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보안진단]② '조'와 '억' 단위의 괴리, 덩치 싸움에 밀린 국산기업
왜 한국에서는 팔로알토네트웍스와 같은 글로벌 보안기업이 없을까? 대기업은커녕 기업가치 1조원을 넘는 사이버보안 유니콘 기업조차 전무한 실정이다. 전세계적으로 기술 발전과 함께 보안산업은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한국에선 제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하고 만년 유망주에 머무르는 국내 보안산업,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 <디지털데일리>는 특별기획을 통해 국내 보안산업 현주소를 진단한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김보민기자] 만년 유망주. 오랜 기간 국내 보안업계를 따라다니는 꼬리표다. 사이버 공격이 거세진 데다, 인공지능(AI)과 양자 등 차세대 기술이 주목을 받으면서 보안 시장 또한 성장 가도에 올라탈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졌지만, 국내 보안업계는 "여전히 영세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고전 중이다.<지난 기사 참조 [韓보안진단]① ‘돈줄’이 흘러야, 한국 보안산업이 산다>
반면 글로벌 기업들은 매출(각 회계연도 기준), 시장 점유율, 주식 가치 측면에서 '보안 업계 골리앗'으로 덩치를 키우고 있다. 인수·합병(M&A)을 가속화하는 기업도 늘어나면서, 국내와 해외 보안기업 간 덩치 차이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 글로벌 보안기업, '조' 단위 매출은 기본…적자에도 성장 가능성 인정
글로벌 시장에서 선두주자로 활약하고 있는 대표적인 보안 전문 기업은 팔로알토네트웍스다. 팔로알토네트웍스는 AI 기반 보안 및 네트워크 보안 플랫폼, 클라우드 보안, 방화벽 등에 특화된 기업으로 지난해 80억2800만달러(한화 약 11조6730억원) 영업이익은 6억8400만달러(약 9940억원)를 달성했다. 2023년 흑자로 돌아선 이래 성장세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네트워킹·보안 전문 기업 포티넷은 매출 59억5600만달러(약 8조6590만원)을 기록하며 9년 연속 성장세다.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약 54% 증가한 19억1000만달러(약 2조7770억원)다. 네트워크·클라우드 보안기업 체크포인트소프트웨어테크놀로지스는 2020년 이래 20억달러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25억6500만달러(3조7300억원), 영업이익은 8억7600만달러(1조2740억원)로 나타났다.
글로벌 보안산업은 성장가능성을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는 만큼, 기술력 있는 보안기업이라면 '적자'에도 미래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플랫폼 보안에 특화된 크라우드스트라이크는 지난해 적자를 나타냈다. 영업손실은 1억2000만달러(약 1740억원)로 적자규모는 전년보다 커졌지만, 클라우드 엔드포엔트탐지및대응(EDR) 솔루션 선두주자로 대표 유니콘 기업으로 떠오른 만큼, 미래 성장성을 인정받는 중이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과 유사한 39억5400만달러(약 5조7500억원)다.
이밖에도 지스케일러, 옥타, 데이터독 등 글로벌 보안 전문기업들은 조단위 매출을 기록하며 글로벌 성장세에 동참하고 있다.
반면, 국내 보안기업 중 단 한곳도 매출 1조원 벽을 넘지 못했다. 이번달 연간 공시를 마친 기업 중,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1000억원 선을 넘어선 곳은 안랩(2606억원), 윈스(1015억원)가 있다. 이외 기업들은 500억원 안팎을 기록했다.
◆ 유망주? 이미 잘 나간다…글로벌 주식 시장 관심↑
간극이 극명한 영역은 실적뿐만이 아니다. 주식 시장에서 국내와 해외 기업에 대한 투자 관심도 또한 차이가 나고 있다.
