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삼성전자, ARM M&A 사실상 불가능…이재용 부회장, 발언 속내는 [IT클로즈업]

윤상호

- 삼성전자, 엔비디아 ARM M&A 반대…각국 정부 태도 그대로
- 삼성전자, 컨소시엄 매력↓…인텔·SK하이닉스·퀄컴과 상황 달라
- 손정의 회장, ARM 프리IPO 참가 요청 가능성 높아
- 이재용 부회장 발언, 'SBG 전향적 조건 제시' 권유 유력


[디지털데일리 윤상호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발언으로 ‘삼성전자가 ARM을 인수합병(M&A) 하는가’에 관한 관심이 높다. ARM을 소유한 소프트뱅크그룹(SBG) 손정의 회장도 이 부회장과 만남을 예고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M&A 성사는 힘들다. 각국 심의 통과가 쉽지 않다. 양측이 손을 잡는다면 삼성전자의 ARM 지분 일부 인수가 유력하다. 손을 잡지 않은 가능성도 열려있다.

26일 삼성전자 등에 따르면 10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손정의 SBG 회장이 한국에서 면담할 예정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21일 “다음 달 손정의 회장이 서울 올 것”이라며 “그때 제안을 할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손 회장은 지난 22일 “이번 방문에 대한 기대가 크다”라며 “삼성과 ARM 전략적 협력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ARM은 영국에 본사를 둔 반도체 설계자산(IP) 회사다. x86 기반 중앙처리장치(CPU)를 제외한 대부분 시스템반도체 설계는 ARM 기반 IP 바탕이다. 1000개 이상 업체가 2300억종 이상의 반도체를 만들고 있다. 2016년 SBG가 234억파운드(약 36조1600억원)에 인수했다. 현재 지분율은 ▲SBG 75%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25%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은 ▲팹리스(시스템LSI사업부) ▲메모리반도체(메모리사업부)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사업부)로 이뤄졌다. 삼성전자는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가 목표다. 시스템LSI사업부와 파운드리사업부를 합쳐서다. 파운드리사업부는 세계 1위 TSMC 보다 3나노미터(nm) 공정을 먼저 상용화하는 등 세계와 격차를 좁히고 있다. 시스템LSI사업부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와 차량용 반도체 등에서 여전히 주요 업체와 격차가 있다.

삼성전자는 2021년 3년 내 대형 M&A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코로나19 등 영향으로 시점은 한정치 않겠다고 말을 바꿨지만 M&A 의사는 철회치 않았다. 이 부회장의 영국 출장과 손 회장과 만남을 ARM M&A로 연결하는 것도 그래서다. 같은 이유로 ▲독일 인피니언테크놀로지 ▲네덜란드 NXP도 삼성전자의 M&A 대상이라는 관측이 끊이지 않는다. 양사는 차량용 반도체 선두를 다투는 사이다.

삼성전자와 SBG 수장의 발언이 불길을 일으켰지만 삼성전자의 ARM M&A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SBG는 지난 2020년 9월 ARM M&A 계약을 엔비디아와 체결했다. 엔비디아는 SBG와 비전펀드의 지분을 400억달러(약 56조9200억원)에 사기로 했다. 엔비디아는 미국 팹리스 업체로 세계 팹리스 매출 점유율 2위를 차지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강자다.

업계와 각국 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삼성전자를 비롯 대부분 반도체 업체는 “엔비디아가 ARM을 M&A할 경우 ARM IP 독점이 우려된다”라고 입을 모았다. 엔비디아는 기존 정책 유지를 약속했지만 반발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M&A 승인 권한을 가진 각국 규제 당국도 심사 기준을 높였다. 유럽연합(EU)과 영국은 1년 넘게 심사를 하고서도 추가 조사 결정을 내렸다. 엔비디아는 지난 2월 계약을 포기했다.

삼성전자의 입지와 규모 등을 따져보면 엔비디아에게 적용했던 잣대는 삼성전자에게 더 강력해져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미국 EU 영국의 벽을 넘어도 중국이 기다린다. 2018년 퀄컴의 NXP M&A 시도는 중국 탓에 무산했다. 중국은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 인수 때도 마지막 관문이었다.

SBG는 엔비디아 M&A 실패 후 내년 3월을 목표로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 나스닥을 겨냥했다. 업계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M&A 의사를 표명했다. 인텔 SK하이닉스 퀄컴 등이 공개적으로 컨소시엄 M&A를 던졌다.

삼성전자가 SBG 지분을 매입한다면 ‘상장 전 지분투자(프리IPO)’ 확률이 높다. 이 부회장과 손 회장이 한국에서 본다는 점도 전자에 힘을 싣는다.

SBG의 ARM 매각 또는 상장 추진은 투자금 회수를 위해서다. SBG는 올해 들어서만 50조원 가량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2분기까지 3분기 연속 적자다. 비전펀드 손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비전펀드가 투자한 기업은 500개에 육박한다. SBG 입장에서는 삼성전자가 비전펀드 소유 지분을 인수한다면 IPO 흥행과 유동성 확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삼성전자의 지난 2분기 기준 현금 보유고는 125조3500억원이다. 순현금만 107조9100억원이다.

삼성전자가 ARM 주주로 참여한다면 SBG 협력 강화 성격이 강해 보인다. 이 부회장과 손 회장은 한국에서는 2013년 2014년 2019년 3차례 만났다. 양자는 차세대 통신 및 사물인터넷(IoT) 등에 대한 전략적 논의를 해 왔다. 삼성전자는 일본 1위 통신사 NTT도코모 2위 통신사 KDDI에 5세대(5G) 이동통신 장비를 공급했다. 투자와 미래 측면도 고려 대상이다. SK하이닉스가 낸드 경쟁사 키옥시아 지분을 갖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형태는 비슷하지만 삼성전자 주도 컨소시엄 창설은 실익이 적은 것으로 여겨진다. 컨소시엄은 1개 기업이 전략을 주도하기 어렵다. 구성원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한다. 파운드리 사업에 부담을 줄 위험도 있다.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경영권이 독배가 되는 셈이다. ▲ARM 기반 기술이 필요한 인텔 ▲메모리 사업 중심 SK하이닉스 ▲ARM과 소송을 시작한 퀄컴과는 상황이 다르다.


한편 삼성전자와 SBG의 10월 모임은 모임 그 자체로 끝날 수도 있다. 삼성전자의 ARM 프리IPO 참여도 수량과 가격이 맞아야 한다.

이 부회장 발언에도 이런 의사가 읽힌다. 이 부회장의 말은 “제안을 들어본 후 검토해보겠다”가 아니라 “제안을 할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다. ARM 관련 제안을 하는 것은 SBG 의사며 논의를 할 수 있는 조건을 가져오는 것도 SBG의 몫이라는 뜻이 숨어있다. 그동안 실무진이 물밑에서 나눈 수준은 미흡하니 총수가 전향적 태도를 취할 때라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파악된다.

윤상호
crow@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