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8년 사법리스크' 털어낸 이재용…반도체 정상화 첫 행보에 '쏠린 눈'

배태용 기자
이재용 회장이 3일 항소심 무죄 판결을 받은 직후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이재용 회장이 3일 항소심 무죄 판결을 받은 직후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디지털데일리 배태용 기자]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약 8년간 이어진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면서,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특히, 삼성의 핵심 사업인 반도체 부문이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이재용 회장의 첫 행보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8년 사법 리스크…경영 전면에 나서지 못했던 이재용 = 이재용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된 재판으로 2017년부터 본격적인 법적 공방에 휘말리면서, 삼성의 경영 전반을 직접 챙기는 것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었다. 2021년 가석방 후 경영 복귀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주요 재판이 진행되면서 의사결정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국정농단 사건뿐만 아니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재판까지 얽히면서, 삼성의 주요 투자나 M&A(인수합병) 등 굵직한 경영 판단이 미뤄지거나 신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됐다.

하지만 이번 재판을 끝으로 사실상 사법 리스크가 해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법원의 최종 판결과 함께 더 이상 주요 재판에 불려 다닐 이유가 사라지면서, 이재용 회장이 온전히 삼성의 미래 전략을 구상하고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은 지난 10년간 총수 부재 혹은 제한적인 경영 리더십 속에서 중요한 시기를 보내야 했다"라며 "이제는 이재용 회장이 명실상부한 총수로서 경영 전반을 주도하는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이재용 회장이 경영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시점에서,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최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부문은 SK하이닉스의 HBM(고대역폭 메모리) 선점으로 삼성전자의 시장 경쟁력이 약화한 상태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부문은 TSMC의 독주 속에서 점유율을 끌어올리지 못하며 난항을 겪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삼성 HBM3E에 남긴 사인. [ⓒ연합뉴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삼성 HBM3E에 남긴 사인. [ⓒ연합뉴스]

삼성전자는 최근 몇 년간 반도체 사업 부진으로 인해 감산과 투자 축소 등을 단행해야 했다. 하지만 AI 반도체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시점에서, 삼성전자가 다시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전략이 절실한 상황이다.

현재 메모리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HBM과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으로의 전환이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AI 서버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후발주자로 시장을 따라가는 상황이다.

◆ 실용적이면서도 필요 땐 과감한 투자 = 이재용 회장의 그동안 행보를 보면, 실용주의적 경영 방식을 선호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스타일을 보여왔다.

과거에도 반도체 슈퍼사이클 당시 공격적인 설비 투자로 삼성전자의 글로벌 점유율을 확대한 사례가 있다.

2016년 이후 삼성전자는 평택 반도체 공장(P1, P2) 건설에 약 30조원을 투자해 낸드플래시와 D램 생산 능력을 대폭 확대했다.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서 반도체 사업 강화 전략에 깊이 관여했으며,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대규모 투자를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AI 시대에 대응하는 전략적 투자 확대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이재용 회장이 본격적으로 경영을 주도하면서, HBM 투자와 생산 확대에 대한 결단이 빠르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화성 사업장. [ⓒ삼성전자]
삼성전자 화성 사업장. [ⓒ삼성전자]

특히, 삼성전자가 2016년 이후 대형 M&A(인수합병)를 단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영 참여와 함께 반도체 설계(IP) 기업 인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레거시 감산부터 인재 영입까지…"투자 방향 명확해질 것" = 메모리에선 기존 레거시 제품(구형 D램 및 낸드플래시) 감산을 가속화하고, HBM 중심의 메모리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작업이 더욱 강력하게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파운드리 부문에서는 대만 TSMC와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최대 과제다. 현재 삼성전자는 3나노 GAA(게이트 올 어라운드) 공정에서 수율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지만, 여전히 고객사의 신뢰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2나노 이하 선단 공정 투자 확대 및 파운드리 인재 영입이 주요 과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TSMC 출신 인재들이 글로벌 반도체 업체로 이동하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공격적인 인력 확보 전략을 추진할 수도 있다. 또한, 삼성전자가 2025년 가동 예정인 미국 텍사스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과 평택 P4 라인에 대한 추가 투자도 검토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재용 회장이 사법 리스크를 벗어나면서, 이제 삼성의 투자 방향성이 보다 명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재용 회장이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선 만큼, 메모리와 파운드리 모두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며 "특히, AI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의 전략이 어떻게 변화할지가 향후 반도체 산업의 판도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최근 몇 년간 보수적인 경영을 이어왔지만, 이제는 변화의 시점에 도달했다"며 "이재용 회장의 결단이 삼성반도체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배태용 기자
tybae@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