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나노 격전 발발…삼성전자, '첨단·레거시' 투 트랙 짠 이유는 [소부장반차장]
[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공정 선폭이 2나노미터(㎚)대로 진입하면서 이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한 파운드리 간 격전이 예상된다. 대만 TSMC가 기존 경쟁력을 바탕으로 높은 고객 수요를 선점한 가운데 삼성전자와 인텔, 일본 라피더스 등이 각축전을 벌일 전망이다.
다만 삼성전자는 2나노 GAA 공정을 예정대로 개발해 수율 안정화를 도모하되, 예년과 달리 기존 공정에 대한 성숙도 향상에 더욱 집중하는 투 트랙 전략을 추진한다. TSMC 추격을 위해 차세대 개발에 몰두하다 기존 수요마저 놓친 사례가 있는 만큼, 중국 업체 등의 TSMC 이탈에 따른 수혜를 우선 선점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내년 상반기 중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투자에 대한 속도를 낼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하반기 업황 둔화와 고객사 수주 저조에 따라 지연했던 투자를 재개하겠다는 의도다. 건물 공사가 대부분 완료된 1공장은 이르면 상반기 중 설비 반입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며, 2공장은 내년 하반기 착공을 시작해 2026년부터 설비가 반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확한 용처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주력인 4나노 공정과 차세대인 2나노 공정이 병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본격화될 SF4X 등 4나노 파생 공정을 확대해 기반을 다지면서도 2나노 진입 계획을 유지, TSMC 추격을 지속하겠다는 의도다. 삼성전자는 내년 상반기 2나노 공정 시험 생산을 위해 화성 사업장 S3에 생산설비를 도입할 계획을 세운 상태다.
◆ AI 열풍에 2나노 칩 격전지로…TSMC 추격전 양상
반도체 업계는 2나노 파운드리 공정이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 구도가 형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TSMC 등 주요 파운드리의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구조 전환이 이뤄지는 시기인 데다, 인공지능(AI) 본격화로 투자가 확대되는 하이퍼스케일, 온디바이스AI 칩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예정이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AI의 급속한 발전으로 GPU 등 반도체 칩 발전이 AI 모델 용량 증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고, 이에 따른 전력 소모량도 극심하게 늘어나고 있다"며 "이를 상쇄하기 위해서는 저전력·고성능을 구현하는 트랜지스터 집적도 향상과 첨단 패키징 적용 범위 확대가 병행돼야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본 정부 주도로 설립된 파운드리 라피더스는 2나노를 기반으로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 IBM으로부터 기술을 공여받았으며, 내년 2나노 시제품 생산에도 돌입하겠단 계획도 세웠다. 미국 인텔은 올해 말 도입하기로 했던 2나노급 공정(20A) 도입을 철회했으나, 1.8나노급 공정(18A)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통해 경쟁에 참여키로 했다.
삼성전자는 GAA 구조를 3나노 공정부터 도입해 온 만큼, 이를 통해 쌓은 역량을 2나노에 적용하겠다는 포부를 내걸었다. 올해 연말 취임한 한진만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 역시 최우선 과제로 2나노 공정의 빠른 대량양산체제 구축(Ramp-up)을 꼽기도 했다.
첨단 파운드리 선두주자인 TSMC는 4월부터 2나노 공정 시험 생산에 돌입해 하반기 양산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초기 시험 생산 수율은 60%대로, 이미 애플과 엔비디아 등과 2나노 생산을 위한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 이에 따라 3나노에서도 TSMC '1강' 체제가 유지될 것이 유력하며, '1중'으로 평가받는 삼성전자와 라피더스·인텔이 TSMC를 추격하는 양상이 벌어질 전망이다.
◆ 2나노·레거시 투트랙 짠 삼성, 더 큰 도약 노린다
삼성전자는 2나노 수율 안정화를 추진하는 한편 성숙(Legacy) 공정 사업 확대라는 목표도 함께 추진한다. TSMC 추격을 위해 첨단 공정 개발에만 집중해왔던 예년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이는 TSMC 대비 선제 도입을 실시하고도 역전하지 못했던 사례를 줄이고, 확실한 내실 다지기로 격차를 좁혀나가겠다는 전략의 변화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과거 7나노 공정 개발 당시 극자외선(EUV) 장비를 선제적으로 도입하는 전략을 취했다. EUV 도입 시 차기 공정 수준을 크게 앞당길 수 있는 만큼, 초미세공정에서 TSMC와의 격차를 벌려놓겠다는 목적에서였다. 하지만 높은 EUV 운용 난도와 안정화 지연으로 TSMC와의 격차는 오히려 벌어지게 됐다. 아울러 2022년 GAA 구조를 선제 도입한 3나노 공정에서도 같은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이를 끊어내기 위한 방안으로 레거시 집중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이를 의식하듯 한진만 사장도 임직원 메시지에서 "우리 사업부가 개발해 놓은 성숙 노드들의 사업화 확대를 위한 엔지니어링 활동에 힘써 달라"며 "성숙 노드 사업은 선단 노드의 사업화에 필요한 시간과 자원을 지원할 수 있는 중요한 사업"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레거시 사업을 이끌 것으로 기대받는 공정은 4나노, 7나노, 12나노 등이다. 이들 공정은 비교적 첨단 제품을 생산할 수 있으면서도 기술 성숙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최선단 AI칩이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제외한 영역에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레거시 부문은 TSMC가 지정학적 리스크로 중국향 매출 비중을 낮춘 것이 삼성전자의 반사이익으로 돌아오는 모양새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 범위를 넓히면서 TSMC가 7나노 등 중국 업체에 대한 AI칩 제조를 멈추게 되면서 삼성 파운드리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는 의미다. 중국 내에서는 SMIC 외 7나노 이하 대응 여력이 없어, 첨단 칩 수급을 위해서는 삼성 파운드리와의 협력이 필수불가결하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SMIC가 화웨이 AP에 대한 7나노 공정을 상용화한 바 있지만, 기술 성숙도나 성능을 고려했을 때 삼성 파운드리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며 "현재 삼성전자가 공식적으로 중국에 대한 수출 제한을 두지 않은 만큼 이를 잘 활용하는 것이 파운드리 사업을 확대할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변수는 원/달러 고환율 등을 유발한 비상계엄 사태 및 국내 탄핵 정국이다. 탄핵 정국이 빠르게 종식되지 않을 경우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협상력 약화, 지속적인 고환율에 따른 원재료 수입 원가 부담 등이 커질 수 있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미국 정부의 보조금 수령 확정으로 내년 투자 계획을 수립한 상태지만, 국내외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질 경우 이를 미룰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올해 멈췄던 파운드리 팹인 국내 평택캠퍼스 4라인(P4) 페이즈2의 경우도 자체적인 가동률 저하와 불확실한 정국으로 인해 용처 및 투자 시기 확정이 지연되고 있으며, 내년 준공 예정인 P4 페이즈4는 일부 계획이 논의되고 있으나 국제적인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신중하게 접근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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