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전세계 최초, 유통업체 상품 노출 순서 규제? “공정위 NO·쿠팡 YES”
[디지털데일리 왕진화 기자]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13일 쿠팡 및 씨피엘비의 위계에 의한 고객 유인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400억원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쿠팡은 공정위가 문제삼은 부분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먼저 공정위의 주장처럼 오프라인 매장의 진열과 달리 온라인 쇼핑몰의 상품 노출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정위 측은 이에 대해 온라인 플랫폼이자 상품 판매자로서의 이중적 지위를 가진 사업자가 자기 상품을 중개상품보다 검색순위에서 우선 노출한 행위를 제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 등 오프라인 매장은 통상 자기 상품(직매입상품+PB상품) 만을 판매하고 있기에, 상품 진열을 통해 판매 상품의 구성이나 비율이 달라질 수는 있어도 경쟁 사업자의 고객을 유인하는 경우는 발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쿠팡은 이중적 지위 여부가 이 사건의 쟁점과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실제 공정위는 이중적 지위와 무관한 사업자들에 대해 소비자 오인성만을 고려해 제재해 왔다는 설명이다. 이는 부킹닷컴, 아고다, 챔프스터디 등 다수 사업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커머스에서의 검색은 고객의 니즈에 맞는 제품을 ‘추천’해주는 것이다. 쿠팡이 공개한 이상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의 전문가 의견서에 따르면, “커머스에서의 상품 검색 시스템은 검색어로 표현된 고객의 쇼핑 니즈를 해결해주는 추천의 맥락에서 구현되는 것이 타당할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실제 오프라인 편의점, 대형마트 등은 PB상품을 이른바 골든존(170㎝ 이하 매대) 눈높이에 배치해 매출을 크게 늘리고 있다는 점에서 대조적이기도 하다. 대형 화장품 매장이나 대형마트는 PB상품 매출 목표치를 바탕으로, 상품 진열 매뉴얼을 시도해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구매하는 골든존에 PB상품을 배치한다.
즉, 입구부터 주요 식료품, 공산품 카테고리마다 자사 PB상품을 배치하는 셈이다. 이를 통해 매출이 최소 30~40%에서 4배가 늘어난다는 유통업계 분석도 많다.
쿠팡에 따르면, 자사의 PB상품 비중은 전체 매출의 5%(지난해 기준)로, 20~30%에 이르는 국내 오프라인 유통업체와 비교해 최하위 수준이다. 주요 편의점과 할인매장은 최근 수년간 PB상품을 대대적으로 늘려왔으며 소비자들의 구매가 많이 일어나는 골든존에 배치한다.
여기에 대해 학계 등은 그동안 공정위의 쿠팡 조사가 상식적이지 않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소비자 기만 피해가 뚜렷하지 않을 경우 PB상품의 상단 배치가 어려워지면서 값싼 가성비 제품을 빨리 사려는 소비자 불만이 커질 것”이라며 “아직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 경쟁당국이 PB상품 진열 순서를 규제한 선례가 없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 역시 “고객에게 잘 보이는 곳에 PB상품을 진열하면 마케팅 비용이 줄어드는데 이를 금지하면 고물가 억제를 하는 PB상품 역할이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이선희 성균관대 교수는 “대형마트에 가면 입구쪽 매대에 PB 브랜드 상품이 빼곡하게 자리잡고 있고, 소비자들도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다”며 “오프라인 대형마트 등과 형평성이 어긋나는데다 글로벌 시장 규제 흐름에 역행한다”고 역설했다.
◆ 유통업체의 상품 노출 순서, 세계 최초 경쟁법 위반일까
이같은 지적에 대해 공정위는 쿠팡에 대한 이번 조치가 세계 최초이고 유일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해외 경쟁당국도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상품 노출과 관련한 불공정 행위를 적발, 제재하는 추세라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예컨대 EU 경쟁당국은 아마존이 자기 상품(직매입상품 및 PB상품)을 바이박스(BuyBox)에 우선 노출한 행위를 동의의결을 통해 시정하도록 했다. 또한, 미국 경쟁당국(FTC)과 17개 주가 지난해 9월 아마존을 대상으로 제기한 반독점 소송 내용에는 다른 온라인 플랫폼에서 더 낮은 가격에 판매되는 상품을 검색결과 하단에 배치하는 행위가 포함돼 있다.
다만 쿠팡은 공정위가 쟁점이 다른 사건을 마치 동일 사건인 것처럼 연관 짓고 있다고 주장한다. 해외 경쟁당국(EU, 미국)에서 아마존을 제재한 사례는 ‘상품노출’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서 비롯된다. 검색랭킹 상품 진열 순서에 대한 규제가 아닌 점을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쿠팡은 이번 조치는 전세계 유례 없는 유통업체의 상품 노출 순서에 대한 조치라고 강조하고 있다. EU 동의의결에서 아마존 바이박스 경우 상품 검색 결과에서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하면 그 다음 단계에서 나오는 해당 상품에 대한 상세페이지 단계에서 문제일 뿐, 상품 노출순서인 상품 검색 결과를 문제 삼은 사안이 아니어서다.
◆ 타 온라인 플랫폼도 PB상품을 상단에 노출하거나 임직원이 구매 후기를 작성하나
공정위는 온라인 쇼핑 시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할 예정이라는 입장이다. 쿠팡과 같이 심판이자 선수로의 이중적 지위를 남용해 불공정하게 소비자를 유인하고, 경쟁사업자를 배제한 혐의가 발견될 시에는 법위반 여부를 조사할 예정이다.
다만, 공정위는 국내외 주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 중 쿠팡과 같이 임직원으로 하여금 자기 상품에만 구매후기를 작성하도록 한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쿠팡은 그러나 임직원 후기에 대해서만 거래관행을 조사하고, PB 상품 우대에 대해서는 거래관행에 대한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실제로 마켓컬리, 배달의민족, 쓱닷컴, 롯데 등 PB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수많은 이커머스들은 ‘물티슈’ ‘만두’ ‘생수’ ‘계란’ 같은 키워드를 입력하면 기본 추천 순으로 PB상품이 상단 노출되고 있다.
PB상품을 판매하는 유통업체들이 많고, 이들이 판매하는 상품 수백가지 이상은 온라인에서 상단 노출되는 것이 일상이다.
예를 들어 A업체는 고객 니즈에 부합하는 새벽배송 상품 중심으로 노출하고, B업체는 고객 로열티가 높은 PB브랜드 중심으로 검색 순위 상단에 제품을 노출한다. 결국, 쿠팡과 비슷한 방식의 상품 진열 방식을 도입한 곳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공정위의 이번 규제는 형평성에 어긋나며 법리에도 반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쿠팡은 이번 공정위 제재에 대해 쿠팡 내 입점업체의 매출이 성장한 사실을 부인하지 못했으며 경쟁업체가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밝히지도 못했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공정위가 PB 매출이 오르면 오픈마켓 매출이 감소하는 ‘트레이드오프’ 관계로 왜곡했다고 반박했다.
무엇보다 중개상품(3P) 입점업체는 쿠팡에서만 장사하는 게 아니다. 디지털경제포럼 조사에 따르면, 판매자의 71.5%는 평균 4.9개의 쇼핑몰에 입점해 있고, 쿠팡에서만 직매입하는 로켓배송과 PB상품과 달리 만약 3P 사업자가 불리한 처분을 받으면 다른 곳에서 팔 수 있는데 그렇지 않고 있다는 점도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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