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 40년] ⑩ 'SKT-신세기' 합병…또 한번 가시밭길
전세계 내노라 하는 이동통신사들이 총출동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모바일월드콩글레스(MWC)에서 올해도 SK텔레콤은 메인홀 중심에서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을 글로벌에 전파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이한 SK텔레콤은 국내 1위 이통사를 넘어, AI 컴퍼니로 또 다른 패러다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과거 40년을 조망해보고 미래 ICT 개척자로서 SK텔레콤의 비전을 살펴봅니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김문기기자] 국내 경제상황이 엄중했던 1990년대말. 한국통신프리텔에게 2위 자리를 뺏긴 신세기통신은 바람앞에 등불처럼 어지러웠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신세기통신의 코오롱 지분을 차지하기 위해 영국 보다폰 아이터치(ATI)가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1대 주주인 포항제철이 버티고 있었지만 쉽지 않은 상황까지 치달았다. 자칫하면 국내 이통사를 해외 사업자에게 뺏길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 12월 17일 반전이 일어났다. 언론을 통해 SK텔레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신세기통신 인수 추진을 알리고 공정거래법 저촉 여부를 문의한 사실이 드러났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SK텔레콤은 더 이상 숨지 않았다.
SK 50년사에 따르면 손길승 SK그룹 회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신세기통신과 제휴할 것인가에 대해 이견이 있었음을 확인시켜 줬다. 다만 그는 “앞으로 통신사업의 구조조정이 일어나면 1등만 살아남기 때문에 우리가 1등이 되려면 어떠한 난관이 있어도 합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도 합병할 필요는 없다며 안된다고 하는 의견이 많았다. 결국 손익계산을 해보니까 내 얘기가 맞았다. 그래서 내가 시행할 테니 맡기라고 했다. 그렇게 반대의견을 잠재우고 난 뒤에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어 전광석화같이 일을 시행했다”라고 회고했다.
빠르게 진행되는 인수합병
SK텔레콤도 기업의 목적이 이윤추구이기에 합병에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우선 통신망 통합을 통해 비용절감에 나설 수 있었고, 중복투자도 막을 수 있었다.
신세기통신이 보유하고 있는 537개 대리점을 통해 더 많은 고객 접점을 단시간 내 구축할 수 있다. 1999년 전속대리점의 경우 SK텔레콤은 1천300곳, 신세기통신은 537곳이 포진해 있었다. 한국통신프리텔이 1천72곳, LG텔레콤 825곳, 한솔PCS(당시 한솔엠닷컴)는 77곳이 위치해 있었으니 규모를 더 키울 수 있었다.
규모가 커진다는 것은 제조업체와의 협상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단말수급량을 늘린다는 의미는 곧 단말의 가격인하를 유도할 수 있어서다.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은 800MHz 주파수 대역에서 CDMA 방식의 이동통신 사업을 하는 유일한 사업자였다. 주파수 적체현상을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통화품질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이동통신 시장 점유율을 빼놓을 수 없다. 통신사업 특성상 가입자 규모는 곧 기업의 매출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표지였다. 단숨에 1천300만 명이라는 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였다. SK텔레콤의 당시 점유율은 43.2%, 신세기통신 14%로 시장 절반 이상의 점유율 확보가 가능했다.
계산기를 내려 놓은 SK텔레콤은 손길승 회장의 발언대로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12월 20일 손길승 SK그룹 회장과 유상부 포철 회장은 포스코센터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지분 교환을 내용으로 한 전략적 제휴를 발표했다. 포철의 신세기통신 지분 전량인 27.66%와 SK텔레콤 지분 6.5%를 맞교환했다. 코오롱은 23.53% 지분을 매각해 1조 원 이상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같은 달 23일 SK텔레콤은 공정거래위원회에 신세기통신 지분 51.19%를 기존 대주주인 포스코와 코오롱으로부터 인수한다는 내용의 기업결합 신고서를 제출했다.
들불같이 일어난 경쟁사 '긴장'
SK텔레콤의 발 빠른 대응에 PCS 3사 역시 전열을 가다듬었다. 공정거래법 저촉 여부를 적극 검토하는 한편, 법적 대응도 불사했다.
당시 전윤철 공정위원장과 남궁석 정보통신부 장관 역시 난감했다. 과당경쟁으로 인한 중복투자 문제가 인수위 때부터 불거졌고, 그에 따라 통신사업 구조조정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 민간이 먼저 자율적으로 인수합병을 하겠다고 나선 걸 말리기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과반을 넘는 SK텔레콤의 지배력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공정위 기업결합 절차상 정통부 의견이 필요했다. 정통부는 2000년 2월 11일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 관련 첫 공식 의견을 제시했다. 기업결합 승인 전제조건으로 가입자 또는 매출액 기준으로 시장 점유율을 연말까지 50% 이하로 낮출 것과 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양사 매출액의 5%를 정보화 촉진기금을 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장 점유율 50%가 넘게 되면 지배적 사업자로 분류돼 기업결합이 불발로 끝날 수 있었다. 다만, 경쟁제한과 효율성 증진 정도를 따지는 예외사항이 있었다.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를 합병할 때, P&G가 쌍용제지를 인수할 때도 과반을 넘겼으나 인수가 성사됐다.
