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TV혁신①] 삼성 TV의 적은 ‘자만’뿐…끝없는 기술개발로 살아남다
[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온 나라가 힘겨웠던 국제통화기금(IMF) 시절, 자의반 타의반으로 시행된 ‘수입선다변화제도 폐지’가 시행되면서 국내 가전 시장은 위기감에 사로잡혔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만 하더라도 냉장고는 월풀이나 제너럴일렉트로닉스, TV는 소니, 심지어 전기밥솥은 조지루시(일명 코끼리 밥솥)가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산 브랜드가 물밀 듯 들어오면 상대적으로 프리미엄 이미지가 부족한 국산 가전제품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 당연하게 보였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과감히 기술개발에 매진했다. 냉장고는 ‘지펠’, TV는 ‘파브’를 내세워 그 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격렬한 변화에 몸을 던졌다. 이 가운데 TV는 일본 브랜드가 들어오면 금방 국내 시장에 잠식되리라던 세간의 평가를 불식시켰다.
먼저 프로젝션 TV가 시험대에 올랐다. 프로젝션 TV는 브라운관(CRT)과 프로젝터의 장점을 합친 것이 특징으로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각광받던 액정표시장치(LCD)나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대화면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혔다.
내부 구조도 비교적 단순했다. 1~3인치 크기의 CRT, 혹은 DLP 화면을 키워 스크린에 투영하는 방식이었다. LCD, PDP TV와 마찬가지로 HD급 해상도를 지원했다. 물론 시야각, 밝기 등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았으나 프로젝션 TV 자체가 일본 업체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프리미엄 시장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상당한 기술적 의미가 있다.
1999년 첫 선을 보인 61인치 ‘삼성 파브 프로젝션 TV’의 가격은 758만원으로 웬만한 소형차에 맞먹었다. 삼성전자도 내부적으로 국내에서 판매되는 가전제품을 통틀어 가장 비싼 TV가 얼마나 시장에 통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었으나 출시 1년 만에 5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기록해 옳은 선택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모두가 일본 업체의 공격을 두려워하고 어떻게 하면 방어에 몰두할까 생각했을 때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이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었던 셈이다.
◆2006년 첫 TV 시장 1위, 9년 연속도 목전=프로젝션 TV로 프리미엄 초석을 쌓은 삼성전자는 본격적인 세계 공략에 나서기 시작했다. 핵심은 LCD TV로 2004년부터 평판TV 시장에서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다만 당시 시장점유율은 매출 기준으로 5.9%로 샤프전자, 파나소닉, 소니 등과 비교하면 아직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이때 삼성전자는 TV를 세계 초일류 상품으로 도약시키기 위해 그룹 수뇌부가 모여 ‘TV일류화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TV의 본질인 화질부터 시작해 디자인, 사용자 인터페이스(UI)에 이르기까지 과감한 변화에 매진했다. 덕분에 2년 만인 2006년 전 세계 TV 시장에서 출하량 기준으로 14.3%를 기록, 소니를 누르는 쾌거를 이뤘다.
삼성전자의 추진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시 1위는 출하량에 근거한 것으로 진정한 1위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출하량뿐 아니라 매출에서도 1위에 올라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고 이듬해인 2007년 이 약속을 지켰다. 이 시기 최고의 히트상품인 ‘보르도 TV’는 프로젝션 TV가 그랬던 것처럼 한층 차별화된 프리미엄을 제공했고 디자인에서도 이제까지의 TV와 격이 다른 경험을 맛볼 수 있도록 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발광다이오드(LED) TV로 다시 한 번 혁신을 일궜다. TV를 스탠드에 올려 두는 것은 물론이고 액자처럼 벽에 걸어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얇은 두께를 구현에 중점을 뒀다.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나치게 앞서 나가면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때에도 삼성전자는 방어보다 공격을 택했다. 프로젝션 TV와 보르도 TV를 통해 시장 선점의 중요성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결국 TV는 보는 것 이상의 가치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울트라HD(UHD)와 커브드(곡면) 시대로 넘어온 지금도 마찬가지다. 특히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달리 LCD 기반의 커브드의 경우 위쪽과 아래쪽에 장착된 두 장의 유리가 같이 휘어져야 한다. 이 때 해당 구조가 정확하게 맞물려야 하는데 엇갈림이 생기기 쉽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픽셀 구조 개발이 필수적이다. LCD의 핵심인 액정부터 시작해 메인보드, 기구, 백라이트유닛(BLU)도 같이 휘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현재 삼성전자는 9년 연속 세계 시장 1위 달성에 한걸음 더 다가간 상태다. 올해 상반기에만 30.7%(매출 기준)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으며 평판TV를 비롯해 LCD, LED, UHD TV 등 TV 전 부문에서 선두자리를 차지했다.
10년 가까이 시장 선두를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끊임없는 ‘자기혁신’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성과를 질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사장 무서운 것은 소비자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화려한 마케팅과 광고로 도배를 해도 소비자의 기대와 만족감을 채우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끝없는 기술개발, 그리고 프레임을 깬 ‘사고’가 지금의 삼성전자 TV 신화를 만든 일등공신이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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