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한주엽기자] 일본의 IT 전문매체 임프레스와치는 얼마 전 미국에서 열린 국제고체회로학술대회(ISSCC) 2012의 현장 취재 기사를 온라인 지면에 게재했다.
세계 3대 반도체 학회로 손꼽히는 ISSCC에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차세대 D램 메모리인 DDR4, LPDDR3에 관한 발표를 했다. 임프레스와치는 이 소식을 전하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새로운 D램 칩을 발표한 기업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두 곳 뿐”이라며 “(엘피다 등은 신기술 신제품 발표를 하지 않아) 조금은 씁쓸하다”고 적었다.
엘피다의 파산보호 신청 다음날 요미우리신문은 “기술 개발에 뒤쳐진 탓에 일본을 상징한 대표적인 반도체 산업이 신흥국(한국)에게 넘어가고 말았다”고 평가했다.
국내 증권업체들은 엘피다의 파산보호 신청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실적에 긍정적 영향이 예상된다며 보고서를 쏟아냈다. 파산보호 관리를 받게 되면 설비 투자 집행에 제약이 있을 것이고 정상적인 생산 및 영업 활동이 어려워져 국내 업체들이 수혜를 받을 것이란 내용이 주를 이뤘다. 한 연구원은 엘피다가 파산보호 신청 이후 회생에 성공하지 못하고, 파산한 독일 키몬다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엘피다가 이대로 영영 사라질 것이란 전망은 섣부른 것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일본이 반도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범용 D램은 몰라도 최근 뜨고 있는 모바일 D램 분야에서 엘피다는 하이닉스의 뒤를 바짝 쫓고 있는 추격자다.
지난해 4분기 모바일 D램 분야에서 하이닉스와 엘피다의 점유율 격차는 불과 3.8% 차이(D램익스체인지 조사)로 좁혀졌다. 양산 기술력이 떨어져서 그렇지 개발 기술력은 갖췄다는 것이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일본 정부도 이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있는 사카모토 유키오 엘피다 사장이 “버릴 테면 버리라”는 식으로 배를 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이닉스처럼 독자 생존은 힘들겠지만 도시바와 인수합병을 하기 위한 포석을 깐 것이 아니겠느냐는 설명이다.
전동수 삼성전자 DS총괄 메모리사업부장(사장)은 이와 관련 “낸드플래시를 전문으로 하는 도시바가 엘피다를 인수하면 삼성전자의 강력한 경쟁자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수인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사장도 “한국이 훨씬 앞서는 것 같지만 소재 등 기초 분야에선 일본이 탄탄하다”며 “일본 업체들이 뭉치고 있는 현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한 수에 한국 업체들이 방심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날 수 있음을 경계하며 늘 앞서나갈 수 있도록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