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한주엽기자] 삼성 계열사 사장이 그룹의 맏형격이자 사업적으로는 고객사 위치에 있는 삼성전자에 대해 이른바 ‘소신발언’을 쏟아내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상진 삼성SDI 사장의 이야기다.
박 사장은 지난 1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13’ 기조연설 직후 기자들과 만나 “최근 해외에서 (폭발, 화재 등으로) 문제가 된 갤럭시S4는 중국산 저가 배터리를 탑재한 제품들”이라며 “중국산 배터리는 안전성에 문제가 있어 (삼성전자에) 쓰지 말아야 한다고 설득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삼성SDI도 삼성전자에 배터리를 공급했지만, 우리 제품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사장의 이 같은 발언으로 삼성전자는 난처한 입장에 놓였다. 그간 삼성전자는 해외 각국에서 일어난 갤럭시S4의 충전 중 화재 사고에 대해 이렇다 할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었다. 삼성전자에서 스마트폰 사업을 총괄하는 신종균 사장은 지난 23일 박 사장의 발언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중국 일은)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며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중국산 배터리는 저질’임을 강조한 삼성 계열사 사장의 소신 발언은 그룹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삼성은 최근 몇 년 사이 최대 소비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과 관계 맺기에 한창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언론이 자사 스마트폰의 문제점을 부각하자 즉각적으로 ‘사과 성명’을 내는 등 자세를 낮추고 있다. 그러나 박 사장의 발언으로 중국 정부 혹은 산업계와의 관계가 틀어질 수 있다는 것이 삼성 안팎의 설명이다.
박 사장의 발언은 이어졌다. 30일 그는 서울 서초사옥서 가진 삼성사장단회의 직후 “(커브드 배터리는) 삼성전자에서 주문만 하면 양산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차세대 배터리 경쟁에서 LG화학에 뒤쳐진 것이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이 발언은 삼성전자가 삼성SDI의 배터리를 사용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됐다. 휘어진 스마트폰 갤럭시라운드에 삼성SDI의 커브드 배터리가 들어갔다면 세계 최초 양산이라는 명예를 LG화학에 내주지 않아도 됐다.
◆박 사장은 삼성 그룹의 중대 사업조정 주도한 인물
삼성SDI는 지난 3분기 매출액 1조2966억원 영업이익 292억원을 달성했다. 전년동기대비 매출액과 영업이익 각각 13.7%와 66.3% 감소했다. 이 같은 실적은 시장 기대치를 밑도는 것이다. 삼성SDI의 중단기 실적 전망은 매우 부정적이다. 전사 매출의 40% 이상 비중을 차지했던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사업은 시장 축소로 실적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 디스플레이 업계에선 2016년이면 PDP 시장 자체가 거의 소멸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SDI의 양대 주력 사업 가운데 하나가 없어진다는 의미다.
회사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자동차 전지 및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신성장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 사장은 “자동차 개발 기간이 있기 때문에 차량용 전지 수주를 받아도 3년 이후에나 본격적인 매출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향후 3년간 실적 하락세는 피해갈 수 없다는 의미다.
기대했던 테슬라 배터리 공급건도 경쟁사인 파나소닉으로 넘어갔다. 테슬라는 30일(현지시각) 내년 1월부터 오는 2017년까지 4년간 파나소닉으로부터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셀 20억 개를 공급받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올해 말 종료되는 2년간 공급계약 물량인 2억 개의 10배나 되는 규모다. 결국 삼성SDI의 실적 하락을 상쇄할 수 있는 유일한 사업 부문은 소형 전지다. 박 사장이 소형 배터리와 관련된 소신발언을 쏟아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박 사장은 삼성테크윈의 카메라 사업부를 삼성디지털이미징으로 분사시킨 뒤 삼성전자로의 흡수 합병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사장 승진도 이뤄졌다. 삼성SDI 대표이사로 이동한 뒤에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사업을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로 이관시키는 등 그룹의 중대한 사업 조정을 도맡아서 했다. 서울대 출신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는 동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