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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사랑의 매라면 빨리 맞게 해주세요”...정부·국회 바라보는 AI업계

오병훈 기자
[ⓒ챗GPT-4o가 생성한 이미지]
[ⓒ챗GPT-4o가 생성한 이미지]

[디지털데일리 오병훈기자] 학교 선생님들이 ‘사랑의 매’를 휘두르는 것이 일상이던 중학교 시절을 회상해보면, 가장 손 떨리는 순간은 매를 맞은 뒤 엉덩이가 부어오른 때가 아니었다. 선생님이 사랑의 가르침을 선사하기 위해 손을 높이 들어올린 찰나의 순간이었다. 간혹 선생님이 정확히 엉덩이를 조준하느라 멈칫할 때면 그 긴장감은 배가 됐다.

AI 기본법 구체화 작업이 한창인 현재, AI스타트업이 처한 상황과 똑 닮았다. 올바른 AI 산업 진흥을 돕겠다는 취지로 ‘규제의 매’를 든 정부의 손을 바라보고 있는 학생 위치에 있는 것이 AI 스타트업이다. 어디를 때릴지, 강하게 때릴지, 약하게 때릴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 그저 칠판을 붙잡은 채 긴장하며 높이 올라간 정부의 손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AI 기본법은 지난달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AI 기본법 하위법령 제정을 위해 ‘하위법령 정비단’을 출범하고, 킥오프 회의까지 진행했다. 정비단에는 산업계‧학계‧법조계 전문가들을 비롯해, 국가AI위원회 관계자들이 참여해 각계각층 의견을 수렴한 하위법령 제정에 착수할 예정이다.

정부와 국회에서는 AI 기본법 제정 당시 이 법안이 ‘진흥’에 초점이 맞춰진 진흥법이라는 점을 유난히 강조했다. 글로벌 AI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AI 산업 진흥의 중요성이 대두됐고, AI 산업 진흥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내려가고자 하는 그들의 야망은 간만의 여야·정부 합치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막상 AI 기본법 이야기가 처음 시작됐을 때부터 업계는 규제의 기운을 감지했다. 유럽연합(EU)의 ‘AI 액트’ 법안에서 착안된 ‘고위험AI’란 단어가 법안 정의 조항(2조)에 포함됐을 때, 고위험AI가 다시 ‘고영향AI’로 변경됐을 때, 과기정통부가 ‘사실조사’ 조항(40조)을 추가했을 때, 등등 불안함은 점차 커져갔다.

업계가 불안해하는 이유는 해당 단어가 부정적이기 때문도, 사실조사 자체가 두렵기 때문도 아니었다. 다소 포괄적인 법률 상 표현과 기준들이 향후 사업에 미칠 영향을 가늠할 수 없었던 탓이다. 어디까지가 ‘고영향AI’에 포함되는지, 사실조사 기준의 요건이 지나치게 느슨한 것은 아닌지 등 해석에 따라 그 범위가 오락가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불확실성 등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AI 스타트업의 불안함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규모가 있는 기업 입장에서는 AI 외에도 다양한 먹거리를 통해 활로를 찾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AI 서비스가 전부인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의 경우 규제 한번에 주력 사업이 크게 위축되는 등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와 국회에서도 재차 ‘최소한의 규제’ 기조를 강조하며 이들을 안심시키고 나섰다. AI 기본법은 진흥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로서 규제를 도입하겠다는 설명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세계 석학들이 앞다퉈 대형언어모델(LLM) 기반의 AI 모델이 가지는 위험성을 주지하는 와중에 아무런 규제 없이 모든 것을 허용할 수도 없는 노릇일 것이다.

업계에서도 일부 사항에 대해서는 규제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AI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통제 난이도도 어려워지고 있어, 잠재적인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미리 정부와 협의를 통해 적정 수준의 규제를 마련하는 것은 실질적인 안전 확보는 물론, 명분 측면에서도 이득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향후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AI 기업을 마냥 풀어준 것이 문제”라는 여론을 대비하는 차원이다.

기왕지사 AI 기본법이 통과되고 업계도 그에 맞춰 대비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 ‘규제의 매’를 맞기 전 업계의 핵심 요구 사항은 그 하위법령 구체화 시기를 최대한 앞당겨 달라는 것이다. 하위법령 제정 과정이 길어질 수록 기업이 불확실성을 떠안고 가야하는 시간도 길어지게 된다. 불확실성이 제거되기까지 시간이 길어질 수록 기업의 사업활동 위축 기간도 늘기 마련이다.

AI 스타트업에게는 그 기간이 길 수록 더 고역이다. AI 산업은 가장 트렌드 변화가 빠른 분야다. AI 스타트업들은 빠른 트렌드 변화에 대응해 기민하게 사업 확장·정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AI 기본법 하위법령 제정이 늦어질 수록 AI 스타트업의 개화 시기도 더욱 밀려날 뿐이다.

AI 서비스가 중요해진 이 시점, AI 산업 진흥을 위해서는 다양한 아이디어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는 스타트업의 활약은 시장 활성화를 위해 필수적이다. 정부에서도 산업 진흥 법안임을 공언한 만큼, 다채로운 AI 스타트업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임과 동시에 하위법령 구체화에 속도를 내야 할 때다.

오병훈 기자
digimon@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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