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와 개인정보보호, 빈번한 정책 충돌…해법없나?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한국의 개인 데이터 보호 규제는 주요 국가 가운데 가장 강력합니다. 데이터 수집·보관·교환 등의 영역은 상대적으로 규제 수준이 높고, 이는 데이터 기반 혁신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또 어떤 부분에선 규제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아 정책의 불균형이 심합니다.”
4차산업혁명과 맞물려 또 다시 화두로 떠오른 빅데이터와 관련해 국내 한 IT 기업 대표의 지적이다.
모든 것이 지능화되는 4차산업혁명시대에는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국가 경쟁력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경제 시대에선 반도체가 '산업의 쌀'로 불렸지만, 4차 산업혁명시대에선 데이터가 그 역할을 대체한다.
신성장동력으로 손꼽히는 인공지능(AI)이나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등을 이끌어가는 것도 바로 데이터다. 하지만 '데이터'와 관련해선 여전히 정책적 엇박자가 나고 있다. 국내에서도 빅데이터의 중요성과 의미에 대해 높게 평가하면서도 정착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특히 그 중심에는 데이터 유출과 개인정보보호 문제가 존재한다. 이같은 지적에 따라 지난해 6월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 행정자치부 등이 개인정보를 비식별화 조치해 빅데이터로 활용하기 위한 기준을 안내한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까지 발표했다. 하지만 여전히 모호한 해석의 여지가 남아있어 시장의 호응을 얻진 못했다.
앞서 같은 해 5월엔 배덕광 의원이 ‘빅데이터의 이용 및 산업진흥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 11월 공청회까지 열렸지만 여야 의원 간 의견대립으로 파행된 바 있다. 이 법안에는 개인을 식별해 낼 수 없는 정보는 일일이 개인동의를 받지 않아도 빅데이터 분석과 서비스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지난 24일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주최한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 정책 토론회’에선 이에 대한 논의가 펼쳐졌다. 민 의원은 “국내 빅데이터 시장 규모는 전체 시장의 2.8%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시장이 작다”며 “예전부터 빅데이터에 대한 관심이 높았는데, 왜 국내에선 활성화되지 않는지 궁금했다”며 토론회 개최 의의를 설명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김인현 투이컨설팅 대표는 “높은 수준의 데이터 규제는 국내 빅데이터 시장 활성화를 저해한다”며 “현재 한국의 경우, 이용자가 승인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가장 많은데 비해, 해외는 무료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통합 처리하는 유형이 가장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인정보보호와 개인의 권리, 데이터 저작권, 데이터 관리 책임 등 데이터 원칙 정의를 기반으로 소비자보호단체와 활용 기업이 균형된 시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미국의 경우, 데이터 유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사전 규제보다는 사후 책임을 지는 형태”라고 부연했다.
한편 개인정보보호와 관련해선 해외 기업에 비해 국내 기업들의 데이터 접근이 좀 더 제한적이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윤혜정 KT 빅데이터사업추진단장은 “페이스북 등에 제공되는 개인정보와 비교하면 국내 기업의 정보 접근에 대한 여론이 훨씬 민감하다”며 “하지만 KT는 그동안 개인정보관련 법률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한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해 왔다”고 강조했다.
실제 KT는 조류인를루엔자 확산방지, 로밍데이터를 통한 감염병 유입 차단, 유동인구 통계정보를 활용한 관광 활성화 등의 사업을 진행했다. 올해에는 IoT 기반 대기질·환경안전 프로젝트 서비스를 추진항 예정이다. 이는 전국 단위 대기질 관측망을 구축하고 빅데이터 기반 환경안전 솔루션을 제공해, 관련 정책 수립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재형 미래부 융합신산업과장은 “그동안 약 2만1000건의 공공 데이터를 개방했지만, 데이터의 질과 관련해 만족도는 높지 않았다”며 “올해에는 교통, 환경, 안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 현안 해결 목적의 국민체감형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민간 활용도가 높은 법률, 특허 등의 데이터를 AI 학습용 데이터로 구축,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기존 데이터 유통·거래 플랫폼인 데이터진흥원 내 데이터 스토어를 오픈소스 기반 개방형 플랫폼으로 전환해 민간 데이터 거래시장 활성화를 촉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응우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수석 연구원은 “현재 법에서 정의한 개인정보의 범위가 너무 넓다”며 “흔히 데이터를 ‘21세기 원유’라고 하는데, 원유와 이를 산출하는 장비나 기술은 있지만, 매장된 원유 자체에 대한 규제로 아예 이를 뽑아낼 수 조차 없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전 데이터 수집 단계부터 이용과 제공에까지 가해지는 법적규제나 가이드라인 등과 같은 정부 중심의 사전규제방식(Opt-in)은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며 “지난해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 관련 법안도 제출됐지만 아직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으며, 그렇다고 해서 법만 쳐다볼 수도 없는 일”이라고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빅데이터 인력 양성과 관련해 융합이 가능한 교육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최대우 한국외대 통계학과 교수는 “요즘 얘기되는 AI나 개인정보 비식별화 조치 등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알고리즘과 관련돼 있다”며 “우리는 큰 그림만 쫒아가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알고리즘과 같은 것에는 수학과 같은 근본적인 기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수학자와 같이 과학적 지식이 있는 근간의 기술을 다루는 사람들을 참여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조언했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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