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치열해진 AP시장 …퀄컴 압박에 나선 후발주자들
* 11월 25일 발행된 <인사이트세미콘> 오프라인 매거진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올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은 퀄컴을 비롯해 삼성전자, 하이실리콘, 미디어텍 등이 경합을 벌였다. 브로드밴드 프로세서(BP)를 통합한 원칩 AP를 통해 각 업체의 경쟁력이 한층 강화된 상황이어서 내년에도 시장점유율을 두고 피할 수 없는 한판이 예고된 상태다. 스마트폰, 태블릿 시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고객사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올해 AP 시장에서 퀄컴이 어느 정도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작년 퀄컴의 스마트폰 AP 출하량은 6억370만대, 점유율은 40.8%에 달했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까지 점유율은 30% 후반대에 머무르고 있다. 출하량과 매출이 모두 떨어진 상태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톱10 팹리스 매출 총액이 603억7900만달러를 기록, 작년 대비 5%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퀄컴의 부진 영향이 크다. 올해 퀄컴의 예상 매출은 160억3200만달러(한화 약 12조405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2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는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한 AP ‘엑시노스’를 갤럭시 시리즈에 확대 적용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렇다고 신흥이나 저가 위주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업체에게 잘 어필한 것도 아니다. 예컨대 화웨이도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을 통해 만들어진 AP를 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대만 미디어텍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아서 올해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8% 역성장한 65억400만달러(약 7조5966억원)로 예상된다.
시장조사업체 IHS 브래드 셰퍼 책임연구원은 “올해 삼성전자는 엑시노스를 예년보다 더 많이사용했다. 하지만 자사부품의 채용 결정은 제품 설계상의 선택일 뿐, 어느 부품을 사용할지는 각 모델에 따라 다르다”며 “성능, 차별화, 원가 및 수익성을 고려해 적용 가능한 최고의 부품을 사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화웨이도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으로부터 AP를 공급 받고 있다. 하이실리콘의 AP는 최근 생산되는 대다수의 화웨이 롱텀에볼루션(LTE) 스마트폰에 사용되고있다”며 “모뎀이 통합된 원칩 AP가 여러모로 유리하지만 자체적으로 개발한 개별 AP를 장착하는 것을 선호할 수 있다. 모뎀(BP) 기술에 많은 투자를 하지 않고도 시장 대응력을 높일 수 있어서다”라고 덧붙였다.
풀어 말하면 중장기적으로 퀄컴의 시장점유율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퀄컴은 원칩 AP에서 상당한 강점을 발휘해왔으며 BP가 빠진 단독 AP 라인업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다. 전체 퀄컴 라인업에서 원칩 AP가 차지하는 비중은 95%에 달한다.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무조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당장 내년에 선보일 주요 차세대 AP가 원칩 형태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적어도 이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입지를 구축한 퀄컴이 불리한 경쟁을 펼칠 이유는 없다. 다만 예전처럼 원칩 AP라서 얻을 수 있던 장점은 크게 희석된 상태다.
퀄컴 1인자 자리는 계속해서 유지
퀄컴의 차세대 AP는 ‘스냅드래곤 820’이 책임지고 있다. 이 제품은 내년 상반기 출시될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대부분 탑재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미 주요 업체에는 샘플이 공급된 것으로 전해진다. 퀄컴은 종전 모델인 스냅드래곤 810을 내놓기 전 발열 루머에 휩싸여 곤욕을 치른 바 있다. 회사 측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적극 해명했지만 있지도 않은 발열 루머는 수그러들지 않았고 회사 이미지에 적잖은 상처를 냈다.
사양은 최고 수준이다. 농익은 설계자산(IP) 재설계를 통해 64비트 쿼드코어 크라이오(Kryo) 중앙처리장치(CPU)가 탑재된다. 직전에는 ARM의 코어텍스 A57 및 A53 코어 각각 4개씩, 총 8개의 CPU 코어가 탑재돼 있었다. 코어 숫자로만 보면 8개→4개로 줄었지만 이는 현 시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코어 숫자가 성능을 가늠하는 절대적인 지표가 아니라는 점이 널리 알려진 상태여서다.
퀄컴에게 중요한 것은 IP 재설계를 통해 나온 CPU 코어와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성능, 그리고 발열이다. 파운드리는 삼성전자 14나노 핀펫 공정에서 만들어지는데 현 세대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스냅드래곤 810이 20나노 공정 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GPU는 아드레노 530이다. 이 제품은 종전 아드레노 430 대비 전력소모량이 40% 줄고, 성능은 40% 향상됐다고 퀄컴 측은 설명했다. 아드레노 530 GPU는 오픈GL ED 3.1+ 안드로이드 익스텐션 팩(AEP), 렌더스크립트(Renderscript), 오픈CL 2.0 및 벌칸(Vulkan) 표준 등을 포함한 첨단 그래픽 및 연산 애플리케이션프로그래밍인터페이스(API)를 지원한다.
삼성전자는 ‘엑시노스 8890 옥타’가 주인공이다. 올해 초 세계 최초로 양산 개시한 14나노 1세대 제품인 ‘엑시노스7 옥타’는 AP 단품으로 출시됐다. 이번에는 BP를 하나로 통합한 원칩 AP로 64비트 CPU 코어에 삼성전자의 커스텀 코어를 적용해 기존 1세대에 비해 성능은 30% 이상 높이면서도 소비 전력은 10% 가량 절감했다. 당연히 작업 종류에 따라 작동을 제어하는 빅리틀 멀티 프로세싱 기술을 지원한다.
