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나 칼럼

[취재수첩] AI 도입, 유행과 현실 사이

이안나 기자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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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이안나기자] “AI를 도입해야 하는데 저희는 뭘 하면 되죠?”

최근 만난 한 AI 서비스 기업 직원이 상담 기업들로부터 들은 질문이다. AI 상담을 요청해 오는 기업들 대부분이 구체적인 업무 목적이나 문제의식 없이 ‘AI를 써야 한다는 압박’부터 갖고 찾아온다는 것이다.

생성형 AI가 기업 운영 전반을 바꾼다는 전망은 넘쳐나지만 실제 현장에선 “왜 도입해야 하는가”보다 “무엇을 도입해야 하나”가 먼저 나오는 경우가 많다.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 추진되는 AI 도입은 방향과 전략이 빠진 채 기술만 덜컥 앞서게 만든다.

이러한 현상은 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국내 500개 기업 IT·전략기획 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78.4% 기업이 AI 기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실제로 AI를 활용하고 있는 기업은 30.6%에 그쳤다. 즉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높지만 구체적인 도입 및 활용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셈이다.

특히 최근 기업 내부에서는 IT 투자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AI’라는 키워드를 의도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실제 필요성보다 AI라는 단어 자체가 예산 승인의 열쇠가 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AI가 내용보다 형식이 앞서는 일종의 ‘유행어’로 변질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 기술이 확산되면서 나타나는 또 다른 현상은 ‘AI 워싱(AI washing)’이다. 단순 자동화나 데이터 분석에 불과한 기능도 AI 솔루션'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는 과거 클라우드나 빅데이터 등 기술이 유행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나타났던 현상이다. 새로운 기술이 성숙하기 전엔 이런 과장된 마케팅과 모호한 경계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최근 기업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개념 중 하나는 'AI 에이전트'다. 고객 응대, 문서 작성, 사내 매뉴얼 검색 등 업무를 자동화해 직원 부담을 줄이려는 시도다. 다만 AI 에이전트가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도 실제 도입 현장과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기존 시스템과의 연동 문제, 보안 정책과 충돌, 비용 등 도입 초기부터 마주치는 현실적 장벽들 때문이다.

무엇보다 실무에 적용되는 만큼 기대치가 높아지는 반면, 직원들의 리스킬링(재학습)이 필요하고 조직 문화 변화도 요구된다. “재미로 쓰는 AI와 업무에 쓰는 AI는 전혀 다르다”는 말은 현장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여기에 규제와 내부 구성원들 우려까지 더해지면 AI 도입은 단순한 도입을 넘어 조직 전체 변화와 맞물리는 과제가 된다.

국내외 기업들의 AI 도입 사례를 살펴보면 성공적인 경우는 대체로 명확한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경우가 많다. 반면 트렌드에 따라 서둘러 도입했다간 활용도가 떨어지거나 유지 비용만 증가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기술 중심이 아닌 문제 중심의 접근이 중요한 이유다.

기술은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목적 없이 도입 자체를 전제로 움직이는 AI 프로젝트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한 건 AI 도입 방향과 이유에 대한 자문이다. ‘모두가 하니까’가 아니라, ‘우리에게 왜 필요한가’가 중심이 돼야 한다. 유행을 쫓는 AI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이안나 기자
anna@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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