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박기록 기자] 미국의 투자은행인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 사태에 대한 글로벌 금융시장의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금융시장이 극도로 불안한 상황에선, 조그마한 외부 충격에도 금융회사 파산 등 시장이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이번 SVB 파산 과정에서 새삼 확인되고 있다.
당초 지난 10일(현지시간) SVB의 파산 조치가 나온 직후, 미 금융 당국과 뉴욕 월가의 분위기는 비교적 차분했다.
이날 나스닥을 포함해 미국의 3대 주요 증시가 이틀 연속 1% 이상 급락했지만 과거 리먼 브라더스 파산까지 촉발시켰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입장이었다.
무엇보다 SVB가 기술 스타트업들에 대한 거래 비중이 높다는 점을 들어, 경기침체로 인한 투자 손실 등이 발생한다해도 SVB 파산 후폭풍이 미치는 범위가 말 그대로 '실리콘 밸리'를 넘어서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이날 마감된 뱅크오브아메리카(-0.88%), 웰스파고(+0.56%) 등 주요 은행주들의 주가는 SVB 파산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주말을 지나면서 세계의 주요 경제 매체들은 파장이 예상보다 커질 수도 있다는 보도를 쏟아내는 등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실제로 11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세계적인 신용평가사중의 하나인 무디스가 SVB의 모회사인 SVB파이낸셜그룹측에 SVB의 신용도 하향 조정 사실을 알렸고, 담당자들간의 통화이후 SVB가 파산에 이르는 과정이 빠르게 진행됐다.
당초 SVB는 200억 달러 이상의 저수익 채권을 매각하고, 보유 주식을 팔아 자금조달을 하는 등 자구조치를 취할 계획이었지만 앞서 신용등급 하향 소문이 외부에 먼저 퍼지면서 인출 사태가 촉발됐고, 파산에 까지 초고속으로 진행된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무디스도 1계단 정도로 SVB의 신용등급을 강등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바꿔말하면, 무디스와 같은 세계적인 신용평가사들이 경기침체 또는 부실화를 이유로 은행 등급을 하향 조정할 경우, 실제 위험보다는 과장되게 SVB와 같은 중견 은행들의 파산 또는 인출사태(뱅크런)가 속출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아울러 미 연준(Fed)의 연이은 기준금리 인상을 통한 강경한 인플레이션 잡기 정책이 한편으론 SVB파산과 같은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을 크게 노출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즉, 미 연준이 인플레이션 잡기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은행 파산과 같은 더 극심한 부작용도 이제는 심각하게 고려해야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무디스가 신용등급 SVB의 신용등급 하향을 결정하기로 한 배경도 따지고보면 미 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이 직접적이다.
최근까지 SVB가 보유한 채권가격이 하락해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는데, 이는 시장 금리가 오르면서 그와 역관계에 있는 채권가격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미 연준의 통화 긴축 정책에 대한 신뢰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 연준의 통화긴축을 통해 인플레이션 소프트랜딩에 실패할 것이란 전망이 커지고 있는 것인데, 시장의 불안에도 '정책의 실패'까지 더해지는 것은 최악의 상횡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심스럽다.
한편 미국 캘리포니아주 당국은 SVB를 폐쇄하고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해 사태 수습에 나섰다.
FDIC는 국립예금보험은행(DINB)을 설립해 SVB의 기존 예금을 이전시키는 한편 SVB 보유 자산의 매각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청산을 진행한다. FDIC 예금자 보호 규정에 따라, 25만 달러 이하의 예금자들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인출이 허용될 예정이다.
25년전 IMF 외환위기 당시 부실 은행 폐쇄 사, 그리고 이후 몇몇 저축은행의 파산을 경험했던 우리로서도 이번 SVB사태에 특별히 주목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