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뜨거운 쇳물도 걱정 없어요”…AI로 안전 높이는 포스코 포항제철소
[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어제보다는 오늘 더 안전하게”
경북 포항시에 위치한 국내 최대 철강 생산 공장 중 하나인 포스코 포항제철소. 이곳에는 여러 공장 외벽마다 ‘안전’을 당부한 다양한 메시지들을 곳곳에 써 붙여 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수십톤 수천도씨의 무겁고 뜨거운 철강재와 제품들을 다뤄야 하는 이곳에선 현장 작업자의 안전이 최우선 과제일 수밖에 없다.
사람이 일하는 공장은 언제든지 휴먼에러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100% 안전한 환경을 보장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포항제철소는 포스코그룹의 IT 시스템을 담당하는 포스코DX와 협력해 최근 이곳의 산업용 인공지능(AI)과 디지털전환(DX) 프로세스를 고도화하고 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안전한’ 작업 환경을 만들어내기 위함이다.
지난 22일 기자가 방문한 포항제철소 4연주공장은 뜨거운 쇳물로 철강재 반제품 ‘슬라브’를 만드는 곳이다. 고로(용광로)에서 나온 쇳물을 일정 형상의 주형에 주입해 반응고시킨 ‘주편’을 균일하게 잘라 슬라브를 만드는데, 이를 ‘연주’ 공정이라 한다. 슬라브는 이후 열연·냉연 등의 압연 공정까지 거쳐 철강 제품으로 탄생한다.
갓 생산된 슬라브는 무게가 약 30톤, 평균온도가 1000℃에 달한다. 슬라브들은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이동하게 되는데, 이때 슬라브가 정상 각도를 벗어나 삐뚤어진 상태가 되는 것을 ‘사행(蛇行)’이라고 부른다. 슬라브가 사행이 되면 근처 설비와 부딪혀 자칫 연주공장 전체가 멈출 수 있고, 복구 과정에서 작업자가 화상을 입을 수 있다.
이에 포항제철소는 슬라브가 이동하는 컨베이어벨트를 상시 감시하는 AI 기반 스마트 CCTV를 도입했다. AI가 슬라브의 형상과 각도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면서 사행이 발생하거나 사행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운전자에게 알림을 보내거나 AI 스스로 라인을 자체 중단시키는 공정제어 역할까지 수행한다.
현장에서 만난 박중해 포스코 생산기술부 생산시스템섹션 과장은 “쇳물로 주편을 만든 다음 양쪽에서 두 개의 토치가 불꽃을 가해 자르면 슬라브가 되는데, 이때 이물질이 있거나 제대로 절단되지 않으면 사행이 발생한다”며 “AI는 불꽃 감지 시스템과 롤 회전 스피드에 따른 시뮬레이션 등으로 사행 발생 가능성까지 예측한다”고 설명했다.
AI 도입 전에는 사람이 하루종일 감시 모니터를 주시하면서 사행이 발생하진 않는지 지켜봐야 했던 일이다. 실제 연주운전실에서 업무 중이던 한 조업 담당자는 “사행이 발생했을 때 즉각 조치하지 않으면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작업 난이도가 높았는데, 이제 AI로 사행 감지가 되니 조업자 입장에선 마음이 놓인다”로 전했다.
4연주공장은 하루 400매의 슬라브가 생산되고 있지만 AI 기반 스마트 CCTV 도입 후 지금까지 사행 사고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박 과장은 “AI가 사행 가능성까지 예측하는 만큼 과거보다 라인 중단 건수 자체는 더 늘어났는데, 전체 생산 라인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생산성이 떨어지진 않는다”고 언급했다.
제품 검수 작업도 AI가 해내고 있다. 일례로 코일 형태의 열간 압연된 강재 제품인 ‘선재’는 제품 정보를 담은 라벨을 붙인 채 고객사로 출하되는데, 이때 생산 정보와 현품 정보의 일치 여부가 확인돼야 한다. 원래는 사람이 일일이 생산관리시스템(MES) 송장정보와 제품라벨을 육안으로 대조해야 했다면, 이제는 AI가 그 일을 한다.
포항제철소는 포스코DX와 함께 올해 7월부터 스마트 CCTV의 제품라벨 탐지 및 문자인식 AI 기술을 융합해 검수 작업을 자동화했다. AI가 12대의 CCTV 카메라를 직접 제어해 라벨 위치를 인식 후 MES 데이터를 불러와 비교 검수하는 방식이다.
실제 컨테이너로 만든 현장의 CCTV 관제실에는 총 7대의 모니터만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AI가 일차적으로 라벨 위치를 찾지 못한 경우 CCTV를 제어해 카메라 각도를 조정하고 줌인해 라벨 위치를 추적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장의 이진교 포스코 생산기술부 제품출하섹션 사원은 “과거에는 간혹 코일이 돌아가 있어 라벨이 안 보이는 경우에 코일 위에 사람이 올라가 라벨을 직접 찾아봐야 했는데 자칫 안전상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며 “지금은 AI로 안전하게 차량 한 대당 1~2분 내 검수를 완료할 수 있고 휴먼에러도 제로화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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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쇳물을 나르는 운송기관차의 안전도 AI가 책임지고 있다. 포항제철소는 용광로에서 제강공장까지 쇳물을 운반하는 기관차가 30여대에 건널목만 55곳이나 된다. 쇳물을 담은 기관차는 시속 10km 수준으로 저속 운행되긴 하지만, 무게가 1000톤에 이르기 때문에 급브레이크를 밟아도 제동거리가 100m에 달한다.
이에 포항제철소는 포스코DX와 함께 철도 건널목 비전(Vision) AI 솔루션을 개발했다. 차단기가 내려가기 전에 실수로 철도 건널목에 진입해버린 작업자나 작업차량이 발생했을 때, CCTV 영상을 모니터링하는 AI가 위험요소를 분석해 위험하다고 판단될 경우 기관차 운전자에게 사전 알람을 고지하는 방식이다.
해안지역 특성상 안개가 자주 발생해 CCTV 영상의 시야확보가 어려운 경우도 있는데, 포스텍과 함께 개발한 ‘CCTV 안개·먼지 제거 기술’을 기반으로 악천후 상황에서도 선명한 CCTV 영상품질을 확보했다. 박지윤 포스코 생산기술부 구내운송섹션 사원은 “이제는 AI 자체 기술이 좋아져 안개 제거 기술이 필요 없을 정도”라고 전했다.
이처럼 포항제철소는 포스코DX와 협력해 제철소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AI를 활용하고 있다. 위험한 현장의 작업이나 사람이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은 AI로 대체해 안전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중이다. 올해 초 AI기술센터를 신설한 포스코DX는 제철소와 이차전지 소재공장 등 산업현장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기술을 적용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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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용 포스코DX AI기술센터장은 “그동안엔 서비스형 AI 기술들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면, 이제 효율화·자율화·무인화 등 산업현장의 요구사항을 해결하기 위한 산업용 AI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라며 “산업용 AI야말로 사람의 숙련도 편차로 제품의 질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고 실질적 재무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포스코 측은 “국내 제조업 최초로 스마트팩토리 개념을 도입해 거의 대부분의 공정을 자동화했지만, 사람 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던 작업들이 여전히 존재해 왔다”며 “AI, 로봇, 디지털트윈 등 DX 기술을 접목해 생산성과 현장 안전성을 한층 더 끌어올리는 인텔리전트 팩토리 구현에 나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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