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공개되는 아이폰5 초도 물량에 삼성전자 모바일D램과 낸드플래시가 빠졌다는 업계발 소식이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스마트폰 특허 분쟁으로 양사 관계가 악화됐고, 애플이 삼성 부품을 줄일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됐다는 주장도 곁들여졌다. 이른바 애플의 보복(?)이라는 해석이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의 잡다한 주장과 기록을 살펴보면 이런 보복의 영향으로 삼성전자 부품 사업은 매출이 줄어들고, 이를 우려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을 둘러싼 특허 소송에서 백기를 들 수 밖에 없다는 관측이 많다.
삼성전자가 애플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부품을 팔아 번 돈은 연간 매출의 6%에 이르거나 이를 상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삼성전자가 이 수치를 공개하지 않지만 마지막으로 수치를 공개했던 작년 1분기 보고서를 보면 6%에 조금 못 미치는 5.8% 비중을 차지했었다. 삼성전자의 올해 매출액 전망치는 200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200조원에 6%면 12조원이다. 12조원은 적은 돈이 아니다.
전문가 그룹은 시각이 다르다. 업계의 고위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소화하는 물량이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수익성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그런데 애플이 삼성 부품을 당장 배제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애플이 삼성전자를 버린 것이 아니라 삼성전자가 애플을 버렸을 것이라는 추정은 이채롭다. 애플은 부품 가격을 과도하게 깎아 줄 것을 요구했고, 삼성전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 강정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수익성에 도움이 되지 않아 애플로 공급되는 삼성 메모리 물량이 줄어들고 있는 건 맞고, 이는 삼성 의도가 상당 부분 반영된 것”이라며 “이런 가운데 애플이 보복성 조치를 취했다는 해석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강 연구원 말고도 다수의 증권가 연구원들이 이 같은 추정을 내놨다.
애플은 장기(2~5년) 부품 공급 계약을 맺기 때문에 아무 이유 없이 계약을 파기할 수 없다는 지적도 이 같은 추정들의 논리를 뒷받침한다.
이와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작년 10월 19일 기자들과 만나 “(2012년 애플 부품 공급건은) 얘기를 다 끝냈고 2013~2014년에 또 어떤 좋은 부품을 공급할지 (팀 쿡 CEO)와 논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스티브 잡스 추모식에 참석한 뒤 팀 쿡 애플 CEO와 만났었다.
보도의 사실 관계는 논외로 치더라도, 애플이 삼성의 ‘부품 역풍’에 당할 수 있다는 관측은 꾸준하게 나왔었다.
영국 IT전문펀드인 폴리캐피털의 벤 로고프 매니저는 “애플은 안정적으로 부품을 공급해줄 수 있는 협력사가 필요하다”며 “삼성과 관계가 틀어지면 다른 협력사를 찾아야 하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투자은행 파이퍼 재프리의 진 문스터 연구원도 “삼성은 애플 아이폰에 탑재되는 부품 가운데 약 40%를 책임지고 있다”며 “이 부품들을 계속 공급받아야 하는 애플은 특허 소송이 회사에 어떤 타격을 미칠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전했다.
정작 애플의 숨통을 쥐고 있는 건 삼성전자라는 분석도 있다. 삼성전자는 애플 아이폰과 아이패드 시리즈에 탑재되는 ARM 기반 A 시리즈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파운드리(위탁생산) 서비스해 주고 있다. 메모리는 대안이 있지만 AP는 대안이 없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AP 생산의 대안으로 지목되는) TSMC 등은 애플 물량을 소화해낼 만한 여력이 없다”며 “애플이 삼성전자와 스마트폰 특허 관련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부품 레벨에선 여전히 협력을 이어나가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팀 쿡 애플 CEO는 작년 실적발표회에서 특허 소송에 대해 “삼성 스마트폰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고 느꼈다”고 말하는 가운데에서도 “애플은 삼성의 최대 고객이고 삼성은 매우 가치 있는 부품 공급업체로 강한 관계가 계속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