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준비 마친 韓 AI 팹리스, 시험대 오른다…고객사 확보가 과제 [소부장반차장]
[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인공지능(AI) 가속기를 주력으로 개발하는 국내 반도체 팹리스들이 잇따라 주력 제품 양산에 돌입하면서 글로벌 시장 진입을 목전에 뒀다. 업계에서는 AI칩 시장 성장에 따라 관련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주요 빅테크 등 고객사를 빠르게 확보하느냐를 과제로 꼽는 모습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리벨리온은 AI가속기 칩인 '아톰(ATOM)'을 양산하고 고객사와 기술검증(PoC)에 돌입했다. 아톰은 5나노미터(㎚) 공정을 기반으로 제작된 서버용 AI칩으로 컴퓨터 비전과 자연어 처리 등 특정 영역에 특화됐다. 메모리는 그래픽DDR(GDDR)을 채택했으며, 최신 인터페이스 표준인 PCIe 5.0을 지원한다.
리벨리온은 아톰을 중동 시장에 공급하는 등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7월 2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은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기업 아람코로부터 관련 발주를 받았으며, 하반기 대량 수주를 위한 논의를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 시장이 미국의 첨단 칩 수출 규제와 보안상 이유로 미국 기업의 칩을 택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틈새시장을 공략한 것이다.
올해 연말에는 차세대 제품인 '리벨(REBEL)'이 양산될 예정이다. 리벨은 삼성전자 파운드리 4나노 공정과 2.5D 패키지인 아이큐브(I-Cube)를 기반으로 생산되며,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가 탑재된다. 전작 대비 대역폭이 늘어난 만큼 더 빠른 데이터 처리가 가능해 초거대언어모델(LLM) 등을 구축하는 데이터센터에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다른 AI칩 기업인 퓨리오사AI는 올해 2분기 양산한 2세대 칩 '레니게이드(RNGD)'의 본격적인 해외 판촉에 나섰다. 지난 26일(현지시간)에는 미국에서 열린 '핫 칩(Hot Chips 2024)' 컨퍼런스에 참가해 레니게이드의 성능과 라이브 데모 등을 공개하기도 했다. 레니게이드는 48GB의 HBM3를 탑재한 TCP 기반 AI가속기로 라마 3.1 등 LLM 추론을 실행하기 위해 제작된 칩이다.
온디바이스AI 영역을 주력으로 한 딥엑스도 1세대 칩 양산을 앞뒀다. 딥엑스는 비전·보안카메라에 특화된 AI칩 'DX-M1' 양산을 위해 삼성 파운드리 디자인솔루션파트너(DSP)인 가온칩스와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아직 관련 시장이 여물지 않은 만큼, 초기 시장에 진입해 성과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다. 딥엑스의 칩은 중국, 대만의 AI 영상처리장치(NVR)·공장 자동화·엣지 서버 등의 고객사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AI칩 팹리스의 주력 칩 양산이 다가오면서 글로벌 시장 생존을 위한 시험대에 본격적으로 오르게 됐다. 이들 기업의 주력 시장인 LLM 분야에서는 이미 엔비디아가 학습(Training) 영역에서 독점 체제를 굳힌 데다, 추론(Inference)용에서도 유사한 입지를 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이들이 진입할 추론 분야로 한정해도 AMD, 인텔, 세라브라스, 그록, 텐스토렌트 등 다양한 경쟁 기업과의 치열한 경쟁이 예고된 상황이다.
특히 업계에서는 국내 데이터센터 외 글로벌 고객사를 확보하는 것이 향후 경쟁의 핵심 요소라고 보고 있다. 국내 데이터센터 업계가 글로벌 대비 규모가 매우 작은 축에 속하는 데다, 매출 확보를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칩 수량을 확보할 수 있는 대규모 고객사를 노려야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칩 개발비용은 첨단 공정 활용 빈도에 따라 수백억에서 천억원대 이상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현재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도체 업계가 칩 신뢰성 등을 이유로 한번 채택한 제품을 쉽게 바꾸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적기 시장 진입에 실패 시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워서다. 특히 양산이 된 시점에 매출을 확보하지 못하면, 까다로워진 기업공개(IPO) 요건을 맞추지 못해 연구개발(R&D) 재원을 확보하지 못할 수 있따다는 관측도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국내 AI 팹리스가 본격적인 양산에 돌입하며 기대감을 키우고 있지만 시장 상황은 경쟁과 비우호적 환경 등으로 악화되는 상황"이라며 "시장이 아직 형성 초기인 만큼, 조기 진입을 통한 단기적인 성과가 있어야 인수·합병(M&A) 여력을 확보하거나 성장세를 타는 등의 기반을 다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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