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레벨업] ④ 엔씨 “전문가만 모인 AI 조직… ‘바르코’로 개발 경쟁력 높여요”
최근 몇 년 사이 이뤄진 인공지능(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전 세계 산업군 전반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예부터 AI 기술을 들여다봤던 게임업계도 앞다퉈 AI 기술 연구 및 관련 사업을 확장하며 레벨 업(Level Up)을 노리는 모습이다. AI를 이용해 업무 효율화를 꾀하는 것에서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처럼 생각하는 NPC(논플레이어블캐릭터) 개발 등 혁신을 꿈꾸고 있다. 게임업계의 AI 동행기를 디지털데일리가 소개한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문대찬기자] “대표님이 AI(인공지능)와 게임의 시너지를 예부터 매우 높이 생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게임은 여러 복잡한 시스템이 들어간 하나의 세상이다. AI가 필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구조다. 이런 가치를 먼저 내다보고 일찍부터 투자를 한 거라고 생각한다.”
엔씨소프트(이하 엔씨)는 국내 게임사 AI 개발 분야 선두주자로 통한다. 2011년부터 AI 전담 조직을 출범해 관련 기술을 연구·개발해왔다. 2015년에는 국내 게임사 최초로 생성형 언어모델 연구 조직인 NLP팀을 신설했다. 관련 인력 규모만 약 300여명에 달한다.
엔씨는 최근 AI센터와 NLP(자연어처리) 센터로 양분돼있던 AI 연구·개발(R&D) 조직을 대표 직속 리서치 본부로 통합했다. 게임 AI와 가상인간 등을 연구한 AI센터는 AI테크센터로, ‘바르코(VARCO)’ 등 언어모델 개발을 담당한 NLP 센터는 바르코센터로 재편해 본부 산하로 편제했다.
대내외적 환경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AI 기술 개발은 지속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읽힌다. 지난 8일 판교에서 만난 엔씨 김진선 바르코 서비스실 실장은 “요즘엔 AI 비전과 NLP 개발을 따로 하지 않고, 멀티모달(텍스트·이미지·음성 등 여러 종류의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AI 기술) 쪽으로 연구 하는 등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 조직 개편은 최근의 AI 개발 트렌드가 반영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엔 AI 기술이 발전하던 시점이라 각 분야에 집중을 해서 키워가는 분위기였다. 목표에 맞춰 집중을 하는 나름의 장점은 있었다”면서도 “원활한 정보·영감 교류가 힘든 면이 있었는데, 이젠 각각 쌓은 전문성을 결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AI가 미래 먹거리로 대두하면서, 현재 국내 게임업계에선 엔씨 외에도 크래프톤과 넥슨 등 대형 게임사들이 앞다퉈 관련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넥슨이 운영하는 AI 조직 인텔리전스랩스의 경우 관련 개발 인력이 약 600여명으로 규모만으로는 엔씨 AI 조직을 넘어선다.
김 실장은 비교를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엔씨 AI 기술에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엔씨는 AI 기술 전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있다. NLP며 영상, 음성, 그래픽, 하물며 데이터 사이언스까지 전 분야를 전문가들이 담당하고 있다”면서 “글로벌 톱(Top) 티어 저널에 논문을 싣고 매년 특허도 꾸준히 내는 등 톱 수준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게임 데이터 쪽과 결합해 많은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상용화하는 노하우는 확실하 타사 게임사보단 높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엔씨 AI 기술의 독보성을 잘 보여주는 결과물은 바르코와 디지털 휴먼이다. 엔씨는 지난해 8월 국내 게임사 최초로 자체 언어모델인 바르코를 개발해 공개했다. 해당 모델은 개발 초기 단계부터 엔씨가 직접 선별한 고품질 데이터 위주로 학습해, 사용자가 쉽고 편리하게 비즈니스에 활용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현재 엔씨는 이미지 생성툴(바르코 아트), 텍스트 생성 및 관리툴(바르코 텍스트) 디지털휴먼 생성 및 편집·운영툴(VARCO 휴먼)로 구성된 AI 창작 도구인 ‘바르코 스튜디오’를 운영 중이다. 게임 실무자의 프로토타이핑을 위해 사용자 경험(UX) 측면에서 편의성을 제공하는 ‘바르코 서비스’도 있다.
