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위 결제전쟁… 애플페이로 바라본 애플의 핀테크 전략
* 8월 25일 발행된 <인사이트세미콘> 오프라인 매거진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인 ‘핀테크(FinTech)’라는 단어로 거창하게 포장되어 있지만 ‘애플페이’는 일상생활에서 애플 기기를 사용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다. 사용자경험(UX)에 있어서 차별화를 꾀하고자 하는 애플은 애플페이를 설계할 때도 철저하게 향후 결제 시장을 염두에 뒀다. 현 시점에서의 성과만 두고 애플페이를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다.
글 이수환 기자 shulee@insightsemicon.com
잘 알려진 것처럼 애플페이는 아이폰5s에 ‘터치아이디’가 적용됐을 때부터 꾸준히 가능성이 제기되어 왔다. 아이튠즈를 통해 전 세계 수많은 사용자의 카드 정보를 확보하고 있으니 터치아이디와 같은 생체인식을 통해 모바일 결제에 진출하리라는 예상이 계속해서 나왔고 결국 현실이 됐다.
애플페이는 근거리무선통신(Near Field Communication, NFC) 기반이다. 따라서 카드단말기와 스마트 기기가 모두 이를 지원해야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시장조사업체 인포스카우트에 따르면 미국에서 애플페이를 이용해 본 경험이 있는 아이폰6 사용자는 지난 3월 15%에서 6월 13%로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동안 애플페이 사용여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23%만이 사용해봤다고 답했다. 3월에는 39.3%에 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갈수록 쓰임새가 떨어지는 셈이다. 카드단말기를 가맹점이 비용을 들여서 교체해야 하는데 덩치가 큰 업체라면 모를까 그렇지 못하다면 굳이 애플페이 사용자를 위해 돈을 쓸 이유가 없다. 맥도날드, 미국의 식료품 체인 월그린 등이 가세했다지만 아직까지 가맹점 차원에서의 준비가 덜 됐다고 봐야 한다.
기기는 어떨까. 애플페이를 완전하게 사용하려면 아이폰6나 아이폰6 플러스가 필요하다. 직전 모델인 아이폰5, 아이폰5s, 아이폰5c의 경우 애플워치와 연동하면 사용할 수 있다지만 추가로 스마트워치를 구입해야 하므로 간편한 방법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는 삼성전자 ‘삼성페이’도 마찬가지이나 루프페이를 인수하면서 마그네틱 보안전송(Magnetic Secure Transmission, MST) 기술을 흡수했기 때문에 굳이 카드단말기를 바꿀 필요가 없다. 여기까지만 보면 기기 판매량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애플, 카드단말기 교체가 불필요해 가맹점에게 유리하고 사용자 편의성이 높은 삼성전자가 팽팽한 것으로 보이지만 서로 나름대로의 속사정이 있다. 이는 구글 ‘안드로이드페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최대 시장인 미국을 먼저 들여다보면, 카드 복제와 금융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전통적인 마그네틱 카드 대신 EMV(유로페이, 마스터카드, 비자카드) 카드로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오는 10월부터 EMV 카드를 지원하지 않는 가맹점은 카드 정보가 유출되거나 부정하게 사용될 경우 책임을 져야 한다. 좋던 싫던 카드단말기를 바꿔야 하는 상황인데 현실이 녹록하지 않은 것이 문제다. 카드단말기를 교체비용만 하더라도 450억달러(한화 약 53조1000억원)에 달하는데다가 EMV 카드를 의무화하려던 연방정부들이 줄줄이 법안 통과에 실패한 상태다. 캐나다 사례만 보더라도 지난 2003년부터 EMV 카드를 도입했지만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카드단말기는 전체의 85%에 그치고 있다. 여기에 금융권과 가맹점 사이의 수수료를 둘러싼 분쟁이 현재진행형이라 핀테크로 어떻게 해결해 볼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애플이 아무리 대단한 역량을 가지고 있어도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금융권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UX 자체의 변화를 통한 가맹점의 실질적인 혜택이다. 앞서 언급한 월그린은 애플페이를 도입한 이후 3주 만에 모바일 결제 건수가 도입 이전과 비교해 2배가 늘어났다. 같은 업종인 홀푸드에서는 15만건의 결제가 이뤄졌다. 소비자가 애플페이를 사용할수록 해당 가맹점의 매출이 늘어났다는 것은 카드단말기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명분으로 작용한다. 현 시점에서 애플페이를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이 적다고 하더라도 소비자와 가맹점이 모두 만족한다면 나머지는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준다. 매장에 새로운 카드단말기를 들여놓는 것 자체가 애플페이 고객을 끌어들이는 수단이 된다.
애플페이는 궁극적으로 애플워치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무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생체인식인 터치아이디가 큰 역할을 한다. 단순히 스마트폰 도난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사용자의 동의 없이 무선으로 해킹을 시도하려는 범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어서다. 애플워치를 단순히 손목에서 풀어놓는 것만으로도 이런 시도를 충분히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다만 이런 수준까지 도달하려면 UX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 특히 NFC를 통한 모바일 결제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중국, 독일, 한국, 영국, 미국에서 스마트폰 사용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시장조사업체 GfK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절반에 가까운 45%의 소비자가 스마트워치를 통해 안전하게 PC에 로그인하거나 온라인 계좌에 접속하기 위한 신분증명서 용도로 사용하는 데 관심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응답자 가운데 35%가 NFC 모바일 결제에 관심을 보였다. 잠재력이 가장 높은 곳은 중국으로 관심이 있다고 대답한 응답자가 54%이었다. 반면 미국에서는 40%, 한국에서는 28%, 영국에서는 27%만 관심을 보였다. 독일에서는 20%만이 스마트워치로 결제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워치를 신분증명서 용도로 사용할 의향이 있으면서도 모바일 결제에서는 다소 낮은 관심도를 보였다는 것은 여전히 이런 형태의 제품에 대한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 소비자가 아닌 기관이나 업체라면 상황이 조금 다를 수 있다. 애플페이는 올해 9월부터 미국 연방조달청(GSA)의 공식 핀테크로 사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기초생활보호자, 재향군인 등은 연금계좌의 카드를 애플페이에 등록해 사용할 수 있다. 국립공원 입장료와 같이 연방정부가 관할하는 서비스의 이용료와 수수료도 애플페이로 내면 된다. 연간 GSA에서 결제되는 카드 규모는 264억달러(약 31조1520억원)에 달한다. 이 외에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는 법인카드에서 애플페이와 연동되도록 했는데, 미국 내 상당수의 업체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법인카드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애플에게 호재다.
정리하면 애플의 핀테크 전략은 UX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가만히 보면 사용자의 UX보다는 가맹점의 UX에 더 관심이 있는 듯하다. 아무리 편리한 핀테크가 나오더라도 이를 받아서 결제해야 하는 것은 결국 가맹점이기 때문이다. 지금 애플페이를 쓰려면 직원에게 애플페이로 결제하겠다고 말을 해야 하는 것 자체가 보급을 가로막는 걸림돌이어서다. 애플페이를 사용하기 위한 하드웨어 바탕인 터치아이디는 충분히 성숙됐다. 판매하고 있는 스마트폰, 태블릿 가운데 터치아이디가 없는 제품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앞으로 출시될 제품은 100% 지원된다. 남은 것은 애플페이를 쓰면 보다 더 편리하게 결제하고 소비자의 프라이버시가 완벽하게 보호될 수 있다는 UX만 충족시키면 된다. ‘페이팔’이 성공할 수 있던 원동력도 여기에 있지 않았던가.
<이수환 기자>powerusr@insightsem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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