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종합] 불황 속 韓 반·디·배, 결연한 신년사…"위기 때 실력 보여준다"

김도현

- 삼성·SK·LG 부품사 7곳, 초격차 지위 강조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정보기술(IT) 업계가 급속도로 얼어붙으면서 공급망 전반이 부진에 빠졌다. 우리나라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 분야도 경기침체 파고를 넘지 못했다.

모바일 기기 등 수요 감소로 이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하락 국면에 진입했고 상승 곡선을 그려가던 배터리도 전기차 시장이 주춤하면서 성장세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이에 국내 7개사는 압도적인 기술력을 토대로 위기 뒤 찾아올 기회를 잡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지난 2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최고경영자(CEO)는 신년사를 통해 2023년 사업 전략을 내비쳤다.

◆메모리 부진 계속…하반기 반등 여부 불확실

이날 삼성전자 한종희 부회장과 경계현 사장은 공동 명의 신년사에서 “어려운 대외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준 국내외 임직원의 헌신과 노고에 깊이 감사하다”며 “위기 때마다 더 높이 도약했던 지난 경험을 거울삼아 다시 한번 한계의 벽을 넘자”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세상에 없는 기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을 발굴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인 품질력 제고 ▲고객의 마음을 얻고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해 기술경쟁력 확보에 전력 등을 주문했다.

같은 날 SK하이닉스 박정호 부회장은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거시경제 환경의 급격한 변화, 몇 년간 계속된 지정학적 변수 등 부정적인 경영환경으로 올해는 도전의 한 해가 될 것”이라며 “도전받을 때 더 강해지는 DNA를 기반으로 모두 원팀이 돼 위기를 극복하고 한 단계 레벌업하자”고 이야기했다. 회사의 초격차 기술력과 원가 경쟁력이 대체 불가능한 가치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양사는 전 세계 메모리 시장 1~2위로 점유율 60~70%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미국 마이크론, 일본 키옥시아는 물론 중화권 업체까지 치고 올라오면서 양사를 위협하고 있다.

아울러 코로나19 국면에서 데이터센터 수요 급증으로 역대급 호황을 맞이했으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먹구름이 드리웠다. 메모리 가격은 폭락하고 재고는 쌓이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최소 올해 상반기까지는 반등이 어려울 전망이어서 삼성전자를 제외한 주요 업체들은 시설투자 축소, 구조조정 등에 나선 상태다.

이에 SK하이닉스는 2022년 4분기 적자전환이 우려되고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은 2023년 연간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하반기부터는 분위기가 전환될 전망이었으나 최근 들어 이러한 흐름을 장담할 수 없다는 의견이 하나둘씩 나오면서 업계 안팎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인위적인 감산은 없다고 못 박은 삼성전자는 장기적 관점에서 선제 대응하는 동시에 프로세싱 인 메모리(PIM) 등 차세대 메모리 기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SK하이닉스는 전년대비 투자 규모는 줄어들겠으나 연구개발(R&D) 자금은 아끼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대신 두 회사는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생산 효율화에 나서는 등 ‘마른 수건 짜기’도 진행한다.

◆반등 쉽지 않은 디스플레이, 신성장동력 확보 초점

삼성디스플레이 최주선 사장은 2023년 시무식에서 “기술 차별성을 극대화해 위기를 극복하고 진짜 실력을 발휘하는 한 해를 만들자”면서 “사업 체질을 혁신하고 미래를 위한 투자에 속도를 낸다면 기회의 시기에 더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역설했다.

LG디스플레이 정호영 사장은 신년사를 통해 “사상 초유의 시장수요 감소와 가격 하락으로 올해 상반기까지는 큰 어려움이 지속될 것”이라며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사업구조 고도화의 역사적 전환점을 만들어 가자”고 이야기했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는 중국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을 내주면서 새로운 먹거리 발굴이 시급해진 상황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작년 6월 LCD 사업에서 손을 뗐고 LG디스플레이는 같은 해 12월 말 기점으로 국내 LCD TV 생산을 종료했다. LCD 부문은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높은 IT용 LCD 위주로 전환해나갈 예정이다.

실적 측면에서는 희비가 엇갈렸다.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선두주자인 삼성디스플레이는 경쟁사 도전을 이겨내고 절대적 우위를 유지하면서 역대 최고 수익을 냈다. 반면 LG디스플레이는 LCD 비중이 작지 않은데다 주력인 대형 OLED 시장이 기대만큼 확장하지 못하면서 적자 전환했다.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OLED 역시 중국의 추격이 거세다. 이에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OLED 기술 격차를 벌리는 한편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유연한(플렉서블) 패널 등 미래 제품으로 승부수를 띄우겠다는 전략이다.

양사는 OLED의 경우 기판 크기를 확대한 IT용 라인을 구축해 스마트폰에 이어 노트북, 태블릿PC, 모니터 등 OLED 전환 수요에 대응하기로 했다.

또한 삼성디스플레이는 전장, 게임기 등 OLED 포트폴리오 확장과 퀀텀닷(QD)-OLED 안정화, LG디스플레이는 점유율 90% 내외를 차지하는 차량용 디스플레이 사업을 강화하면서 투명 OLED 등 신시장 공략을 가속화한다.

◆거침없던 배터리 3사…테슬라 쇼크에 불확실성↑

LG에너지솔루션 권영수 부회장은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면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강한 실행력이다. 이를 바탕으로 내부 역량을 강화하고 효율적인 업무환경을만들어 더 큰 미래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자”고 주문했다.

SK온 지동섭 사장은 “내실 있는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 기존 사이트 생산성을 높이고 신규 가동되는 해외 공장의 조기 램프업(생산능력 증대)을 위해 전사적 역량을 모아주길 바란다”며 “수주 규모에 걸맞은 시스템 구축 및 고도화도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삼성SDI 최윤호 사장은 “올해에도 미중 대립, 원자재 수급 리스크 등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나 명확한 전략 방향 아래 철저히 준비한다면 큰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배터리 산업에서는 확고한 기술경쟁력을 가진 기업만이 승자가 될 수 있다. 차세대 배터리 기술 확보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은 크고 작은 성과를 냈다. LG에너지솔루션은 4분기 주춤하겠으나 1~3분기 동안 호성적을 거뒀다. SK온은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으나 3분기 들어 감가상각전영업이익(EBITDA) 기준 첫 분기 흑자를 기록한 바 있다. 삼성SDI는 수익성 위주 판매 전략이 통하면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올해는 변수에 변수가 더해지면서 시장 상황이 안갯속이다. 우선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어떤 식으로 결론 내려질지가 관건이다. 오는 3월 하위규정(가이던스)이 결정되면 배터리 3사는 대응책 마련으로 분주해질 전망이다. 긍정 요소는 선제적으로 광물 공급망 재편, 미국 투자에 나선 부분이다.

또 다른 이슈는 테슬라를 비롯한 전방 수요 부진이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소비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지 못한 탓이다. 이에 따라 동시다발적으로 증설 중인 배터리 업계가 공급과잉에 직면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배터리 3사는 차세대 제품 준비에 집중하고 신공장 안정화를 서둘러 수익성 극대화에 초점을 맞출 심산이다. 타사 대비 글로벌 공장을 먼저 가동한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와 달리 SK온은 비교적 해외 경험이 적은 만큼 여파를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김도현
dobest@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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