김 실장은 “바르코 스튜디오는 지금 내부적으로 엔씨 주요 게임 프로젝트와 협업을 하고 있다. 예컨대 게임 내 미션이나 캐릭터 아이템을 생성한다고 하면 디테일이 살아 있어야 하는데, 너무 많다 보니 시간과 노동이 많이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바르코 스튜디오와 같은 창작 도구를 활용하면 퀄리티가 있는 콘텐츠를 단시간에 만들어줄 수 있다. 연내엔 바르코 오디오와 바르코 그래픽스를 추가로 론칭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내부 평가는 만족스럽다. 특히 보안에서의 강점을 높이 평가 받았다는 게 김 실장 설명이다. 그는 “자체 AI 도구를 사용할 때의 장점 중 하나는 보안이다. 게임 개발 대부분은 대외비다. 챗GPT 등을 사용하면 정보 유출 우려가 있는데, 그런 부담이 없어 좋다는 내부 피드백도 있었다”고 밝혔다.
물론 다듬어야 할 부분도 적잖다. 대표적인 것이 AI가 생성하는 이미지나 텍스트의 이질적인 완성도 문제다. 김 실장은 “그런 한계에 많이 부딪히고 있다. 클레임도 많이 있다”면서 “완벽하게 모든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말을 하기는 어렵다”고 인정했다.
그는 “도구를 활용한 개발자들의 피드백을 계속 듣고 있다. 게임 데이터를 연동해 실질적으로 게임에서 쓰는 용어를 기반으로 텍스트를 생성하게 한다든지, 아트에선 어떤 기술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며 “게임에 필요한 니즈들을 토대로 모델을 수정하면서 게임에 특화된 AI로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엔씨는 바르코 스튜디오 사내 적용을 거쳐 외부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김 실장은 “(바르코가) 오픈AI나 구글 등 빅테크 기업이 개발한 생성 AI보다 성능이 우수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면서도 “동일한 사이즈 기준으로 보면 충분히 뛰어나다. 실제 여러 정성 평가를 거쳤을 때 우수한 결과물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형 언어모델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기업이 사용할 때는 수반하는 인프라도 갖춰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면서 “마냥 큰 것 보다는 적합한 크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내 데이터로 학습한 바르코는 분명한 수요가 있는 모델이다”라고 자신했다.
이어 “게임 쪽 데이터를 학습에 많이 활용해서인지 창의적인 내러티브나 텍스트가 많이 생성된다. 특히 게임 쪽에서 선호하는 풍의 일러스트 디테일을 잘 살려준다. 바르코가 교과서적인 결과보다는 요즘 트렌드에 맞는 튀는 소재를 원할 때 사용하는 모델이라는 이미지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엔씨는 지난해 7월 항공기상청과 생성 AI 기술을 활용한 항공 기상 정보를 제작하기로 했다. AI 교육 서비스 기업 튜터러스랩스와 ‘디지털 교과서의 AI 맞춤형 학습 서비스 제공’ 개발을 목표로 업무협약도 체결하는 등 외부로 기술 접점을 넓히고 있다.
김 실장은 “외부 업체들이 엔씨에 대해 ‘실질적인 결과물을 내는 곳’이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보통은 업무협약만 맺고 이후 진척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엔씨는 서비스 경험이 많다 보니 결과물까지 본다”면서 “서비스 게임도 있다 보니 엔씨가 실제 데이터나 경험이 많다는 이미지들이 업체 사이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내 활용을 거쳐 충분히 크리에이티브하다는 검증이 된다면, 나가서는 당연히 반응이 좋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면서 “외부 조사도 해본 적이 있는데 엔씨가 만들었으니 창의적이고 트렌드할 것이라는 기대를 많이 하더라”고 귀띔했다.
