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온실가스배출거래①] 2015년 배출권 거래제 시행… “산업계 부담 완화해야”
[디지털데일리 한주엽기자] ‘사실상 환경 세금 신설, 산업 경쟁력 약화’
정부가 내년부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한다고 발표하자 산업계에선 이 같은 반응이 나오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기업이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 양을 정부가 할당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부족한 배출권을 사서 쓰는 제도다. A라는 기업이 100톤의 배출권을 할당받았고 실제 배출한 온실가스량이 110톤이라면, B기업에서 배출권 10톤을 사와야 한다. 할당량보다 적게 배출하면 다른 기업에 배출권을 팔 수는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배출권 총 수량이 비현실적으로 적다는 점이다.
환경부가 지난 5월 발표한 ‘국가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계획안’에 따르면 1차 계획기간인 2015부터 2017년까지 정부가 산업계에 할당한 배출권 총 수량은 16억4000만톤CO2다. 산업계는 이 같은 총 수량이 ‘엇나간’ 2009년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usiness As Usual, BAU)를 토대로 산정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2009년 정부가 추정한 BAU는 산업 성장을 고려치 않은 ‘과소평가’ 수치”라며 “환경부의 국가 배출권 할당계획은 산업계의 실제 배출량과는 큰 격차를 보인다”고 주장했다. 전경련 등 6개 경제단체와 18개 산업계 협단체가 2010년 실 배출량을 기준으로 분석해 본 결과, 2020년 BAU는 8억9900만톤CO2로 2009년 정부가 예측한 8억1300만톤CO2 대비 10% 이상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이들은 환경부가 제시한 배출권 총 수량에는 과거 3년(2011~2013년)과 1차 계획기간(2015~2017년)에 투자로 인한 신규 설비의 배출량 증가분 및 증가 예상분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전경련 자료에 따르면 발전·철강·석유화학·시멘트·정유·디스플레이·반도체 등 17개 주요 업종의 2015~2017년 BAU는 17억7800만톤CO2(음식료품·목재·수도·폐기물·건물·항공 업종 제외)로 정부 할당량 14억9500만톤CO2 대비 약 2억8000만톤CO2나 부족하다. 2억8000만톤CO2를 비용으로 환산하면? 향후 3년간 국내 기업들이 모자라는 배출권을 사기 위해 약 6조원(2010년 평균 EU가격, 톤당 2만1000원)을 써야 한다는 것이 전경련의 주장이다. 배출권이 부족한 상황에 판매자가 없을 경우 과다한 과징금(톤당 10만원 상한)을 부과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럴 경우 최대 28조원(2억8000만톤x2만1000원)의 비용 부담이 생길 수도 있다고 전경련은 지적했다.
간접배출에 따른 이중규제도 논란거리다. 간접배출이란 다른 사람으로부터 공급된 전기 또는 열을 사용함으로써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의미한다. 환경부가 벤치마크 대상으로 삼고 있는 유럽연한 배출권거래제(European Union Emission Trading Scheme, EU-ETS)도 간접배출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특히 발전 부문의 배출권 비용이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부담 요인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달 기자들과 만나 “배출권 거래제가 전기요금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정부의 시장 안정화조치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전기요금이 인상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배출권 총량은 EU 사례, 산업경쟁력 고려, 국가 감축 목표 달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설정한 수치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산업계의 자체 배출 전망치는 정부 전망치 대비 높은데다 완화된 감축률(업종별로 10%)을 이미 적용해 산업계 입장은 반영돼 있다는 것이 환경부의 설명이다. 환경부 측은 전경련과 동일한 기준(톤당 2만1000원)으로 배출권 구입 비용을 산정할 경우 산업계가 부담할 비용은 6조원이 아니라 2조7000억원에 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과징금에 따른 ‘최대 28조원 부담’은 추가할당 및 시장안정화 조치 방안이 마련돼 있어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량 예측은 이미 실패했다는 분석 결과과 속속 나오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정부는 2009년 당시 2010년 6억4400만톤CO2의 온실가스가 배출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제 배출량은 이보다 5.8% 많은 6억6900만톤CO2였다. 2012년 실제 배출량도 7억190만톤CO2로 정부 예측치(6억7400만t) 대비 4.1% 초과했다. 2020년 배출량 예측치(8억1300만톤) 또한 빗나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전경련 측은 “중요한 정책결정이 산업계와 다양한 전문가와의 의견수렴 없이 결정됐다”며 “환경부 민관추진단에는 산업계 인사가 참여하지 않았고, 업종별 할당량과 관련한 어떠한 논의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제도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이해관계자와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할당계획을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배출권 거래제를 국가 단위로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EU 국가들과 뉴질랜드, 호주 정도인데 왜 한국에서 이런 환경 규제를 먼저 시행하느냐는 불만도 있다.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의무적으로 감축하자는 ‘교토의정서’ 대상국도 아니다. 더욱이 교토의정서는 미국은 물론, 일본, 러시아, 캐나다, 뉴질랜드가 모두 참여를 거부한 상태로 지금은 휴지조각이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산업계는 원가 경쟁력이 해외 경쟁사 대비 떨어질 것을 우려한다. 국내 대형 제조업체 고위 관계자는 “배출권 거래제 그 자체로 강력한 환경 규제가 하나 더 늘어나는 것”이라며 “배출권 구매 비용 뿐 아니라 추가 관리 비용도 무시할 수 없고, 이는 곧 가격 인상 요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배출권 거래제와 관련한 정치권의 입장은 ‘부담완화’로 초점이 맞춰진다. 이채익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대한민국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으므로 배출권 가격 재조정을 통해 산업계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0년 1월 녹색성장기본법에 배출권 거래제 도입근거를 마련한 이후 수년 동안 산업계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했다”라며 “향후 업종별 할당량을 선정할 때 산업통상자원부가 배출권 가격 재조정을 통해 산업계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7일 인사청문회를 하루 앞두고 국회 기획재정위에 보낸 서면 답변서에서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불필요한 부담으로 인식하기보다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체질 개편과 새로운 기회 선점을 위한 수단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시행 초기 단계의 업계 부담, 불확실성 등을 감안해 업계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부담을 완화하는 등 배출권 거래제가 성공적으로 안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주엽 기자>powerusr@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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