지난해 유의미한 실적을 낸 글로벌 기업들의 시가총액(이하 시총)을 살펴보면 ▲팔로알토네트웍스 170조원 ▲크라우드스트라이크홀딩스 120조원 ▲포티넷 104조원 ▲데이터독 49조원 ▲지스케일러 42조원 ▲체크포인트소프트웨어테크놀로지스 34조원 ▲옥타 26조원 규모다.
국내 보안 기업들은 시총 1조원선도 넘지 못했다. 국내 대표 보안기업 시총을 살펴보면 ▲안랩 8200억원 ▲아톤 1456억원 ▲윈스 1343억원 ▲라온시큐어 1118억원 ▲지니언스 983억원 ▲케이사인 570억원 ▲한싹 565억원 ▲파수 540억원 ▲파이오링크 524억원 ▲휴네시온 332억원 ▲SGA솔루션즈 280억원 ▲지란지교시큐리티 248억원 ▲소프트캠프 228억원 등이다.
이스라엘에 본사를 둔 보안기업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는 보안 종목에 대한 투자 가치를 높게 사는 분위기"라며 "비록 실적이 당장 좋지 않더라도, 브랜드 인지도를 고려했을 때 대형 고객사를 끌어들이기 용이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주식 시장에서는 보안에 특화된 전문 애널리스트조차 없고, 투자 여부 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컨센서스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다 보니, 국내 보안기업이 투자를 받기란 쉽지 않다. 일부 보안기업들은 상장 준비 때 보안 이미지를 노출시키지 않고, AI·반도체·양자 등 테마주에 묶이기를 희망하는 이유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상장한 ICTK는 준비 당시 '보안'보다 '팹리스'라는 키워드에 힘을 줬는데, 처음엔 반짝 주목을 받다가 이내 주가 하락세를 면하지 못했다.
◆정부에서 韓 유니콘 기업 육성하겠다 선언까지 했는데…
더군다나, 글로벌 보안 기업들은 M&A를 통해 사업 규모와 영역을 확장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시스코는 사이버보안 전문기업 스플렁크를 인수해 AI·보안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고, 포티넷은 클라우드네이티브애플리케이션보호플랫폼(CNAPP) 전문 레이스워크와 내부자 위험 및 데이터 보호 기업 '넥스트DLP' 등을 연달아 인수하며 보안 역량을 강화 중이다.
M&A로 보안업계 선두주자가 압축되고 있는 해외 시장과 달리, 국내는 인수 혹은 합병 대신 각자도생을 택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KISIA)가 공개한 '2024년 국내 정보보호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정보보호 기업 수는 1708개로 집계됐다. 2022년(1594개) 대비 7.2% 증가한 수치다.
규모를 갖춘 보안기업이 국내에서도 나타나야 한다는 데 보안업계 모두 동의하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현재 정보보안 시장 성장 동력이 없어, M&A를 통해 초대형 조단위 매출 보안기업 탄생이 꼭 필요하다"며 "그래야만 보안시장에 자본과 인재 유입으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정부도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3년 '정보보호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 전략'을 발표하며, 2027년까지 예산 1조1000억원을 투입해 시장 규모를 키우고 한국 사이버보안 유니콘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내건 바 있다. 14일엔 보안 유니콘 육성 차원에서 정보보호 기업 신기술 제품·서비스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총 100억원 규모 예산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유니콘 기업은 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요건을 갖춰야 한다.
국내 보안업계 관계자는 "(2023년에 이어) 이달에도 정부가 신기술 보안 제품 개발에 100억원 규모 예산을 투입해 유니콘 기업을 '본격' 육성하겠다고 했는데, 지원 폭 등을 고려했을 때, 실제 글로벌 유니콘과 규모의 경쟁이 가능한 업체가 탄생할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보안기업 관계자는 "체급을 높인 다음에 엑시트(exit)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목표 실적 달성까지 수년이 걸릴 것으로 본다"며 "(대부분 기업이) 아직 M&A를 논하기 어려운 단계"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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