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한주엽기자] “대단히 어려운 기술입니다. 양산이 가능할 지 모르겠지만, 일본은 역시 저력이 있는 나라예요.”
김기남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사장)는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2013 인터내셔널 CES’ 현장에서 파나소닉의 4K 56인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파나소닉은 올해 CES에 레드(R)그린(G)블루(B) 각각의 OLED 재료를 ‘증착’하는 것이 아니라 ‘인쇄’하는 공정으로 56인치 4K(3840×2160) 해상도를 구현한 OLED TV를 선보인 바 있다.
김 사장이 일본의 기술력을 높이 평가한 이유는 물론 있다. 파나소닉의 프린팅 공법은 완성이 어려운 기술이지만 제조 공정이 단순해 양산 라인에 적용될 경우 생산 시간을 단축시키고 재료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한국 디스플레이 업계에선 프린팅 공법은 차기 혹은 차차기에나 적용 가능한 기술이라는 논의가 오가곤 했다. 그런데, 쓰러질 것 같았던 파나소닉이 이런 기술로 만든 시제품을 들고 나왔으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소니의 56인치 4K OLED TV는 화질에 대한 평가가 많았다. 김현석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부사장)은 “(소니 OLED TV는) 화면이 굉장히 밝고 선명하다”며 “구현하기 굉장히 어려운 기술인데 잘 녹여놨다”라고 말했다.
소니 제품에는 OLED의 빛을 효율적으로 꺼낼 수 있는 독자적인 전면발광(Super Top Emission) 기술이 적용됐다. 전면발광 기술은 유기층의 빛을 기판에 통과시키지 않고 옆으로 우회, 기판 위로 보내는 방식이다. 빛이 기판을 통과하지 않기 때문에 그 만큼 손실이 적다. 전면발광 방식을 패널에 적용하려면 투명 음극, 반사형 양극 및 투명 봉지(밀봉) 등 고난도의 공정 기술이 필요하다. 소니 뿐 아니라 파나소닉의 OLED TV에도 이 같은 전면발광 기술이 적용돼 있다. 소니가 파나소닉에 기판 기술을 전수하면서 전명발광 기술도 알려준 듯 하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모바일 OLED 패널에 이 같은 전면발광 기술을 적용하고 있지만 대형쪽에선 삼성과 LG 모두 후면 발광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즉, 일본 제품 대비 우리 제품의 화면 밝기가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히라이 가즈오 소니 최고경영자(CEO)는 CES 개막 전 열린 프레스컨퍼런스에서 “약속을 못 지키는 OLED TV도 있지만(삼성전자를 겨냥한 듯) 우리는 이미 업무용 OLED 모니터를 성공적으로 양산한 경험이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는데, 이러한 기술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CES를 참관한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그리고 세트 업체인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니와 파나소닉이 이번 CES에서 공개한 56인치 4K OLED TV는 크기나 해상도, 제조 공정 등 모든 면에서 삼성과 LG 보다 앞선다는 것이 디스플레이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혹자는 장기간 적자로 재정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 업체들이 이들 제품을 대량으로 양산하기란 힘들다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대만 혹은 중국 업체들과 손을 잡고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다. 소니가 이번 CES에 전시한 OLED TV의 패널은 대만 AUO가 만든 것이다. 소니가 일부 기술을 전수해준 것으로 보인다. 뒤쳐져 있던 AUO는 소니의 도움으로 단번에 삼성과 LG의 기술 수준까지 치고 올라왔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일본 업체들이 중국과 손을 잡는 것이다. 중국의 자본과 일본의 기술이 합쳐진다면 한국 업체들은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부터 OLED, LCD 분야에서 치열한 특허 공방을 벌이고 있다. 보다 못한 정부가 중재에 나섰다고 한다. 양사가 정부의 중재를 받아들여 특허전에 쏟아붓고 있는 정력과 자원을 자체적인 기술 및 제품 경쟁력 향상에 쓰면 좋겠다. 소니와 파나소닉 처럼 기술 협력은 못하더라도 소모적인 감정 싸움이나 특허 분쟁에 자원을 낭비하지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