스냅드래곤 820과 마찬가지로 최대 600Mbps(Cat.12)의 다운로드 속도와 150Mbps(Cat.13)의 업로드 속도를 지원하는 BP가 내장되어 있는데, 사양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어서 이동통신사별로 얼마나 어필이 가능할지가 관전 포인트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각 국가별 메이저 이통사는 전통적으로 퀄컴 AP를 선호해왔다는 점에서 다소 시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삼성전자는 엑시노스 8890 옥타를 통해 퀄컴을 보다 직접적으로 겨냥할 수 있게 됐다. 앞서 언급했지만 퀄컴은 오래전부터 원칩으로 상당한 재미를 봤다. 아무래도 AP와 모뎀을 따로 장착하는 것보다는 원칩을 이용하면 그만큼 원가절감과 함께 내부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전력소비량이 줄어들고 더 얇고 가벼운 스마트 기기를 설계하는 것이 가능하다.
시스템LSI 사업부의 실적 견인도 기대할 수 있다. 반도체가 삼성전자 전체 실적의 절반 이상을 이끌고 있는 상황에서 D램, 플래시메모리 이외의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는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 메모리뿐 아니라 비메모리 분야에서도 당분간 상당한 수익을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 파운드리 운영을 통한 수익을 얻어왔으나 직접적으로 원칩을 판매하는 것과는 내용이 다르다.
시장도 나쁘지 않다. 삼성전자는 AP 판매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왔고 14나노 핀펫 공정으로 생산된 엑시노스 7420을 중국 메이주 등에 공급했다. 아직까지 물량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삼성전자가 외부 고객사에 14나노 핀펫 공정 AP를 공급한 것이 처음이어서 향후 엑시노스8 옥타도 같은 형태의 비즈니스가 활발하게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 태블릿과 같은 스마트 기기 판매실적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쟁력 높은 원칩의 판매는 삼성전자 전체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
하이실리콘과 미디어텍의 공세
중국 최대 스마트폰 업체인 화웨이의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은 ‘기린 950’으로 대응에 나선다. TSMC 16나노 핀펫 공정에서 생산되는데, TSMC와 하이실리콘은 이미 작년 하반기 같은 공정에서 네트워킹 프로세서를 만들어냈다. TSMC는 16나노 핀펫 공정이 기존 28나노 고성능(HPM) 공정 대비 게이트 집적도는 2배 늘어나는 한편 동일 소비 전력에서 성능은 40% 향상 혹은 동일 성능에서 소비 전력이 60% 절감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삼성전자 14나노 핀펫 공정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유리하다고 볼만한 구석은 없다. 그래서인지 TSMC는 10나노에서는 뒤지지 않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14/16나노 공정 상용화 속도가 삼성전자보다 늦어 주요 고객사를 뺏긴 상태다. 스냅드래곤 820이 대표적이다.
기린 950의 사양은 특별히 모난 곳이 무난하다는 평가다. ARM 코어텍스-A72·A53 코어 4개를 각각 탑재한 빅리틀 구성이다. 최고 300Mbps 다운로드 속도를 낼 수 있는 CAT6급 LTE BP가 지원된다. 기린 950이 무서운 점은 성능 개선의 여지가 충분하다는 사실이다. 가장 빨리 화웨이 스마트폰에 탑재되고 문제점을 개선해 차세대 AP를 개발할 여력을 만들어낼 수 있어서다.
사양만으로 보면 고성능 제품이지만 중저가 라인업에 적극적으로 탑재했을 경우 경쟁사 AP를 무안하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성능에 아주 현격한 차이가 없다면 벤치마크 테스트에서나 나타나는 숫자 차이를 위해 굳이 스냅드래곤 820이나 엑시노스 8890 옥타를 사용할만한 제조업체가 얼마나 있을지 곱씹어봐야 한다.
다음으로 미디어텍은 20나노, CAT6 모뎀, 10코어(데카코어) 기반 헬리오 X20의 16나노 버전인 ‘헬리오 X30’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RM 말리-T880 GPU와 함께 eMMC 5.1 규격 저장장치와 듀얼채널 메모리 LPDDR4 4GB를 지원한다. 16나노 핀펫 공정으로 생산된다. 가장 많은 수의 코어를 탑재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지만 대다수의 AP가 쿼드코어 성능도 제대로 뽑아내지 못하고 있어서 현실적으로 얼마나 성능이 높아질 수 있을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 결국 마케팅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업계에서는 스마트폰 초창기라면 모를까 성숙할 대로 성숙된 시장에서 얼마나 잘 먹힐지는 미지수라고 평가한다.
한편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AP 시장 성장률은 크게 둔화되고 있다. 스마트폰 판매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데 따른 여파다. 이 같은 추세는 내년에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용 AP 출하 성장률은 2010년 정점을 찍은 이후 매년 조금씩 둔화돼 왔지만 작년 성장률 감소폭은 상당히 컸다. 선진국에선 스마트폰 교체 수요가 과거 대비 줄어든데다 인도 등 신흥 시장에선 저가 제품이 주로 판매되기 때문에 출하 및 매출 성장률이 큰 폭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수환 기자> shulee@insightsem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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