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활자부터 AI까지... 韓 신문기술 40년의 산증인 '서울시스템'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신문은 한때 TV 뉴스와 함께 대표적인 '국민 정보지'로 통했다. 비록 최근 종이신문의 위상은 이전 같지 않지만, 그사이 뉴스의 소비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했을 뿐이다. 요즘 또 하나의 정보 채널로 인정받는 인플루언서들의 SNS 채널조차, 특정 이슈 및 사실관계 파악은 여전히 온라인 뉴스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정보를 끊임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공급해야 하는 언론사에 취재, 기사화만큼 중요한 건 '제작 환경'이다. 여기에는 기사를 독자 친화적인 형태로 재가공하는 모든 작업(편집)과 생산성(속도, 효율 등) 관련 시스템이 포함된다. 이 가운데 편집만큼은 지금도 각 언론사 편집국만의 고유 영역이자 노하우로 분류된다.
반면, 생산 시스템의 효율화는 전문 기술(Skill)이 필요한 영역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외부 조력자와의 협업이 중요하다. 특히 오늘날 한국의 신문기술 산업이 아날로그 활자에서 디지털 중심으로, 나아가 인공지능(AI) 전환기에 이르기까지 세대별 정보산업혁명에 뒤처지지 않고 따를 수 있었던 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언론을 지원해 온 그들의 공이 혁혁하다 할 수 있다.
그중 올해 창립 40주년(1985년 설립)을 맞이한 '서울시스템'은 그간 한국의 현대화된 신문제작 기술 발전 역사 전반을 함께 기록해 온 산증인으로 꼽힌다. 현재 다수의 중앙지가 포함된 50여개 언론사에 온·오프라인 신문제작 솔루션을 공급 중이다. 또한 AI를 비롯한 차세대 기술 시대상에 부합하는 뉴스 제작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이들의 회고에서 우리 신문 역사의 지난날을 돌아보고, 비전을 통해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겠다는 기대가 따른다. 이에 지난 3월21일 서울 신문로1가에 위치한 서울시스템 본사에서 연배흠 대표이사와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회고 #1 플라스틱 키보드 앞에 앉은 '납활자의 달인'들
서울시스템 재직 35년차인 연 대표는 입사 후 방문한 첫 신문사에서 기억하는 장면은 납활자 기반 인쇄 시스템이었다. 말 그대로 납으로 만든 글자판이 벽 한가득 채워져 있고, '문선'이란 직책자들이 기사 원고대로 활자를 뽑아 신문 틀에 넣어 인쇄하던 시절이다. 이런 전통의 아날로그 신문 생산 방식은 서울시스템이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 MS DOS(도스 운영체제) 기반의 '커맨드 방식 입력기' 같은 초기형 컴퓨터 시스템의 등장으로 변화가 시작됐다고 한다.
연 대표는 "당시엔 지금으로 따지면 '생활의 달인'에 출연할 수준의 활자 인쇄 전문가들이 돋보기 안경을 쓰고 컴퓨터 키보드 배열을 외우는 모습을 보게 된 시절"이라며 "시대 흐름상 어쩔 수 없었지만, 그들에겐 쉽지 않은 변화였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회고 #2, 등 뒤로 들리던 커터칼 소리… 생존 비결은?
사실 어떤 산업이든, 생산 기술의 발전은 곧 일터의 변화로 이어진다. 그에 따른 사회적 마찰이 반복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성장통을 지혜롭게 이겨내는 시장이 있는가 하면, 수년 전 공유 자동차와 택시업계의 마찰처럼 서로에게 아픔만 남기는 시장도 있다. 수십년 이상 신문사의 디지털화 파트너로 함께한 서울시스템도 비슷한 딜레마를 수없이 겪은 회사다. 실제로 연 대표의 관련 기억 중에는 꽤 살벌한 장면도 남아있다.