SK텔레콤 역시 이 같은 전제조건이 부당함을 피력했다. 단순히 이동통신 시장만 바라봐서는 안된다는 판단이었다. 전 세계적인 통신 인수합병 사례 역시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전화 시장에서는 유리할 수 있으나 한국통신프리텔은 유선 시장에서 막강한 한국통신이 모회사로, LG텔레콤은 LG정보통신이라는 제조사와 데이콤이라는 유선 강자가 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읍소했다.
공정위는 2000년 4월 26일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 인수합병에 대해 조건부승인을 발표했다. 통신 인프라 중복투자 방지와 경영효율성 증대, 세계적인 통신산업분야 추세를 고려했다는 게 근거였다. 문제는 조건이다. 2001년 6월 말까지 점유율을 50% 이하로 떨어뜨릴 것, SK텔레텍이 공급하는 이동전화를 2005년 12월까지 연간 1천20만대로 제한해야 한다는 것. 불이행 시에는 매일 11억 원 이내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해야 했다.
SK텔레콤, PCS 3사의 불만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SK텔레콤은 조건 자체가 가혹해 시장 붕괴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PCS 3사는 결국 공정위가 독점을 인정해 준 것이라 평가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각자 대응책 마련에 고심했다.
사상 최초 점유율 낮추기
점유율 50% 이하. 초유의 조건을 건내받은 SK텔레콤은 난감했다.
점유율을 내리기 위해서는 모수인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가 커지거나, 경쟁사에 점유율을 넘겨줘야 했다. 하지만 이동통신 가입자는 이미 포화상태. 경쟁사에 고객을 넘겨줄 수도 없다. 충성고객에 대한 이미지 타격과 유통망 붕괴까지도 감안해야 했다.
SK텔레콤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우선 신세기통신과의 화학적 결합을 도모하는 한편, 2001년 6월 말 직전 아슬아슬하게 49.99%의 점유율을 끊어내야 했다. 신규 가입에 힘을 쏟기보다는 해지 방어에 좀 더 노력을 기울였다. 단말기 할부제도와 가입비 분납제도 폐지, 일간지 광고 중단, TV광고 물량 40% 축소, 불량고객에 대한 직권해지 기간을 3개월에서 2개월로 단축시켰다.
또 다른 조건인 단말 공급량도 줄여야 했다. SK텔레콤은 2000년 8월 30일부터 이동전화 단말기 신규 공급을 전면 중단했다. 공급량이 줄어들었으나 수요가 충분했기에 단말기 가격이 상승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기존 고객이 기기변경을 하지 못하는 악영향도 끼쳤다. 예기치 않게 소비자 피해는 확산됐다.
또 다른 방편으로 신규 가입을 제한하기로 했다. 2001년 3월부터 신규가입 부분 제한에 이어 4월부터는 전면 중단이라는 강경책을 폈다. 이에 따라 각종 신문지면에 가입중단 광고가 게재됐다. 고객을 받지 않겠다니. 참 아이러니한 광고였다. 그것도 비용을 들여서 말이다.
“011, 017에 가입하시려는 고객 여러분께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4월 1일부터 011, 017 신규가입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당시 홍보 문구다. 시장 점유율을 낮추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으나 약속된 6월 30일까지 시장 점유율 50% 미만으로 낮추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구구절절한 내용이 포함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유율은 도무지 낮아지지 않았다.
SK텔레콤, 신세기통신 흡수 완료
죽으라는 법은 없었던 걸까. SK텔레콤에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왔다. 한국통신프리텔과 한솔엠닷컴의 합병과 더불어 LG텔레콤이 IMT-2000 사업선정에서 탈락했다. SK텔레콤 입장에서는 빠르게 추격해 오는 2위 사업자를 견제하는 한편, 3위 사업자를 지원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
SK텔레콤은 즉시 LG텔레콤을 설득해 LG텔레콤에 대한 회선 재판매 활동에 돌입했다. 이동통신 시장 포화상태에서 점유율을 뺏겨야 한다면 2위보다는 3위에게 주는 것이 현명했다.
마침내 2001년 7월 9일. 정보통신부는 6월 30일을 기준으로 SK텔레콤의 이동전화 시장 점유율이 49.75%를 기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공정위 역시도 SK텔레콤이 이행명령을 충족했기 때문에 이후 50%를 넘더라도 무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각고의 노력 끝에 점유율을 하락시키기는 했으나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내실을 기하면서 총매출과 순이익이 증가한 것. SK텔레콤은 점유율 하락 작업 이후 64만 명의 가입자를 잃었으나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1% 증가한 2조 91천56억 원, 세후 순이익은 70.4% 증가한 6천323억 원을 달성했다.
SK텔레콤은 신세기통신 내부 직원들과 초기 내홍을 겪기는 했으나 신속한 조직 안정화를 이뤘다. 2001년 신세기통신은 사명을 ‘SK신세기통신’으로 변경하는 한편, 6월 25일에는 합병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에 합의했다. 2002년 1월 11일에는 정보통신부로부터 최종 합병승인을 획득했다.
그 후 2002년 1월 16일 SK텔레콤은 신세기통신과의 합병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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