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클로즈업] 엔씨, 전방위에 ‘박병무표’ 쇄신… 독립 스튜디오로 ‘색깔’ 바꾼다
[디지털데일리 문대찬기자] 올초부터 본격화된 엔씨소프트(이하 엔씨) 박병무 공동대표의 경영 쇄신 작업이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기존의 경영 효율화 임무를 넘어 개발 경쟁력 강화까지 추진하며, 회사 전반의 오랜 고민거리들을 해결하기 위한 행보를 이어가는 모양새다.
1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엔씨는 지난달 추가 구조조정을 본격화했다. 같은달 21일엔 임시 이사회를 열고 단순·물적 분할을 통해 4곳의 자회사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올해로 두 번째인 이번 구조조정은 대상이 본사 개발 직군까지 확대됐다. 근속기간 1년차 미만부터 15년 이상 직원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하기로 했다. 2012년 이후 12년 만이다. 당시 희망퇴직을 통해 약 400여명의 인력이 엔씨를 떠난 바 있다.
4곳의 자회사는 독립 스튜디오 3곳과 인공지능(AI) 기술 전문 기업 1곳으로 구성됐다. 개발 스튜디오는 스튜디오엑스·스튜디오와이·스튜디오지라는 가칭으로 출범한다. 각각 보유 IP(지식재산)인 ‘쓰론앤리버티(TL)’·‘LLL’·‘택탄’ 등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한다. 기존 AI 연구 개발 조직이었던 NC리서치는 엔씨에이아이(가칭)라는 이름으로 분사한다.
엔씨는 이에 앞서선 상반기 한 차례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금융비즈센터와 큐에이서비스, 응용소프트웨어개발공급 등 비핵심 사업도 접거나 본사와 분리했다.
이는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경영 효율화 작업의 일환이다. 작년을 기점으로 실적 악화가 심화하면서, 엔씨는 전문 경영인 출신의 박 공동대표 지휘 아래 쇄신 작업을 벌여왔다. 이중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조직을 효율화하는 것이 박 공동대표에 주어진 핵심 과제였다.
엔씨는 그간 경쟁사에 비해 인력 규모가 비대한 편이었다. 작년 등록된 인원만 5000명 이상이다. 1인당 평균 인건비는 약 1억4000만원이다. 올 상반기 매출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51.9%에 달한다. 작년 매출이 전년 대비 30.8%, 영업이익은 75.4% 감소하는 등 위기에 빠진 엔씨로선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핵심 사업에 집중할 필요성이 컸던 셈이다.
다만 이런 일련의 과정은 단순 비용 효율화 뿐 아니라, 게임 경쟁력 강화와도 무관한 일이다. 조직을 슬림화해 업계 트렌드에 기민한 대응이 가능하게 하고, 자율성을 보장하는 독립 스튜디오로 품질 높은 게임 개발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엔씨는 창립 이래 철저히 본사 주도 하에 게임을 개발해왔다. 단독 대표이자 회사 상징과도 같은 김택진 대표가 중심을 잡고, 긴 호흡으로 대작 게임을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 이는 ‘리니지’, ‘아이온’과 같은 명작 탄생으로 이어졌지만, 한편으론 다양성이 퇴색되는 결과를 낳았다. 본사 집중 구조상 의사 결정 과정이 복잡해, 업계 변화에도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엔씨는 작년부터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공개하며 변신을 꾀해왔다. 내년 공개를 목표로 개발 중인 레거시 IP 기반 대작 게임도 여럿이다. 하지만 여태처럼 본사 집중 개발 구조가 유지되는 한, 김 대표와 이성구 부사장을 비롯한 기존 개발 핵심들의 강한 입김으로 인해 새로운 게임들 역시 기존 색깔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냉소적인 시각이 잇따랐다.
상반기 엔씨가 야심차게 내놓은 작품들 역시 이러한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해 초기 흥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달 글로벌에 출시돼 성과를 낸 TL도 국내에선 줄곧 외면받았다.
해묵은 색깔을 바꾸기 위해선 자율성과 독립성을 존중하는 개발 문화를 정착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이는 단기간에 가능한 일은 아니다. 분사라는 물리적인 방식의 처방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신설된 자회사는 리니지 등 기존 IP가 아닌 신규 IP 개발을 맡는다. 이들을 통해 기존 색깔을 벗어난 글로벌향 차세대 게임을 발굴하겠다는 심산이다.
자회사 체제는 기존 색깔과는 다른 도전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넥슨 그룹 신규 IP 발굴 전초기지로 자리매김한 넥슨게임즈가 대표 사례다. 본사는 리니지 등 레거시 IP를 기반으로 한 게임 개발에 집중해 안정적인 수익 창출을 담당하고, 자회사는 새롭고 실험적인 IP 개발로 엔씨의 성장 동력을 확장해 나가는 이원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엔씨는 앞으로도 신규 IP 개발은 자회사 형태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더군다나 이번 엔씨 개발 자회사 수장들은 모두 회사의 중추 인물들이다. 자회사 성과에 따라 엔씨 내 입지도 달라지는 만큼 건전한 경쟁 구도 속 선순환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는 박 공동대표 행보에 적잖이 놀라는 모양새다. 경영 효율화에 매진할 것으로만 봤지, 회사 정체성을 흔드는 형태의 쇄신이 이뤄질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박 공동대표는 업계에서 소방수로 유명했다. 창립 후 줄곧 이어왔던 김택진 대표 중심의 색깔을 바꾸기 쉽지 않았을 텐데, 이를 과감히 실행한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한편 엔씨는 이번 분사를 통해 AI 기술력 경쟁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엔씨는 게임업계 AI 분야 선두주자로 통한다. 지난 2011년 게임업계 최초로 AI 전담 조직 AI센터를 꾸린 것을 시작으로, 2015년엔 게임사 최초로 생성형 AI 언어모델 연구조직 ‘NLP팀’을 신설했다. AI 연구 인력만 200여명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데, 국내 게임사 중 최대다.
엔씨는 실적 악화 속에서도 AI와 IT 분야 기술개발에 관한 투자를 늘려왔다. 작년 엔씨가 투입한 R&D 예산은 약 5679억원으로, 2022년(5600억원) 대비 올랐다. 이는 국내 주요 게임사로 분류되는 3N‧2K(넥슨·넷마블·엔씨·크래프톤·카카오게임즈) 중 가장 많다.
엔씨는 이를 바탕으로 업계 최초 언어모델(LLB) ‘바르코’를 출시하고, 최근엔 국내 최초로 LLM 성능과 수행능력을 검증하는 평가모델 ‘바르코 저지 LLM’과 한국어 성능을 강화한 튜닝 모델 라마 바르코를 공개하며 기술 혁신에 나서고 있다. 오는 11월에는 이미지, 텍스트 통합 멀티모달 LLM을 출시하며 관련 포트폴리오를 다각화 참이다.
엔씨는 AI 기술력을 게임 개발에 활용해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B2B(기업 대상) 사업으로 확대해 신성장 동력을 마련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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