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한주엽기자] 미국 마이크론의 품에 안긴 일본 엘피다가 범용 D램 생산량을 줄이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에 대해 “엘피다가 히로시마 공장의 일부 PC용 D램 라인을 모바일 D램용으로 전환하면서 생긴 ‘의도적 감산’”이라고 해석했다. 경쟁력 떨어지는 범용 D램은 포기하고, 수익성 높은 모바일 D램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PC 수요는 이미 정체다. 역성장 가능성도 제기된다. 범용 D램의 원가경쟁력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이길 수가 없다. 내년 출시될 새로운 버전의 울트라북에는 모바일 D램이 탑재될 전망이다. 그런데 범용 D램 가격은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전환하려면 지금 하는 것이 맞다.
마이크론은 엘피다를 인수함으로써 규모면에서 D램 2위 업체로 올라섰다. 시장조사업체 아이서플라이의 자료를 보면 마이크론은 엘피다 인수를 통해 D램용 웨이퍼 월 투입 기준 37만장 규모의 업체가 됐다. 삼성전자(40만장)에는 못 미치지만 SK하이닉스(30만장)는 앞서는 것이다.
이렇게 덩치를 키운 마이크론은 수익성 중심으로 라인을 전환하는 등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힘든 길을 가게 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서로 다른 메모리 반도체 업체가 만나 시너지를 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마이크론과 엘피다는 공장과 장비, 설계와 사람, 관리 시스템이 모두 다르다. 엘피다가 설계한 모바일 D램을 마이크론 공장에선 찍어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반대 경우도 물론 마찬가지다.
시너지를 내기 위해선 양사 기술을 통합한 새로운 공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마이크론이 새 공장을 지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이어진 적자와 비슷한 규모의 엘피다 인수로 이미 지갑이 비었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통합 공장을 짓겠다는 투자 발표를 할 수도 있겠지만, 변수는 역시 시장 상황이다.
지금보다 메모리 가격이 더 빠져서 적자를 이어간다면 통합 작업이 더뎌질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고집 센 일본인 엔지니어를 마이크론이 제대로 포용할 수 있을까.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마이크론의 엘피다 인수는 회사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망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마이크론의 엘피다 최종 인수 소식을 접하곤 쾌재를 불렀을 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