의 히트를 쳤지만 내비게이션이라는 좁은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경쟁사 고객과의 차별화 전략으로 “개방불가”만 외치고 있는 사이 인터넷 기업 카카오는 카카오택시, 카카오드라이버 등 뜨고 있는 O2O 서비스를 선점했다. 결국 SK텔레콤은 뒤늦게 경쟁사에 티맵을 무료로 개방할 수 밖에 없었다. 티맵이 위치기반 서비스 플랫폼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셈이 됐다.
외부에서는 MNO(Mobile Network Operator)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인터넷 시장에서의 성공은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MNO 마인드는 가입자 기반의 요금 수익구조를 말한다.
모든 CEO들은 매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는 것은 사실상 모험, 아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SK텔레콤을 비롯해 모든 이통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혁신, 혁명은 기존의 것을 부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박정호 사장의 SK텔레콤이 기존에 보여주지 못했던 과감한 수를 던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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