엔씨는 지난해 'GDC 2023'에서 김택진 대표를 모델로 한 디지털 휴먼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디지털 휴먼은 AI 기술의 집약체로, 엔씨 관련 기술 우수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디지털 휴먼은 게임 내에서 인간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논플레이어블(NPC) 캐릭터 생성을 가능케 하는 등, 게임산업 혁신이 될 기술로 점쳐진다.
당초 엔씨는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차세대 디지털 휴먼을 올해 초 공개할 예정이었지만 불가피하게 데뷔일을 미뤘다. 올해 전사적으로 신규 지식재산(IP) 발굴이라는 과제가 주어진 만큼, 개발에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바르코 서비스 고도화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김 실장은 “디지털 휴먼은 시장성과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장기적인 과제로 둔 상태”라며 “올해는 회사가 IP 포트폴리오 발굴이나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바르코 등으로 사업 전략을 지원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만 김 실장은 “디지털 휴먼은 AI 기술 개별 요소가 다 합쳐진 것이다. 데뷔일을 미룬다고 해서 AI 기술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라면서 “투입된 기술을 활용해 게임에 먼저 적용하고, 이후 대내외 상황을 봐서 디지털 휴먼 공개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 실장은 생성 AI가 게임산업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주로 언급되는 비용 절감의 이점보다는 게임의 경쟁력이나 품질을 끌어 올리는 데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게임 제작 파이프라인을 들여다 보면, 상당한 고차원의 창작 세계다. 일관성을 갖고 연관이 돼있어야 하고, 디테일도 살아 있어야 한다”며 “생성 AI가 있으면 일의 효율을 높이면서 창의적인 고민을 할 수 있게 된다. 향후엔 AI가 일자리를 빼앗는 개념이 아니라 가치 있는 고민의 시간을 주는 조력자의 개념으로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게임산업의 경우 프로젝트 기간을 단축시키고 다양화 할 수 있다. 100명이 3년 걸려서 하나 만드는 걸, 1년에 1개씩 만들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기획 파트에도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인력이나 비용을 줄인다는 접근과는 분명 다르다”라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또 “중국이 현재 게임 개발을 할 때 2~3교대를 돌리고 있다. 이들의 자본력과 노동력을 따라가긴 현실적으로 힘들다. 그러나 AI를 이용한 개발이 일상화되면 중국 업체와의 노동력 싸움에서도 크게 뒤처지지 않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게임의 한계 재미도 달라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실장은 “생성형 AI를 적용하면 상황을 유연하게 전환하기 쉽다. 게임 환경이나 스토리를 자유롭게 변화시킬 수 있다. 선택지에 따라 다양하고 새로운 방향이 도출되는 것”면서 “예전에는 한 번 깨고 하지 않을 게임도 여러 번 손이 가게 만들 수 있다. 게임 경험이 보다 풍부해질 것이다”라고 전했다.
김 실장은 나아가 게임업계가 AI 시대에서 나름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내다봤다. 미디어 업계가 업계 AI 기술을 활용해 영상을 만들고, 트렌디한 게임 의상 리소스를 패션 업계에서 활용하거나 게임 내 서사나 세계관을 웹툰·웹소설 업계가 차용하는 식이다.
올해 엔씨 AI 조직 내 과제는 사내 개발 과정에 대한 영향력 확대다. 김 실장은 “올해는 사내 게임에 실질적으로 어떤 기여를 했고 도움이 됐는지를 증명해 보이고 싶다”며 “사내 업무를 중심으로 단계별로 방점을 찍으면서, 실제 서비스로 만들어 점점 외부 산업까지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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