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中 반도체 무력진압’, 만약 美 전략이 실패한다면?… ‘스푸트니크 충격’의 교훈

박기록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발전한 계기가 된 역사적인 사건들을 열거하라면 아마도 ‘1957년 10월의 어느날’도 그중에 포함될 것이다.

‘스푸트니크 충격’(Sputnik shock)이라 불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자만에 빠져있던 미국은 엄청난 위기를 느끼고 과학기술 개발을 서둘렀다.

결국 미국은 12년뒤 인류 최초로 아폴로11호를 달에 착륙시킴으로써 우주 경쟁에서 소련을 제쳤고 이후 한번도 주도권을 내주지 않았다.

냉전시대, 공산 진영을 이끌어왔던 구 소련이 세계 최초로 1957년 10월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리자 미국과 서방 세계가 받은 충격을 ‘스푸트니크 충격’이라고 한다.

그런데 ‘스푸트니크 충격’은 사실 역설적 현상이다.

내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한테 자극받은 상대방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더 발전하기 때문이다.

최근 로이터는 분석 기사를 통해, ‘미국의 강력한 대 중국 반도체 수출 억제가 역설적으로 중국의 반도체 개발 의욕을 더 자극시킬 것’이라며 이른바 ‘스푸트니크 충격’으로 발전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 이미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 이미지
◆중국을 길들일 것이냐? 중국을 자극할 것이냐?… ‘스푸트니크 충격’ 고민해야 할

미국 정부는 엔비디아, AMD 등이 만드는 고성능 AI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금지시키고, 또 최근에는 반도체 제조 장비까지 수출 승인 품목에 올리겠다고 압박했다.

미국은 ‘고성능 칩의 군사적 목적 전용’ 가능성을 이유로 달았지만 더 이상 지켜보지 않고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사실상 무장해제 또는 무력 진압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전문가들의 견해는 엇갈린다.

그 논리적 근거로 소환되는 것이 66년전의 ‘스푸트니크 충격’이다 .

로이터에 따르면, 일각의 전문가들은 “중국내 반도체 제조사들이 비록 상업적인 성공은 못하더라도 독자적으로 고성능 칩을 제조할 수 있는 창의적인 엔지니어링 솔루션을 개발하고, 결국 방법을 찾아내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가 중국의 위기의식과 독자적인 개발 의지를 자극시켜, 결국 어떤 형태로든 중국이 높은 기술적 자산을 얻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또한 현재 중국이 전세계 반도체의 4분의 3이상을 소비하는 엄청난 소비국이란 점도 미국의 압박 전략이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근거로 제시됐다.

엄청난 시장 수요가 있는 한, 반도체 공급측면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시장 수요에 맞는 결과를 낼 것이란 분석이다.

반면 정반대의 견해도 있다.

미국이 물리적인 반도체 수출 규제로 괜히 벌집을 건드리는 것 보다는 기존처럼 중국이 미국에 대한 의존도에서 탈피하지 못하게 더 깊게 ‘미국에 길들여지는’ 방식이 현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미국에 대한 기술적 예속을 점차 더 심화시키는 방법이다. 사실 이 방법이 더 고차원적이지만 어떻게보면 훨씬 더 어려운 방법이다. 현실적으로도 미국이 중국과의 반도체 기술 격차를 일정하게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편 반도체 기술의 완전 자립화가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보스턴컨설팅은 지난 2021년 보고서를 통해, 완전한 반도체 자급에 필요한 공급망 구축을 위해서는 최소 1조달러(한화 약 1410조원)이상의 선행투자가 진행돼야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10월16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 개막식
10월16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 개막식
과연 중국은 독자적으로 ‘고성능 반도체’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흥미로운 것은 과연 미국산 고급 반도체 제조 장비가 없어도 중국이 개발 의지만으로 고성능 칩 제고가 가능하느냐의 문제이다.

놀랍게도 전문가들은 중국 반도체 제조사들이 미국의 제재 대상이 아닌 구형 반도체 장비를 이용해 ‘창의적인 방식’(?)으로 고성능 반도체 생산을 시도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관련하여 로이터는 중국 반도체기업인 SMIC의 사례를 들었다.

지난 2020년, 미국 정부는 중국 SMIC가 7나노미터 공정 노드를 사용해 반도체 제조를 시도하는 것을 막기위해 네덜란드기업인 ASML의 EUV 장비 공급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SMIC가 ASML로부터 구매에 별도 제한을 받지않는 저사양의 DUV 장비를 이용해 7나노 칩을 생산한 징후를 발견했다.

물론 중국 반도체기업들의 이처럼 쥐어짜내는 ‘창의적 방식’으론 수율 문제에 봉착하기때문에 대량 생산은 불가능하다. 당연히 상업적인 성공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특정 고급 기술은 획득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독자적인 노력을 한다해도 최소 4~5년간은 기존 KLA, 어플라이드머트리얼즈, 램리서치와 같은 미국 반도체 장비 제조사들을 대체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3연임 시진핑, 고급기술 자립‧자강 천명… ‘고성능 반도체’ 독자 개발 강행 예고
지난 23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총서기로 재선출되며 3연임을 확정했다. 향후 5년간 시진핑 집권 3기를 이끌, 새로운 지도부가 리창·차이치·딩쉐샹·리시 등 시 주석의 측근들로 구성됐다. 시 주석에 힘이 더욱 실리는 지도부 구성이란 평가다.

대만 문제 뿐만 아니라 고급 과학기술의 자급 자족에 대해서도 강경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시 주석의 의지가 꺽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앞서 시 주석은 지난 16일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 개막식 연설에서 ‘사회주의 현대화’와 함께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 자립·자강 실현, 선도적 과학기술의 난관을 돌파하는데 역량을 결집하고, 핵심기술 공방전에서 승리하겠다”고 역설했다. 이는 반도체를 비롯해 미국과의 첨단 과학기술 경쟁에서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라고 외신들은 평가했다.
박기록
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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