"컴퓨터로 신문을 조판하게 된 초기에도 인화지를 신문 크기로 잘라 붙이고, 촬영 후 필름으로 만들어 윤전까지 담당하던 전문가들이 50~60명씩은 있었다. 하지만 우리 컴퓨터가 도입되면서 그들이 일자리를 잃기도 했는데, 그 때문인지 컴퓨터 설치 작업을 할 때 등 뒤에서 커터칼로 '드르륵, 드르륵' 칼소리를 내기도 했다. 아마 우리에게 무언의 불편과 압박감을 전하고자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작은 발상의 전환이 이런 마찰을 상생의 기회로 바꿨다. 연 대표는 "대신 잘 생각해 보면 그들은 신문 편집의 중요한 요소인 레이아웃(Layout, 배치) 개념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던 이들"이라며 "이에 착안하여 서울시스템은 그들이 칼로 하던 일의 노하우를 컴퓨터로도 할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을 함께 제공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서울시스템도, 한 기술의 세대 전환기를 맞이한 이들도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여전히 변화에 보수적인 한국 언론… "기다리면 늦어"
상당한 수준의 디지털화가 이루어진 지금은 어떨까? 모양만 조금 다를 뿐 한국 언론은 여전히 신기술 도입에 보수적이다. 이에 서울시스템도 과거와 비슷한 씨름을 이어가고 있다. 달라진 점은 현장의 변화를 강요하는 대신 '준비'에 더 많은 힘을 쏟게 된 부분이다. 연 대표는 이를 두고 "고객이 필요할 때 즉시 내놓을 수 있도록"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말은 인터뷰에 앞서 다소 고리타분하게 들렸던, '서울시스템은 미래 산업을 선도하고, 시대에 앞서 언론과 함께 성장하는 기업'이란 연 대표의 회사 소개가 뻔한 이야기는 아니었음을 부연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연 대표는 "돌아보니, 너무 앞서가도 문제였다. 실제로 모 사업설명회에선 우리가 선제적으로 개발한 솔루션이 언론사 이해관계자들의 반대에 부딪힌 적도 있었다"며 "그럼에도 세계적인 흐름이나 달라지는 경제 논리마저 무시할 순 없다. 일례로 유럽, 미주 지역은 벌써 15년 전부터 신문시장 변화에 발맞춰 디지털 윤전기, 일종의 고속 프린터를 도입하고 있다. 이른바 '신문의 다품종 소량 생산'을 위한 것인데, 국내로 치면 종로구, 성동구, 마포구에 나가는 신문을 이슈에 따라 달리 만들고 광고도 따로 싣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변화는 현실적으로 한국도 멀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날 서울시스템의 전략은 우리가 읽은 시대의 흐름대로 필요한 솔루션을 미리 개발해 두고, 언론이 필요를 느낄 때 바로 제공하는 파트너가 되기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를 위해 매년 세계신문협회가 주관하는 전시회에 정기적으로 참가해 해외 경쟁사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어떻게 실행하게 됐는지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AI와 SaaS의 시대, 다시 변화할 뉴스 제작환경
현재 서울시스템이 준비 중인 차세대 제품은 뉴스 제작 시스템의 AI화 및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보급이다. 다만 AI로 기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닌, 순수 보조 역할에 집중한다.
연 대표는 "우리가 보는 AI의 역할은 콘텐츠 생성보단, 기자들이 의도대로 기사를 빠르게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부수적인 수고를 줄여주는 것"이라며 "기사의 특성상 콘텐츠 생산에 AI를 쓰면 큰 오류가 따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사실을 다루는 언론사의 특성상 AI 도입에는 무엇보다 '신뢰와 책임'이 앞서야 한다는 것이 연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AI로 기사를 생산하는 일은 분명 편리하고 빠르지만, 결국 문제가 발생한 기사의 책임은 AI가 아닌 사람이 진다. 일례로 한글 기사를 AI로 번역해 글로벌 시장에 유통하는 시도만 해도 그렇다. 한글일 때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번역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오역이 발생하고, 해외독자들에게 읽히면서 기사 당사자들과 마찰이 발생하는 일이 실제로 발생하는 요즘"이라며 "트렌드에 발맞춘 AI 도입보다 중요한 건 도입하려는 AI를 책임지고 점검할 수 있는 사람과 시스템의 선제적 구축"이라고 제언했다.
이에 현재 서울시템의 CMS(Content Management System)도 AI를 활용한 ▲기사 자동분류 ▲관련 키워드 추출 ▲제목 생성 ▲본문 요약 등 기사 작성 마무리 단계 지원을 비롯하여, 기사 작성 중 주제에 걸맞은 사진, 영상, 관련기사, 그래프 등을 내부 아카이브에서 자동 검색해 가져오는 스마트 보조 기능 등을 주로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팩트체크(사실확인)'와 '인사이트 브리핑(핵심요약)' 기능도 준비 중이다. 전자는 기자가 기사 작성 중 특정 사안에서 헷갈릴 수 있는 '기간'이나 '수치' 등의 정확한 사실 확인을 돕고, 후자는 독자들을 위한 기능이다. 예컨대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특정 키워드로 검색할 때 기사 기반의 정보뿐 아니라, 외부 소스도 필요에 따라 활용해 독자가 특정 이슈를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보여줄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할 예정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언론사의 모든 콘텐츠 제작 환경을 SaaS 기반의 구독 모델로 구현하는 것이다. 연 대표는 "현재 대형 언론사들은 작게는 20억원부터, 많게는 100억원 이상을 차세대 시스템 전환에 투자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작은 매체들이 그만한 투자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우리의 다음 역할은 클라우드 기반으로 AI 기능을 비롯한 핵심 시스템을 여러 신문사가 구독 모델로 공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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